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국군 영웅들이 북한에서 전사, 62년 만에 백골이 되어 미국을 통해 5월 25일 조국의 품안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1950년 12월 함경북도 장진호 전투에서 12만 중공군에 의해 포위돼 항전하다 산화한 영웅들이다. 12명 중 이갑수 일병과 김용수 일병 둘 만이 유전자(DNA)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이갑수 일병은 북한이 기습남침 하자 34세 고령의 나이로 아내와 4세·7세 남매를 남겨놓고 전선으로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이 일병은 7세 된 딸을 무척 귀여워했다. 딸 이숙자 씨에 따르면, “키가 컸던 아버님은 비가 오면 내 발이 젖는다며 진흙탕 길에 나를 등에 업고 등교시켜 주셨다.”고 회고했다. 이 일병은 눈에 밟히는 어린 남매와 아내를 남겨두고 북한의 적화남침을 격퇴하기 위해 포화 속으로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했다.

김용수 일병은 17세의 앳된 중학생 학도병으로 자원 입대 했다. 그의 조카 김해승 씨에 의하면, 김 일병은 형님과 함께 서둘러 군에 들어갔다. 입대하면서 형이 동생 용수에게 후방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일병은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키세요. 전 나라를 지키겠습니다.”며 전선으로 올라가 끝내 전사했다. 이어 조카 김 씨는 “할머니(김 일병 모친)께서는 생전에 작은 아버님이 형제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잘 생긴 효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면서 가슴에 묻은 아들을 절절히 그리워 하셨다”고 전했다.

“똑똑하고 효자”였던 17세 소년 김용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하면서 형님의 권유도 뿌리치고 전선으로 갔다. 그리고 장전호 전투에서 적과 처절하게 싸우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김 일병과 이 일병을 비롯한 14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부모, 아내, 자식들을 남기고 군에 입대, 목숨을 바쳤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붉은 공산당 마수에서 자유를 되찾았고 풍요가 넘쳐나는 행복한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은 그들의 희생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날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십 수조 원에 달하는 돈과 물품을 퍼주었는가 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자 남한 적화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고 변명해 주었다. 그들은 종북분자들이 합법적으로 날뛰도록 국가보안법을 폐지코자 기도했고,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던 적색분자들을 사면복권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다시 암약의 기회를 열어줬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은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종북반미 정당이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도록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역 육군 군의관 장교는 인터넷에 ‘연평도 포격은 남한 정부가 도발하도록 유도했다’고 썼는가 하면, 전국교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는 김정일 어록을 초등학교 교실에 급훈으로 걸어놓았다.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기도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잔존세력이 암약중이라고도 한다. 한 대안학교 측은 졸업식에서 북한이 팩스로 보낸 축사를 읽어줬다.

이대로 가다가는 김 일병이 “나라를 지키겠다“며 입대, 생명 바쳐 구출해 준 대한민국이 내부의 적에 의해 끝내 적화되고 마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반공의식 해체, 그 틈을 파고들어 침투한 종북분자들, 그들을 단호히 처단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 탓이다. 

김 일병이 “전 나라를 지키겠습니다”라며 마지막 남긴 말은 꺼져가는 우리 국민들의 호국정신을 다시 일깨워 준다. 1953년 휴전 후 60년에 걸친 긴 평화와 번영 속에 내 것 만 챙기기에 혈안이 된 국민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똑똑하고 효자”였고 조국을 사랑했던 김용수 일병은 백골이 되어 돌아와서도 조국 수호신으로 되살아났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