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연구소 내용 수집한 것은 사실”

[일요서울|조기성 기자]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에 뛰어들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여야 모두 안 원장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여권에선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측 인사들이 안 원장 검증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 원장에 대한 검증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이념과 사상·재산 형성 과정·안랩 주식 등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입장이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국가통치능력)에 대한 검증이다.

친박 측에서는 안 원장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부터 집중포화를 쏟아내겠다는 각오까지 보이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판이라는 링에 오르는 순간 이념과 사상 검증이 가장 날카롭게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 원장이 지금까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의 스탠스를 취해왔지만 현안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혀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당이 된 새누리당은 최근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향후 대선 정국에서의 연대 대상인 민주당에 이어 안 원장까지 끌어들여 공세를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친박 측 한 인사는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이라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상 야권과 함께 가기로 한 만큼 통진당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달 30일 안 원장의 부산대 강연은 절묘한 타이밍에서, 적절한 수위에서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건강하지 못한 이념문제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진보 세력에 대해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정당, 정치인은 입장을 솔직히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보편적인 인권이나 평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유독 이 문제가 안 보인다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건 사상의 자유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안 원장은 지난 3월 초에는 탈북자들이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국대사관을 찾아가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 문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층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층이라는 점에서 수구적 진보와의 선 긋기를 시도하며 지지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에 대해선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민주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단 사실에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다. 다양성의 시대에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꼭 필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은 기성 정당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 원장이 새누리당에서 공세를 취하려던 질문에 답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안철수 사상 검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친박 측 인사는 “통진당은 안 원장과 함께 공동 정부를 꾸리게 될 수도 있는 잠재적 파트너”라면서 “안 원장은 통진당의 대북(對北) 노선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할 처지가 아니다. 종북(從北) 노선의 진보당이 국가 운영의 한 축이 돼도 문제가 없는지,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진보당과의 관계를 어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산 형성 과정도 검증 대상

또한, 친박 측은 안 교수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 준비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조직망을 관리하고 있는 친박계 한 인사가 안철수연구소와 경쟁했던 기업인을 접촉해 안 교수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탐문했고, 안철수연구소 전직 연구원들도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안풍(안철수 바람)이 불면서부터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내용을 수집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직보를 하기 때문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최근 불기소 처분 결정을 받기는 했지만 안철수연구소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매입 의혹이나 안 원장의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지난해 말 본인 소유의 아파트를 11억 원에 매각한 사실 등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용석 전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안 원장 부부의 위장 전입과 양도세 미납부 등에 대해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안철수 비전에 대한 검증

사상과 재산형성 검증보다도 ‘안철수 검증’의 핵심은 국가 경영 비전과 철학이다. 안 원장이 그동안 행한 ‘아름다운 양보’나 ‘강연 정치’로는 대통령의 자질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정확히 읽은 안 원장은 지난달 부산대 강연에서 “지금 우리 세대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는 복지 정의 평화”라고 사실상 자신의 대선 키워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국가를 통치하려면 시대적 과제를 설정하는 능력(비전)과 시대적 과제를 구현하려면 정책능력, 추진능력, 제도관리능력, 인사를 쓰는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면서 “(안 원장이) 대선 출마와 관련해 계속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공인으로서 자세가 아니다. 자칫 검증 과정을 피하려는 꼼수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이 이제 국정 전반에 대한 소신과 정책 방향, 주요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창권 한길리서치 대표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론적 감성으로 젊은이들과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안 원장이 현실 정치에 들어와서 어떠한 비전을 내놓느냐가 검증의 대상이 될 것”이라면서 “혹독한 검증 절차를 거치면서 과연 안 원장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의 문제도 검증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빨리 나와라”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안 원장이 빨리 링에 올라 검증을 받으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안 원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미루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검증 필요성을 제기하는 자체가 국민들에게 안 원장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판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대표는 “대선에 출마하려면 ‘나는 이런 일을 하겠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등 모든 것을 공개해서 검증을 받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촉구했고, 이혜훈 최고위원도 “국민들이 충분한 검증을 할 수 있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한데 그런 판단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빨리 본인의 입장을 공식화하고 국민 앞에서 철저히 검증 받는게 좋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오 의원도 안 원장에 대해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손때가 묻어야 한다. 본인이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모든 것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증 피하고 싶은 안철수

대선 출마 등 본격적인 정치 활동 선언에 그가 뜸을 들이는 데에는 정치 상황과 여론 변화의 추이를 일단 지켜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란 게 대체적이다. 아직 여야 후보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출마 선언을 할 경우 집중적인 검증 공세에 시달릴 것이란 우려에서다.

하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유력 대선 후보로 지목되는 인사가 여론 검증을 피하려 대선 출마 선언을 미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 정치권이 충분히 국민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늦게 나와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검증을 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년 전 박찬종 전 의원과 2007년 고건 전 총리는 2년간 지지율 1위를 했지만 안 원장은 9개월을 못 버텼다”면서 “바람은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치평론가 중 상당수는 안 원장이 ‘현실 정치 벽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선 현실 정치를 감당할 의지는 물론 역량도 없을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샅샅이 검증하겠다는 박근혜와 검증을 피하고 싶은 안철수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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