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우 전 의원이 본 정치 30년 5공 청문회편⑦ - 3당합당이 남긴 것 2탄

TV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를 출발했다 어쩐다 하면서 계속 생중계가 나오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예행 연습을 한다 어쩐다 하면서 북새통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동 총무는 계속해서 “어떻게 됐어? 빨리해봐!”하면서 재촉을 해대는 데 정작 백담사가 요구하는 것은 해결된 게 하나도 없었다. 사이에 낀 필자로서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의원방에 앉아 있는데 그 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도대체 그놈의 ‘선서’ 라는게 뭐야?”

나는 정말 그 선서가 뭔지 하도 골머리를 썩다 보니 이제는 헷갈리게 되었다. 도대체 백담사 측에선 어떻게 이해하고 참석한다고 통보했을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죽어도 문동환 위원장 앞에 손을 들고 선서는 못한다고 분명히 했는데 말이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도 이상해서 재빨리 형사소송법을 뒤적였다. 찾아보니 말 그대로 선서는 선서였다. 양심에 따라 증언하며 그 증인이 위증일때는 어떤 처벌도 받겠다는 증인의 약속이었다.

순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즉각 황명수 의원과 문동환의원을 만났다.

“그 놈의 선서가 별겁니까?”

내 느닷없는 말에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 이었다.

“그저 증인이 위증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잖아요! 그러니 전 전 대통령이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럼 위원장에게 하지말고 뒤돌아서서 방청객을 향하여 (바꿔 말하면 국민에게)하면 어떻겠느냐는 거요. 일단 선서는 선서잖아요!”

“안그래요?”

“허허 그것도 선서는 선서네요.”

“지금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인데…. 일단 한번만 양보합시다.”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게 해봅시다!”

휴~, 두번째 고뇌는 넘긴 셈이었다.


“뭐야 약속이 틀리잖아!”

드디어 백담사의 전 전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했다. 전 전 대통령이 2층 귀빈실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원내 총무실을 찾았다. 들어서니 이미 안현태 전 경호실장, 허문도 전 문공부장관, 이양우 변호사가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여간 험악한 게 아니었다. 언론들이 모두 상기되어 있는데 막 내가 앉으려는 순간 안 전 경호실장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런식으론 못해! 정 그러면 다 쏴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거야!”

여간 흥분한 게 아니었다. 그 쪽의 반응을 보니 그동안 백담사 측 의견이 잘 반영되었으니 걱정말고 나오시라고 한 모양이었다. 이제서야 제대로 설명을 했던 모양이었다. 참말로 도대체 어쩌려고 적당히 둘러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한동 총무의 입술은 이미 바짝 타 들어가 있었다.

“그럼 낸들 어떻게 합니까. 내 마음 대로 되는건 아니잖소!”

“뭐요 그럼 그동안 약속은 뭐요? 이건 약속이 틀리잖아.”

그쪽에서 워낙 흥분하고 나오니 이한동 총무는 말문이 막혀버린 듯 그때부터는 아예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뿐 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흥분한 사람들에게 내가 나서서 뭐라 말을 건낼수도 없는 일. 나는 일단 이 총무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합니까. 일단 전 전 대통령이 이미 도착했으니 가서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합시다.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고 하니 일단 이야기라도 해보도록 합시다.”

“그래? 가봐! 가봐! 당신이 가서 설명해봐!”

이한동 총무도 참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 끔직히 모시던 분이니 그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래도 내가 제일 만만한 편이었다. 물론 내가 11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는 했지만 단독으로 마주해 본적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크게 빚을 진 것도 아니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서…

나는 이민섭 간사(광주 특위간사)와 함께 귀빈실로 향했다. 귀빈실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경호원들이 쫙 서있고 과거 민정당의 고참 의원들이 옆에 앉아 있었다. 언제 그렇게들 많이 와 계셨는지 여기 저기 의원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 이 아닌가. 특히 과거 전 전 대통령으로 부터 각별한 애정을 확인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와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완전히 현직 대통령의 국회방문을 방불케 했다. 이민섭 의원 또한 과거 전 전 대통령과 잘 알고 있었는지 들어서자마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전 전 대통령을 직접 대면하고 말을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백담사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유난히 하얀 피부가 더 하얗게 빛나며 그 분위기 속에서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어차피 공을 던져야 할 사람은 나였다.

“저는 5공특위를 담당하고 있는 간사 장경우 의원입니다.”

“아! 이야기 들었습니다. 앉으세요!”

“이제 곧 청문회가 시작됩니다. 윗자리에는 위원장이 있고 그 밑으로는 증인을 도와줄 수 있는 변호사석이 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가 앉을 자리입니다. 방청석은 이 반대쪽에 있습니다.”

나는 일단 탁자 위에 종이로 미리 그려놓은 설명서를 통해 손으로 집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선서를 이야기할 차례다.

“들어 가시면 위원장이 ‘증인 올라오시오’ 이렇게 말을할 것입니다. 그러면 단상으로 올라가서 위원장을 향하지 말고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방청석을 향해 그러니까 국민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준비한 선서문 을 읽으셔야 합니다.”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전 전 대통령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옆 좌석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래 그런것 안하기로 했잖아? 측근들에게 당신들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지?”

이 말에 갑자기 모든 사람들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듯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나에게 맡겨진 책무 였다.

“웬만하면 우리도 증인선서만은 피해보려고 바로 오늘 아침 이 순간 까지도 노력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못하고 타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형사소송법의 선서의 의미를 보니까 양심에 따라 증언 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굳이 위원장에게 서약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앞에 양심에 따라 증언하겠다는 약속을 다짐하는 것 이므로 반드시 하시되 국민을 향해 한다는 뜻으로 방청석을 향해 하시면 됩니다.”

한 말을 또 하느라 나도 긴장했다. 긴 설명을 듣고 나니 전 전 대통령도 체념한 듯 “알았어요” 한 마디를 내던지고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는 듯 하더니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고생들 하시는 구먼…. 그런데 두분 말이요 내가 이거 한 가지만 얘기하겠소.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 지는 법이 군대에서는 있소. 내 오늘 이 한가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소.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음. 알았습니다.”

나는 일단 방을 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1942년 4월 12일생
●경기중·고/고려대 경영 졸
●대한축구협회부회장
●대한수영연맹 명예회장
●제 11·13·14대 국회의원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 총재(현)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아·태 지역위원회 의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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