조현오 청장 “전화로 응답하지 않을 것” 추가 연루자 A 치안감 “전화 안받아”

경찰수뇌부들이 건설현장 식당운영권 브로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나타나자 지난 12일 조현오 경찰청장이 경찰청사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전국경찰지휘부를 비상소집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 발로 시작된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에 정·관계 인사 다수가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치안감 이상 전·현직 경찰 간부 다수와 전국 총경급 이상 간부 수십 명은 물론, 여야 정치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연루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함바집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유력 인사들의 로비행태를 총망라 한다.

함바집 비리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정관계 인사들이 끝을 모를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씨(65.구속기소)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강희락 전 청장(사전구속영장 기각)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경찰 조직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강 전 청장과 이 전 청장은 각각 유씨로부터 경찰관 승진 인사 청탁 명목 등으로 1억 원, 함바집 운영에 대한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35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청장은 또 유씨가 구속되기 직전 4000만 원을 건네며 해외도피를 권유한 혐의도 받고 있으며, 이 전 청장 역시 유씨의 청탁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인천의 한 아파트 분양권을 받은 의심을 사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1월 13일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 560여 명의 총경급 간부들 가운데 유씨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자진 신고한 사람은 모두 41명으로 집계됐다고 연루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 대다수인 36명은 단순 접촉 외에 금품이나 향응은 일체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나머지 5명은 유씨의 직접적인 로비 시도가 있었다고 자진 신고했다.

고위 간부 1명은 현장 소장 등과 면담하도록 주선했다가 함바집 운영권 계약 등이 성사되지 않았음에도 포도주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또 다른 간부 1명은 주선을 거부했음에도 배송돼온 홍어를 받기도 했다.

또 주선을 하고서도 놓고 간 금품을 돌려주거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청탁을 받았지만 거절한 사례도 있었다. 주선을 거절했지만 택배로 물품을 보내와 개봉하지 않고 반송한 사례 등도 있었다.

자진 신고한 41명 가운데 대다수는 강 전 청장의 전화 지시를 받고 유씨를 만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치안감 다수 수사선상

검찰의 수사선상에는 현직 치안감 다수도 올라와 있다. 김병철 울산지방경찰청장은 유씨로부터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1000여만 원을, 양성철 광주지방경찰청장 역시 유씨에게 금품을 받은 뒤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 로비에 직접 나선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월 14일 김 청장과 양 청장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로 대기발령성 전보 조치 했다.

검찰은 또 함바집 운영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유씨가 지난해 박기륜 전 경기지방경찰청 2차장(치안감)에게 두 차례에 걸쳐 돈을 전달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봄과 여름 박 전 차장이 근무하던 경기청 제2청사를 직접 찾아가 집무실에서 돈을 전달했다는 것. 검찰은 유씨가 한 번은 서울에서, 다른 한 번은 경기2청사 인근 경기 의정부시 신곡동 농협지점에서 로비자금을 인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씨와 관계자들은 경기 지역에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많아 박 전 차장을 통해 해당 지역 관할 경찰서장 및 정보과장을 소개받기 위해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1월 14일 박 전 차장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한 결과, 그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출국 시점과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법조계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에 파견 나가 있는 현직 치안감 A씨도 이번 함바집 비리 사건에 연루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자는 사실관계 확인과 입장을 듣기 위해 A씨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을 수차례에 걸쳐 시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A씨는 과거 경무관이던 시절 경기청에 근무했고, 박 전 차장 역시 이때 경기청 제2청에서 근무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1월 14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전화로는 응답하지 않겠다”면서 “기자 간담회 때, 그때 이야기 하겠다”고 말했다.

사태의 추이를 신중하게 지켜본 뒤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해 언론에 일괄 발표하겠다는 뜻이다.


정치권 등으로 전방위 확대

브로커 유씨의 문어발식 로비는 비단 경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검찰은 유씨가 정·관계를 비롯해 유력 기업인들에게 까지도 ‘줄’을 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두언·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이 의심을 받고 있지만 본인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

정 의원은 유씨와 만난 적은 있지만 비리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언론에 “2003년 서울시 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의 부탁으로 유씨를 만난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브로커 분위기가 짙어서 그 후로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유씨는 당시 서울시를 자주 드나들었으며 시청 공무원들은 그를 ‘함바’로 불렀다는 후문이다.

이 의원은 유씨가 자신의 지역구인 통영시에 총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 1월 11일 ‘함바집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는 일부 언론보도와 관련,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함바집 비리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유모씨와는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며 후원금 단돈 1원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1월 10일 통영시에 확인한 결과, 유씨가 통영시에 총 1억 원을 기부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영 국제음악제에 7000만 원, 한산대첩 축제에 3000만 원 등 총 1억 원 임이 확인됐다”면서 통영시에 기부됐다는 1억 원 내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허남식 부산광역시장도 2006∼2008년 사이 유씨를 자신의 집무실 등에서 두세 차례 만났던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유씨의 진술과 수첩에 기재된 내용 등을 토대로 유씨가 허 시장을 만난 경위와 청탁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시장은 이번 사건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허 시장은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씨가 부산에서 활동할 때(2006∼2008년) 집무실 등에서 두세 차례 정도 만난 적이 있다”면서 “지인의 소개로 만났으며 간단한 대화만 나눴을 뿐 청탁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장 방사청장 사의 표명

장수만 방위사업청장도 최근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브로커 유씨는 검찰 조사에서 장 청장에게 수 천 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장 청장은 해외에서 열릴 예정인 방위산업 전시회 출장 일정도 전면 취소했다.

장 청장은 비리 연뤄 의혹에 대해 “유씨는 지인 소개를 받아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돈을 받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최영 강원랜드 사장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다. 검찰은 브로커 유씨가 지난해 최 사장을 5차례 만나 현금을 건넸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이를 뒷받침할 물증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유씨 측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씨가 지난해 6, 7월 강원랜드에서 최 사장은 한 차례 만났고, 이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네 차례 만나 최소 5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씨가 최 사장을 만나러 갈 때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해 간 사실을 파악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해 4, 5월 최 사장이 6·2지방선거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에서 탈락한 뒤 외국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들어오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건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씨가 최 사장을 만나러 갈 때는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고,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만 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사장은 유씨가 다른 일행과 함께 찾아오더라도 사장 집무실에는 유씨만 들어갔고, 호텔에서 공개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도 다른 일행과 떨어진 리에서 유씨만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본인 관련 내용은 검찰 조사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 강 전 청장 영장 청구 ‘고심’

검찰은 또 정장섭 중부발전사장과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도 유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유씨로부터 각종 청탁 등의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배 전 팀장 역시 지난해 3월 유씨가 한 함바집 운영업자로부터 전달 받은 5만 원 권 뭉치 총 5000만 원을 직접 유씨로부터 건네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배 전 팀장은 청와대 직원에 대한 감찰 업무를 총괄했던 서울시 출신으로, 비리 연루 의혹이 불거지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지난 1월 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행정자치부 차관 B씨도 최근 함바집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의 수사범위 또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강희락 전 청장의 사전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됨으로써 검찰의 함바집 로비 수사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지만 검찰은 보강조사를 통해 추가 물증을 확보한 뒤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전성무 기자]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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