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사무총장 당 대표보다 막강”
국회·당직 인선 청와대-사무총장 ‘직거래’
이재형 당 대표 ‘칭병’하다 ‘내출혈’로 병도져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워요!”
민정당 초창기 당 대표(이재형)와 사무총장(권정달)사이에 겪었던 많은 일들은 내 정치인생의 첫 출발이었다.

정치에 대한 선입견과 현실 정치에서 겪었던 숱한 경험들은 훗날 정당 활동과 국회의정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시 민정당은 사무총장의 절대적인 권한과 독주 속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에 당대표와 사무총장간의 업무 처리 방식이나 견해차로 내가 치러야 할 곤욕과 곤혹스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빈도수와 강도를 더해갔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고위 당직자 회의 및 집행 위원회 때 마다 제일 난처한 건 나였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미리 사무총장이나 사무차장의 방에서 자신들끼리 회의를 마친 연후에 참석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회의는 절차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출석율이 저조하거나 뒤늦게 참석하는 예가 많았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다 결정난 일들을 형식적인 보고만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었으니 회의참석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됐었나 보다. 이재형 대표는 집행위원회 의장으로서 이미 회의 준비를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주 보고자인 권정달 사무총장이 나타나질 않으니 “왜 안오나?”며 재촉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 또 나는 권 사무총장의 방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가보면 정작 그 자리에 몇분들이 그냥 앉아 방담을 나누고 있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다고 그대로 보고 할 수는 없는 일.

“조금 급한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곧 올라오시겠답니다.”
참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회의에 나타난 권 총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깎듯한 태도로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군 특유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면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래저래 중간에서 나만 죽어나는 것이다.

사실 곤혹스럽기는 주변 사람도 마찬가지였을게다.
역시나 주례회동 때도 권 총장은 제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권 총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항상 회의는 조금씩 늦어졌다. 그날도 회의가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 대표가 당시 대변인 이었던 봉두완씨를 향해 물었다.

“봉 의원은 누구 대변인이요?”
“그거야…당과 대표의 의견을 전달하는…”
“당대표의 의견을 전달한다…? 그런데 말야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왜 엉뚱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가는 거죠? 왜 사전에 나에게 이야기 없이 마음대로 성명을 발표하고 그러는 거요.”
“…”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요.!”
이 대표의 말은 단호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말이 끝나자 순간적으로 터져나온 봉 대변인의 말인 즉,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워요!”였다. 순간 좌중은 까르르, 웃음 바다가 되고 말았다.

세상에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터뜨렸을까? 봉 대변인이 워낙 유머가 많은 사람이다 보니 그나마 그렇게 넘어갈 수 있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수밖에 없었다.

말그대로 원칙을 따르자니 실세로 장악된 당의 현실이 울고 그 현실을 따르자니 원칙이 울었던 것이니… 어찌됐건 당시 당의 상황은 이래저래 여러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럭저럭 나 혼자 속 끓이고 말면 끝나는 일은 그런데로 견딜만 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일이 터질 때 였다.

분명 ‘대표에게게 보고 안한 건’들이 조간신문에 쏟아져 나올 때는 정말 속수무책 이었다. 어느 때는 기사가 난 신문을 슬쩍 숨겨 보기도 하고 또 엉뚱한 일을 핑계삼아 신문 보는 시간을 뺏어 보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비밀 아닌 비밀’은 오래 지켜 질 수 없는 법. 선거가 끝난 얼마 후였다. 하루는 내가 출근하자마자 나를 향해 이 대표가 “장 보좌 들어오시오” 하는게 아닌가. 또 무슨 일이 터진 게 분명 했다.

“어제 당에 아무일 없었나? 뭐 보고 올라온 것 없어?”
“제가 어제 저녁 늦게 퇴근했는데…그때까지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저런 쯧쯧쯧…지금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보좌역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몰라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아뿔사! 뭔가 큰일이 일어난게 분명했다. 나는 강창희 사무총장 보좌역과 김유상 총무 국장을 찾아 갔다. 아니나 다를까. 주요 국회직과 당직 인선이 당대표의 결재도 거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당 총재의 결재를 청와대로부터 받아내려 왔다는 것이 아닌가? (당시는 대통령이 민정당 총재 였다.) 쉽게 말하면 당대표 결재를 받으려면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할테니 청와대와 ‘직거래’를 해버린 것이다.

이 대표는 선거가 끝났으니 분명 주요 국회직과 당직 인선이 있을텐데 도무지 보고가 없자 이미 사태를 직감하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 막 발을 들여 놓은 나로서는 전혀 짐작도 못한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비단 그때만이 아니었다. 사소하게 발표되는 총장의 기자 간담회 혹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반영되는 모든 당의견이 그렇게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과연 청와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인지, 아니면 당의 실세들이 대표 결재중에 귀찮은 일들이 생길까 그랬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그거야 당사자들만이 알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아무리 일상화 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주요 국회직과 당직 인선만큼은 사안이 간단치가 않았다.

우선 당대표로서 느끼는 모욕감도 컷을 것이요, 차후 당의 운영이나 정책 등 중요 결정을 할 당직인선에 관한 문제이니 대표로써 그냥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이재형 대표는 “결국 내가 결재를 안하면 공식 발표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했는지 집에서 칭병(병이 있다고 핑계를 댐)을 하고 안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예 버릇을 고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분명했다. 정작 답답해진 것은 사무총장과 원내 총무 등 당의 실세들이었다. 아무리‘얼굴마담’으로 생각했다해도, 당대표가 나와야 뭘 해보지 아예 얼굴을 안 비치니 일 자체가 진행이 안되는 것이다. 또 내가 곤욕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아픈거냐? 얼마나 아픈거냐!”고 물어 오는데 나로서도 참 난감한 일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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