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 가면 흔히 ‘18번’이란 말을 자주 쓴다. 즐겨 부르는 노래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자신의 아련한 과거나 추억이 이 노래방 18번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유권자들과의 원할한 호흡을 위해서라도 애창곡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노래가 일종의 ‘이미지 관리’ 도구가 된 셈이다. <일요서울>은 지령 600호 특집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 등 사회저명인사들의 노래방 18번을 들여다 봤다.

사연 많은 정치인 애창곡

이한동 전 총리는 노래방 18번에 얽힌 애뜻한 추억이 하나 있다. 이 전 총리는 평소 ‘두주불사’형으로 알려져 있다. 술자리에서 만큼은 절대 빼는 일이 없을 정도로 성격이 호탕하다. 그런 성격 때문일까. 노래 솜씨 또한 일품이다. 국회 주변에서 이 전 총리의 노래 솜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애창곡은 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이다. 노래에 얽힌 사연은 서울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총리는 음악에 상당한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서울 인사동 르네상스, 명동 돌체 등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것도 잠시.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신 대학에서 열리는 감상회를 자주 찾았다.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틈틈이 따라 부르던 것이 어느새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 전 총리는 “여름이나 가을이 되면 동생들을 데리고 뒷동산에 올라 노래를 들려주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이때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기 대권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사연은 더 애달프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정치 역경이 애창곡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애창곡은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과거 군사정권 시절 감옥에서 불러주었던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장관이 회고하는 내용은 이렇다. 지난 82년 그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수감된 적이 있다. 부인 인재근씨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서였다. 생일은 다가오는데 마땅히 선물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서 짜낸 묘수가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적어두고 외우고 또 외웠다. 마침내 아내의 생일날이 됐고, 두 사람은 차디찬 쇠창살을 두고 마주앉았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준비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모진 고문으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상태. 노래가 끝나자 두 사람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펑펑 울었다. 이때부터 그는 노래 부를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랑의 미로’를 즐겨 부른다. 물론 부인 인재근씨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노래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민주당 의원이다. 김 의원의 경우 노래실력이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양희은의 ‘아침이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 노래를 셀 수 없이 불렀다. 이필원의 ‘추억’도 그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회식 자리에서 노래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게 보좌진의 설명이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나그네 설움’을 즐겨부른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 정처없는 이 발길 / 지나온 자국마다 / 눈물이 솟네.”그는 이 노래를 일명 ‘야당가’라고 부르며 즐겨 불렀다. 노래의 가사가 한번도 제대로 여당 생활을 해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 좋아하게 됐다는 것. 이에 반해 이 전 총재의 부인인 이경의씨는 최신 노래까지도 꿰뚫고 있는 신식 여성이다. 특히 패티김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법조계 음악 편력 특이

법조계 인사들의 음악 편력도 특이하다. 평소 언론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경직 그 자체다. 사건이나 법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만큼은 예외다. 김태정 전 법무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평소 최희준의 ‘하숙생’을 즐겨 부르는 ‘감상파’다.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틈만 나면 ‘하숙생’을 웅얼거린다. 그가 하숙생을 좋아하게 된 것은 서울대에 다닐 때부터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돈이 없어 자취방과 하숙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노래가사가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고 한다.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술이 얼큰하게 들어가면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는 게 김 전 장관의 설명이다. 사적으로도 그는 최희준씨의 법대 후배. 때문에 길을 가다 우연히 “인생은 나그네길 / 어디서 왔다가 / 어디로 가는가”라는 노래소리가 들려오면 지긋이 눈물이 배어 나온다고 설명한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 현안들을 처리했던 안강민 변호사도 김 전 장관 못지 않은 ‘감상파’다. 그의 애창곡은 백난아의 ‘찔레꽃’. 안 변호사에 따르면 그의 부산 시골집에는 유난히 찔레꽃이 많이 피었다고 한다.

담장을 따라 찔레꽃이 진을 치다시피 했다.그러나 6·25가 발발하면서 그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중학 시절을 보내야 했다. 당시 그는 이 노래를 부르며 고향집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 남쪽 나라 내고향 / 언덕 위의 초가 삼간 / 그립습니다” 그는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르면 고향집 담장을 덮던 찔레꽃이 생각난다고 회고한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을 다뤄 유명세를 탄 심재륜 변호사는 냇 킹 콜의 ‘Too Young’을 즐겨 부른다. 학창 시절부터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그는 “노랫말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문화계 애틋한 사연담아

문화계 인사들의 노래에도 숨은 사연이 많다. 별명이 ‘동글뱅이’인 소설가 양인자씨의 애창곡은 ‘얼굴’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 노래는 방송작가 시절인 지난 75년 야유회에 갔다가 처음 부른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른 이후 양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동글뱅이’로 불렸다고 한다. 그는 “부산이 고향인 한 PD가 볼 때마다 ‘동글뱅이 한번 불러보라’고 익살을 부렸다”면서 “동글뱅이란 별명도 이때부터 생겨났다”고 귀띔했다.평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소프라노 김영미씨는 ‘청산리 벽계수야’를 좋아한다. 창작오페라 ‘황진이’의 삽입곡인 이 노래는 어머니 고 안영식 여사에 대한 그리움이 깊게 묻어있다. 몇해 전 베이징에서 공연할 때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해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어머니는 ‘동반자’이자 ‘등불’이었다.

때문에 김씨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를 즐겨듣곤 했다는 게 지인들의 귀띔이다. 월남 소설가 이호철씨는 ‘고향’을 즐겨 부른다. 남한에 와서 처음 부른 노래가 바로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월북 시인 정지용씨가 작사한 노래라 더욱 정이 간다”면서 “아직도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고향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이밖에도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을 좋아하고, 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박완서씨는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자 한양대 석좌교수인 이영작 박사는 조용필의 ‘허공’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계와 달리 시민단체 인사들은 ‘신념형’ 노래를 즐겨 부른다. 좋아하는 노래에 자신의 철학이 배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석현 변호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변호사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동심초’. 가곡처럼 불리는 동심초는 항일운동이 한창이던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민족가’다. 노래를 들어보면 민족의 애절한 정서뿐 아니라 고향에 대한 향수까지 자극한다. 때문에 노래는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은희 대표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좋아한다. 이 노래도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민중가다. 당시까지만 해도 민중들은 ‘아침이슬’을 부르며 희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지 대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저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됐다”면서 “지금도 누군가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고민하지 않고 부르는 노래가 ‘아침이슬’”이라고 소개했다.

# 표심 잡기 위해 애창곡도 바꾼다
·유명 정치인 애창곡 변천사

정치 지도자의 애창곡은 단순히 추억이나 한을 상징하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보여주기 위해 애창곡을 지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권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의 경우 아예 애창곡을 바꾸기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선구자’ ‘고향생각’ 등을 즐겨 불렀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 애창곡을 바꿨다. 측근들의 권유가 있기는 했지만, 가곡보다는 대중가요가 낫다는 스스로의 판단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새로 바꾼 애창곡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다. ‘국민가요’로 통하는 이 노래는 기타 하나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무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정계의 귀띔이다. 평소 호탕하기로 소문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번지없는 주막’이나 ‘나그네 설움’ 등을 즐겨 부른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노사연의 ‘만남’이나 ‘마이웨이’와 같은 신식(?) 노래도 소화한다. 97년 전후로 해서 정계에서는 이 노래를 두고 말이 많았다. 김 명예총재의 이 노래가 단순한 애창곡 이상일 것이라는 얘기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치상황을 미뤄볼 때 김 전 대통령과의 동거관계를 청산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의중을 은연중에 노래로 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은 노래와는 거리가 멀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쳐온 그였기에 대중가요가 낯설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노래부를 일이 있으면 마지못해 ‘노동가요’를 부르곤 한다.

그런 그도 정치에 입문한 후 변했다. 애창곡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보좌진과 머리를 맞대 짜낸 묘안이 바로 지금의 ‘찔레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색함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지난 97년 정치에 입문한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의 경우 가수 송대관씨로부터 별도의 과외를 받았을 정도.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알고 있는 노래가 찬송가 정도였다. 그러나 유 의원도 찬송가 대신 송대관의 ‘해뜰날’로 18번을 바꿨다. 이를 위해 유 의원은 송대관씨로부터 직접 노래강습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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