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종북주의’ 퇴출로 새 통합 모색

▲ 뉴시스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진보세력이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파문 속에서 종북 성향으로 실체가 밝혀진 ‘경기동부연합’과의 단절에 애를 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상대책위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구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과 함께 이석기·김세연 당선자의 사퇴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기동부연합과 그 외 세력의 대결로 풀이된다.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종북주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종북’ 낙인을 벗고자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통합진보당 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은  지난 17일 오후 2시부터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부정 선거 문제와 함께 폭력사태까지 이른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놓고 10시간의 격론을 벌였다. 중앙집행위원회를 마친 김영훈 위원장은 자정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의 혁신적 쇄신을 주문하며 ‘조건부 지지철회’라는 중앙집행위원회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 날 김 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통합진보당의 현 상황은 자체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의사결정기구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그것을 복원하라는 것”이라며 “당 스스로 결정한 혁신안을 책임 있게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특히 이석기·김재연 두 비례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 일각에서는 구 민주노동당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민주노총으로서는 자칫 자신들이 종북주의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국민의 의혹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실제로 민주노총 내부에는 경기동부연합과 연결된 인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그 인사들을 하나둘씩 배격해 나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이석기 당선자가 자신의 거취를 두고 전 당원투표를 주장하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당원투표 결과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는 경기동부와 광전(광주전남연합)만이 남은 상태이며 울산연합과 인천연합 등은 이미 선을 그었다”고 부연했다.

다른 한 인사도 “경기동부가 얼마 전까지는 실세였지만 현재는 고립된 상태다. 다른 세력들이 연합해서 경기동부를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경기동부연합은 향후 10년 정도는 활동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향후 통합진보당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노동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통합진보당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사회도 구당권파에 화살

민주노총 외 시민사회도 종북 성향의 구당권파에 책임을 묻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4일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폭력사태에 대해 “국민의 정치적 대표를 자임하는 공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통합진보당은 폭력사태 관련자를 일벌백계하고, 정당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현재 폭력사태를 일으킨 구당권파를 지목했다.

일부 대학이 경기동부연합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에 속해 있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회장 박종찬)는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을 규탄하며 한대련 탈퇴 여부를 묻는 학생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려대학교가 한대련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한대련 소속 일부 대학에서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어 학생 조직의 변화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진보진영의 지형변화 예고

지금까지 크게 NL-PD로 나뉘었던 진보진영의 지형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80년대 후반 학번으로 아직까지 노동운동 분야에서 활동가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NL-PD 논쟁은 80년대부터 있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NL-PD 간의 갈등보다는 주사파와의 갈등이 더 컸다”며 “범 NL 성향의 활동가들은 대중운동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동부연합 실체가 밝혀지면서 오히려 NL계 모두가 ‘종북’이란 누명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신을 NL계라고 밝힌 한 활동가는 “난 주사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지금까지 NL계라고 하면 모두 주사파로 봐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분명 NL과 주사파는 성향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현재 분열된 진보진영이 이번 통합진보당 내분으로 인해 통합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4·11 총선 결과 당을 해산해야만 하는 진보신당은 재창당을 선언하고 노동성과 진보성을 더욱 강조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 통합진보당에 실망하며 등을 돌린 진보세력이 다시 한번 재결합해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힘이 약화된 통합진보당과의 진보 대통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아직까지 새로운 진보의 구성은 가능성만으로 일부에 의해 제기되고 있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정치역학관계 속에서 허황된 얘기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만약 진보진영이 새롭게 재구성된다면 진보의 분열을 틈타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보수진영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월 대선을 몇 개월 앞둔 상태에서 과연 새로운 진보의 탄생이 이뤄질지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주목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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