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를 저지른 경영인의 내부 인사조치가 대북사업의 수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만의 하나, 국민 여러분께서 ‘비리 경영인’의 인사 조치가 잘못 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저는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선택하겠습니다.” 북한당국이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에 대한 강력한 불만을 표시하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현대 홈페이지에 자신의 심경을 밝힌 글이다. 현 회장은 김 부회장을 ‘비리를 저지른 경영인’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부회장의 퇴진이 일파만파로 치닫고 있다. 현 회장과 북한 측의 ‘힘’겨루기는 이미 ‘선’을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은 김 부회장의 원직 복귀 요구가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금강산 관광 축소, 롯데관광에 개성관광 제의를 하는 등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대의 북한사업 독점권이 일순간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양측간의 ‘대타협’이 없는 한 현대 측이 해도 “대북 관광사업 포기 또는 일시 중단”을 선언하거나 북측이 “백두산 관광의 무기 연기를 통보하는 것만이 남았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대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회장은 이번 파동의 발단이 된 김 부회장의 비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김윤규 부회장의 비리가 무엇인지에 쏠리고 있다.현 회장이 숨겨놓고 풀지 않는 김윤규 부회장의 비리 X파일은 무엇인가.

특혜분양 건 “‘특혜’가 아니라 오히려 ‘부탁’이었다(?)”

<일요서울>이 단독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현 회장측이 확보하고 있는 김 부회장의 비리는 금강산 옥류관 분점, 온정각 시설 분양, 개성공단 매점에 대해 친인척에게 특혜를 주고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사업소에서 불법으로 달러를 반출하다 북한 당국에 적발된 사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김 부회장의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도 나돌고 있지만 사실 확인은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이에 대해 김 부회장의 최측근 인사는 다른 말을 한다. 특혜분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일례로 개성공단의 매점을 분양하고 싶었으나 당시만 해도 대북비즈니스의 불안정성 때문에 큰 매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뜻 나설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친인척들에게 부탁하고 사정해서 분양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인사의 설명이다. 이를 “현 회장이 물고 늘어진 것일 뿐, 솔직히 개인적인 착복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여자 있었나(?) 빈번한 술자리 오해불러

김윤규 부회장은 아내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행사에 같이 나갈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김 부회장이 다른 여자가 있다는 의혹이 흘러 나왔다. 현 회장이 이에 대해 발끈했다는 의혹제기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다. 현 회장이 대북사업 ‘원로’이고 김정일 위원장과 몇 차례 독대까지 한 김 부회장을 당당하게 내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도덕적인 문제와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여자였고, 그런 여자문제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김 부회장을 음해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며 신빙성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특히 김 부회장의 측근은 사업을 하다보면 빈번한 술자리를 갖는 것이 예사라며 문제가 될 정도로 여자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정일의 낙점 사실은 김부회장이 손 써준 덕분(?)

김 부회장의 측근은 현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두 번째 만남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도 김 부회장이 뒤에서 손을 써준 덕분이지 현 회장을 대북 파트너로 여겼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현 회장이 방북했을 때 북측은 김 부회장을 대표로, 현 회장을 비서로 취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현 회장이 매우 화가 났다는 것. 이에 김 부회장이 북한 당국자들에게 “나는 경영인이고 그녀는 오너이다, 그러니 내 얼굴을 봐서라도 대접을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방문 때는 북한측이 현 회장을 극진히 대접했고, 이에 현 회장은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현 회장은 ‘더 이상 김 부회장의 그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 김윤규 반격카드 3가지 시나리오

김윤규 부회장이 드디어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LA에 위치한 민주평화통일 사무실에 얼굴을 내민 것. 김 부회장은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서울에 있으면서 현대측의 대응전략에 대해 고심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된 상태에서 LA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나리오1 독자행보설

이날(14일) 민주평통 서울지역 부의장 자격으로 LA 민주평통을 방문한 김 부회장은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 “대북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또 “(대북사업은) 잘돼야 한다. 내가 힘이 되고 필요하다면,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독자적인 대북사업 추진도 염두에 둔 듯한 의미심장한 발언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현대측에 사직서와 함께 소명서를 제출했지만 현 회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자 화가 나있는 상태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그가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에도 사실상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신의 난’이 벌어질 공산도 커지고 있다.

시나리오2 정부+북한연대설

김 부회장의 한 측근은 “김 부회장이 어차피 정부에서 대북사업을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양자간의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김 부회장 자신의 북한네트워크를 이용하기 위해 조만간 러브콜을 보내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 장관급 회담 참석에 앞서 지난 1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북측 요구대로 김 전 부회장의 복귀를 받아줄 것을 요구했다고 알려져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나리오3 제3의 기업 접촉설

일설에는 위의 두 가지 모두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북한당국이 롯데관광에 개성관광을 제의했듯이 제 3의 기업을 접촉하여 독자적으로 대북 관광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당국이 현 회장의 현대아산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서 김 부회장과 손잡은 기업은 급속도로 대북관광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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