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부패와 무능이 한계점을 넘었다. 최근 룸살롱 업주로부터 뇌물을 챙긴 40여명 경찰관들의 명단이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있는 터였다. 그 판에 이번에는 경찰이 위기에 처한 성폭행 피해자의 자세한 범죄 신고를 받고도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져 공분을 자아냈다. 피해 여성이 112신고 전화에 자그마치 7분 36여초 동안 자신의 상황과 위치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무려 13시간동안이나 피해자를 찾지 못하고 헤맨 경찰이 13시간 만에 범인을 잡았으면 빨리 잡은 거라고 주장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경찰의 황당한 인식이 도통 상황 판단을 못하는 노릇이다. 사건 후 사흘간 모두 11차례의 ‘거짓말 퍼레이드’를 벌였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더라도 더는 자리를 고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말한 도로변의 주택들을 한꺼번에 수색키 위해 중대 병력정도를 동원해야 옳았다. 또 112 담당자가 필요 없는 질문을 하며 시간을 끌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경찰은 사건이 터지자 신고 접수 후 10여분 만에 순찰차 6대와 경찰관 35명을 현장에 보내 탐문수사를 벌였다고 첫 거짓 해명을 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한걸 보면 그처럼 하는 것이 경찰사회의 정석이었는지 모른다.

수색영장이 없어서 개인주택을 일일이 수색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또 웃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7조는 ‘경찰관은 인명, 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가 절박한 때에 그 위해를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조키 위해 타인의 토지, 건물 또는 선차 내에 출입할 수 있다’고 돼있다. 경찰은 언제나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놓고 검찰과 다툴 때 국민은 경찰을 편들어 줬다. 그런데 드러난 정황이 마냥 이 모양 이 꼴이다. 스스로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서 밥그릇만 탐낸 꼴이다. ‘잿밥’에 신경 쓰느라 민생 치안은 안중에 없었다. 국민 누구든 강력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일만 터지면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대한민국 경찰 자화상을 이제 이 땅의 삼척동자도 다 아는 현실이다. 사건 본질을 떠나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의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조선족을 매도하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그가 속한 집단에 연좌 시키는 것은 다문화 시대에 화합과 공존을 해치는 짓이다.

미국에서 한국계 청년이 총기난사 사건을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 교민사회가 위협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의 근본 원인은 경찰 지휘부의 무능과 정치성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시국치안에 매몰돼 민생치안은 방치되고, 시민의 생명과 인권은 늘 해온 경 읽기에 불과하고 검찰과의 밥그릇 싸움에 매달린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잿밥에 신경 쓰느라, 권력의 하청 처리에 매달리느라 오랫동안 본분을 잊어버린 우리 경찰의 자성 목소리가 아직은 ‘잿밥’ 위한 염불 외기로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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