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불법사찰 핵심...“청와대는 나를 배신했다”

[일요서울|최영의 프리랜서]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400여 건의 사찰문건을 추가로 확보해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문건의 대부분은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보관 중이던 것으로 문건에는 불법사찰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 내용을 분석하면서 범죄 혐의를 구체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검찰은 진 전 과장의 진술을 추가로 보강해 수사의 결과를 도출해내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문건 내용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 안에는 누가 언제 누구를 어떻게 했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어 불법사찰에 대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아울러 이 사건의 검찰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의 어느 선까지 불법사찰에 개입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은 일단 청와대의 VIP가 직접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여부를 가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문건을 확보하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과 진 전 과장 사이에 빅딜이 있었는지 여부도 관심사다. 빅딜이 있었다면 진 전 과장의 조건은 당연히 자신을 보호해 주는 것이겠지만 검찰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들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VIP에 대한 수사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진 전 과장에게 문건 공개와 진술내용에 대한 수위조절을 조건으로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청와대 구속직전 사전교감
진 전 과장 외면한 내막

진 전 과장은 2010년 검찰의 불법사찰 사건 1차 수사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돼 왔으나 윗선의 보호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윗선이 그를 감싼 이유는 그만큼 폭발력이 큰 까닭이다.

진 전 과장은 기획총괄과장을 지내면서 청와대 하명 사건이나 제보 사건을 지원관실 각 팀에 배당하고, 각 팀에서 올라온 정보 등을 취합해 상부에 낼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말하자면 불법사찰의 핵심 사안이 그를 통해 움직인 것이다. 따라서 진 전 과장은 지원관실에서 은밀히 행한 사찰 내용 전반을 모두 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차 수사에서는 불법사찰이 아닌 증거인멸 혐의로만 기소됐다. 사찰 관련 파일이 저장된 지원관실의 업무용 컴퓨터 하드디스크들을 2010년 7월 무단 반출한 뒤, 외부업체에 자료를 삭제해 달라고 의뢰한 혐의였다. 이후 진 전 과장은 1심 법원이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청와대에서 진 전 과장을 위해 힘을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진 전 과장의 역할은 특별히 드러난 게 없었다. 하지만 폭로 이후 진 전 과장이 불법 사찰의 모든 핵심을 주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 전 주무관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핵심 측근이며 불법사찰 전반을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야권에서는 “당시 진 전 과장의 검찰 수사와 재판 등 모든 부분에 권력이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진경락 “양심선언하겠다”

장 전 주무관이 이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자 진 전 과장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에 정치권과 수사기관 등에서는 진 전 과장이 어디서 은신하며 누구와 접촉을 꾀하는지 안테나를 바짝 곤두세웠다.

[일요서울]이 정치권 소식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잠적 중 측근을 통해 청와대 고위 인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검찰 수사에 대해 논의했다.

또 진 전 과장은 주변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해 “조만간 양심선언을 할 생각이다. 현재 검찰 수사와 여론의 분위기를 볼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이번에 조사받게 되면 사실 모든 게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된 이상 장 전 주무관처럼 양심선언을 해 결자해지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결국 지명수배를 당한 뒤 쫓기던 진 전 과장은 지난달 13일 검찰에 출두했고, 3일 뒤 지원관실 특수활동비 516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차 수사에 이어 두 번째로 구속 수감됐다.

검찰이 최근 확보한 다량의 사찰문건도 눈길을 끌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체 누가 이런 작업을 지시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진 전 과장은 검찰에서 어떤 내용의 진술을 했는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검찰은 진 전 과장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정부분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이 찾아낸 문건도 진 전 과장이 검찰에 협조한 것이라는 소리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불법사찰 문건과 중복되는 것도 있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진씨가 숨겨 놓았던 자료가 가장 부피가 크고 핵심적”이라며 “수사팀을 증원하는 만큼 진씨로부터 의미있는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구속 초반까지만 해도 1차 수사 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침묵을 유지했으나 박영준 전 차관의 구속수감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또 수배기간 중 잠적해 온 진 전 과장은 검찰 수사 방향과 청와대 윗선의 태도에 따라 폭로 여부를 준비해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정황들로 미루어 진 전 과장이 검찰에 문건 중 일부를 건네 우선 1차 폭탄을 터뜨렸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검찰 주변과 정치권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이 확보한 그의 교도소 접견기록에는 “민정수석실의 세 사람도 수갑을 채워 여기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현 정권이든 MB든 불살라 버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청와대 소식통은 “접견기록이 모두 녹취되고 이것이 검찰 조사 자료로 쓰인다는 것을 진 전 과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진 전 과장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어딘가 연출된 느낌이 다분하다. 무엇인가 연막을 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진 전 과장-검찰 빅딜설

정치권과 청와대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박영준이 청와대와 진 전 과장을 연결하는 연결고리일 수 있다”는 추측이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진 전 과장이 자신이 구속되기 전 박 전 차장으로부터 받아낸 약속이 있지만 박 전 차장이 구속되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주변에서는 “진 전 과장이 문건을 검찰에 넘긴 것은 정치적으로 살 길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진 전 과장이 도피기간 중 야권 쪽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진 전 과장이 검찰에 자진출두하기 전 지인을 만나 ‘혹시 친노 쪽과 친분이 있냐, 민주당 쪽에 아는 사람이 있냐, 이강철(전 시민사회수석)을 잘 아느냐’고 묻고 다녔다”며 “그는 주변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나는 민간인 사찰 건으로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참담한 심경을 털어놨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양심선언을 한다 해도 도와줄 수는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탓에 야권 인사가 진 전 과장과 따로 접촉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진 전 과장이 검찰과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몸통이 청와대 VIP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수사도 VIP개입 여부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데 검찰은 이 부분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검찰이 이번 사건의 결과를 어떻게 끌어내는가에 따라 향후 대권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또 “진 전 과장은 이미 구속 전부터 검찰 수사에 대비해 준비를 많이 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말 그대로 일종의 샘플이다. 진 전 과장은 알려진 바와 같이 사찰의 중추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본론을 말해 줄 문건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검찰은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검찰이 진 전 과장의 진술과 폭로 그리고 자료 제공 수위 등을 놓고 여러 가지로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소식들을 미뤄볼 때 검찰 수사가 청와대 VIP로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는 진 전 과장이 VIP를 겨냥한 폭탄진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최근 여기저기서 들리는 전언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이 구속 전 청와대 핵심인사를 통해 자신에 대한 구제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봤으나 최근 청와대가 파이시티 사건이 생각보다 크게 확대돼 불법 사찰 사건을 덮을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진 전 과장과 사전교감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말하자면 진 전 과장이 팽 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대로 전개될 경우 진 전 과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불법사찰 사건이 특검으로 갈 수도 있다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