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셈법 ‘분주’ 정치인·고위공무원, 점괘에 기댄다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고위공직자, 기업·사업가들이 역술가들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쪽 줄을 잡아야 좋을지를 결정하기 위해 점집을 찾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분주한 것. 특히 예비 대선주자들이 앞 다퉈 출마를 선언하면서 흥미로운 레이스가 예고되고 있다 보니 순간의 선택이 당락을 결정하는 정치권에서는 눈치작전 중 하나로 ‘역술’이 선택되고 있다.
점은 대표적 불안상품이다.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는 사주·관상·점을 보는 철학관과 점집이 호황을 누리기 마련이지만 짙은 불황의 그림자는 점집과 철학관도 비켜가지 못했다. 사주카페라는 신종업체가 생겨나고 길거리에 무허가 점집이 우후죽순 들어선 데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돈 주고 운세 보기도 부담스럽다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역술에 자신이 의탁할 만한 대선주자 묻는 정치권 인사들
부인, 보좌관, 지인 대신 보내 사주풀이…대선 앞두고 역술바람

대선이 불과 다섯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12월 19일에 치러지는 18대 대통령선거로 여권이 정권을 재창출할지 아니면 야권이 절치부심 끝에 5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을지 결정된다. 현재 여권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독보적인 1위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잠룡들의 ‘군웅할거’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후보 경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정국이 요동치면서 대선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처럼 정국의 향방이 불투명한 가운데 ‘어느 쪽 줄을 잡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인가를 두고 번민하는 정치권 인사, 고위공직자, 기업·사업가들이 이름난 역술가를 수소문해 철학관·점집을 ‘노크’하고 있다.

점집이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용하기로 소문난 역술인에겐 총선 전부터 대선을 다섯달 앞둔 지금까지 정치권 인사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다 검찰 인사를 앞두고 검사들까지 문을 두드리고 있어 분주하다. 유명한 역술인은 예약이 밀려 얼굴 한번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도 들린다.

역대 대선에서도 대선 주자들이 출마에 앞서 역술·풍수에 기대 집터를 옮기거나 이장을 해 역술이 또 하나의 선거문화로 자리 잡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역술이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대선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한테 줄을 서야하나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사, 고위공직자, 기업·사업가들이 점술에 솔깃해하고 있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여서일까. 여러 역술인들에 따르면 역술인을 찾은 정치권 인사 등은 “여·야 중 어디가 정권을 차지할까”,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권주자 중 누가 대권을 잡을까”, “누구 밑에 줄을 서는 것이 이로운지”등등을 유명 역술인들에게 거듭 묻는다. 이들로 철학관과 점집이 붐비고 있다고 역술가와 무속인은 입을 모은다.

지난 총선에 유명 철학관과 점집이 예비정치인 등 정치권 인사들로, 인사철에는 고위직을 바라는 인사들로 문전성시였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 속에서 역술을 통해 불안을 달래고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를 가지는 것. 이른바 역술을 통해 상태가 없는 약으로 환자 상태가 호전되는 현상인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를 얻기도 한다.

정치권 인사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한 역술가 A씨는 “정치권 인사들은 공천 심사를 시작할 즈음에 가장 많이 찾아온다”며 “대선을 앞둔 현재는 대선주자보다는 어느 쪽에 줄을 설지를 고민하는 인사들이나 이미 특정 대선주자에 줄을 선 인사들이 찾아와 향방을 묻는다. 자신이 속한 당에 대한 점을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위급 공무원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가 B씨는 “대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 고위급 공무원, 기업가 등이 많이 찾아와 대선에 관한 것들을 묻는다”며 “특히 요즘에는 인사철을 앞두고 검사들이 인사를 비롯해 재물복 등을 많이 묻곤 한다. 친분이 두터운 검찰 관계자들과는 수시로 전화 상담을 하기도 하고 미리 귀띔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논현동에서 신점을 보는 한 무속인 C씨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 윤곽이 드러난 대선주자 중 몇몇은 대선 판세에 뛰어들기에 앞서 점집을 찾아 점을 보고 상담을 한 것으로 안다”며 “보통 지인의 소개로 점을 보러 온다. 정치권 인사들은 본인이 직접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어 가족이나 지인 등을 통해 은밀히 자신의 사주를 넣어 점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다른 역술가 D씨는 “자주 특정 사주팔자를 물어봐 사주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며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하루에 몇 명이 찾아온다고 통계를 낼 수 없지만 요즘에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가족, 보좌관, 기업·사업가들이 주로 찾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여야 현역 의원들이나 고위급공무원, 기업가 등은 대선 향방에 알려주는 역술가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있다. 이들은 본인이 직접 가기보다는 부인이나 보좌관, 지인 등을 통해 역술가나 무속인 등을 보내 사주나 점술을 본다. 은밀히 무속인을 찾아가 자신이 의탁할 만한 대선주자를 찾고 어느 계파에 줄을 서야할지를 가늠해보는 것. 대선향방과 표심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이 승자 독식구조인 만큼 패자 쪽에 줄을 서게 되면 정치적 타격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특정 후보에 줄을 선 정치인들이 한층 더 역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도운 후보의 당락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는데 줄을 잘 서면 고위직 감투를 쓸 수 있고 요직을 꿰차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고민은 깊어져가고 있다.

대선 판마다 등장한 역술마케팅
올해뿐 아니라 역대 대선에서도 정치권과 역술·풍수는 ‘긴밀한’ 관계였다. 대선 후보들이 조상의 묘터를 옮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대권을 쫓아 선영을 이전한 정치인들은 김종필, 이회창, 김대중 등이 있다.

2001년에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16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선대 묘를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선영으로 이장했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대표도 대선 출마 당시 조상묘 9기를 풍수지리가들 사이에서 명당묘로 소문난 충남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 선영으로 옮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1995년 11월 조상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한 2년 후 대선에 또다시 뛰어들어 15대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오랜 정치적 무대인 동교동 저택을 뒤로하고 일산으로 이사했는데. 이는 동교동 자택에 머무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풍수지리학자의 이야기를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권과 점집의 유착 사례도 있었다.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감록에서 ‘두미재전’(頭尾在田·이름 앞과 뒤에 밭전자가 들어간 이가 대권을 잡는다는 뜻) 부분만 발췌, 자신의 이름 앞 뒤에 ‘전(田)’가 들어간다고 홍보해 재미를 짭짤하게 봤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감록에서 진인이 남해의 섬에서 출현한다고 예언했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1992년 대선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선 후보가 되자 정보기관이 유명 점술가들에게 ‘YS 대세론’을 전파하도록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 측도 “양김 시대는 끝나고 정도령 시대가 왔다”며 역술과 무속을 활용하기도 했다. 전근대적 예언록인 정감록이 현대의 정치인들에게는 역술 마케팅으로 득세하고 있는 셈이다. ‘구전효과’를 이용해 판세 변화를 꾀하는 고도의 선거마케팅 전략의 성격이 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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