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도주 파문

▲ 4조 원대 국내 최대 의료기 렌털 다단계 사기단 주범 조희팔이 충남 태안군 남면 마검포 앞바다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사실이 밝혀져 피해자들이 지난 3월 2일 태안해양경찰서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꼽히고 있는 ‘조희팔 사기사건’. 수사를 재개하고 범죄수익금 환수에 착수한 경찰은 조희팔 지인 등 22명의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수사선상에 전·현직 경찰 2명도 올라 있어 향후 경찰 수사결과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은 또 이들 전·현직 경찰 2명이 조희팔의 중국밀항을 도왔는지 여부도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전·현직 경찰이 조희팔로부터 뇌물을 받고 밀항을 도운 혐의가 드러나면 ‘강남룸살롱 황제 뇌물 경찰 리스트’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 뇌물 리스트’ 또 터지나…신뢰 위기 겪는 경찰
조희팔 범죄수익금, 22개 차명계좌로 관리됐나

‘조희팔 사기 사건’의 주모자 일부가 지난 2월 8일 중국 옌타이 공안(경찰)에 긴급 체포돼 국내 송환 절차에 들어가면서 경찰이 사건 기록 재검토에 들어가는 등 수사를 재개했다. 앞서 조희팔 사기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185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20여 명을 구속했지만 조희팔의 최측근들이 모두 중국으로 도피해 수사를 중단한 바 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이들은 최모(55)씨와 강모(44)씨로 2009년 12월 초 서해 공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해 조희팔 등과 함께 수배를 받아온 6명 가운데 2명이다. 이들은 4조 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을 주도한 조희팔의 최측근으로 중국으로 달아나 산둥성 동부 3개 도시에 잠적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긴급 체포된 최씨 등 2명은 현재까지도 국내 송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2월 체포된 주동자 2명도 아직 송환되지 않고 있다”며 “중국 측에서 송환 일정과 절차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일절 답변해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월 24일 자진 입국해 자수한 이른 바 ‘조희팔의 오른팔’ 황모(53)씨를 구속했다. 황씨는 최씨 등과 함께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황씨가 구속됨에 따라 이 사건의 수배자는 조희팔 등 핵심인물 3명으로 줄어들었다.

자살한 피해자만 10여 명

조희팔 사건은 조희팔 등이 2006년 10월부터 2년여 동안 대구와 부산·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20여 개의 법인과 50여 개의 센터를 운영하면서 4~5만 명으로부터 4조 원을 받아 챙긴 대형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이는 최대의 다단계 사기사건으로 손꼽혀 왔던 2004년 제이유(JU)그룹 사건의 2배에 이르는 피해규모다.

조희팔 등은 “안마기·골반교정기·찜질기 등 건강용품 판매 사업에 투자하면 연 48%대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며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의 돈을 갈취했다.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서민으로 30대에서 60대 가정주부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려 자살한 피해자도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피해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한 간부는 “아파트 분양금을 투자한 사람, 시동생 결혼 자금을 투자한 사람을 비롯해 사채까지 끌어 써 투자한 사람까지 있었다”며 “피해자들의 피해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마다 피해센터를 두고 피해 상황을 파악·수습 중이지만 이 사건의 주동인물인 조희팔이 국내에 없기 때문에 난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피해 보상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지만, 조희팔을 비롯해 이 사건 주동자들이 해외로 도피·잠적해 실질적 보상은 불가능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조희팔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전·현직 경찰관 2명을 비롯해 조씨의 내연녀, 조카, 부하직원 등 조씨와 가깝게 지냈던 22명의 금융 계좌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 ‘100억’자금 흐름 추적

경찰청과 대구지방경찰청은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현직 경찰관 정모(34) 경사와 전직 경찰인 임모(45)씨 등 2명을 포함해 22명의 금융 계좌를 추적 중이다.

경찰은 조희팔이 투자금으로 러시아 고철사업, 부산 요트 사업, 부동산 사업 등에 재투자를 했다 중국으로 밀항하기 1달 전 계약을 파기해 100억 원가량의 돈을 회수하고 자금세탁을 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단계로 피해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모은 조희팔이 요트 사업 등에 재투자했다”며 “조희팔이 중국 밀항 직전 계약 파기를 하면서 10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회수하고 자금세탁을 한 과정까지는 확인됐으며, 자금세탁 이후 자금 흐름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자금세탁 이후 이 자금을 어디에서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와 이 자금이 중국에 있는 조희팔에게 넘어갔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이 범죄수익금이 중국으로 넘어갔는지 여부도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조희팔이 독단적으로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22명의 명의로 만든 차명계좌를 통해 범죄수익금의 일부가 조희팔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관계자는 “조희팔의 범죄수익금이 양도성예금증서로 인출됐다”며 “22개의 계좌에 범죄수익금이 얼마씩 들어가 있는지 현재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조희팔 사기사건 수사를 재개하고 조희팔 범죄 수익금 환수에 착수하면서 ‘조희팔 뇌물 리스트’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수사로 경찰이 강남 룸살롱 황제 뇌물 경찰 리스트에 이어 조희팔 뇌물 경찰 리스트가 드러난다면 사정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강남 룸살롱 황제 뇌물리스트 수사로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한 가운데 이번 사건에 전·현직 경찰 두 명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경찰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경찰은 조희팔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은 물론 조희팔의 중국 밀항을 도운 경찰 모두를 색출해내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또 정 경사와 임씨 등 2명에 대해서도 뇌물을 받고 밀항을 도왔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경찰은 이들의 뇌물 수수 여부와 뇌물의 성격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의 관계자는 “이번 수사로 조희팔 사건에 경찰이 뇌물을 받고 조씨의 밀항을 도와준 것이 드러난다면 대규모 시위 등 조직적 행동을 불사할 것이다”라며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고 불리는 다단계 사기사건인데다 수사 기관이 적극 협조한다면 조씨를 잡지 못할 리가 없는데 조씨의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경찰은 2009년 조희팔과 핵심 주동자 등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자 명단에 올렸으나 조희팔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희팔이 중국으로 밀항한 사실은 확인됐으나 밀항 이후 지인들과의 통화내역을 조사하니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거의 없어 조희팔의 행적을 파악하기가 막연하다”라며 “조희팔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국제적 공조를 통해 조씨의 행적을 적극 찾을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choie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