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서버 압수수색, 여당은 개인비리로 치부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검찰의 수사 공정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이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체증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당내 선거 부정 선거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과 새누리당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통합진보당에는 서버 압수수색이라는 강수를 뒀고 새누리당 당원명부 유출에는 수석전문위원 이모(43)씨와 명부를 돈 주고 산 문자전송업체 대표 이모(44)씨를 구속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일고 있는 또 다른 의혹은 수사하지 않고 개인비리로 몰고 가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발 빠르게 새누리당 당원명부 사건을 처리하는 듯 보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가는 것 아니냐며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연 ‘돈을 받고 팔기 위해 당원명부를 유출한 것이었겠느냐’는 추측부터 ‘이런 사고가 더 있을 가능성도 충분이 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빠른 수사가 오히려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만약 진보통합당이 여당이고 새누리당이 야당이었다면 이렇게는 못했을 것이라며 검찰을 향한 불신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통합당 내부에서는 “만약 통합진보당이 여당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했겠느냐”며 검찰의 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보통합당은 검찰이 지난 5월 21일 불시에 들이닥쳐 서버와 당원명부를 압수해 가자 강력히 반발했다.

강기갑 비당대책위원장은 5월 22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길태기 법무부 차관을 만나 “통합진보당이 수사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검찰의 압수수색에도 반대해왔다”며 검찰의 강제수사를 비난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또한 “당원명부가 들어있는 서버 압수는 사상 유례가 없는 정당 탄압이며 실제로 당 활동에도 심각한 장애를 준다”며 서버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당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당원명부를 빼앗긴 진보통합당은 검찰이 당원명부를 분석하기 전에 찾아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검찰은 제3 정당으로 급부상한 진보통합당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했다.

“여당, 아니 제1야당이라면 이랬을까”

서버를 빼앗긴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정부와 검찰에 크게 분노했다. 당 내부의 문제를 검찰 스스로 판단해 수사에 돌입한 것은 정당 정치에 위배된다며 정부와 검찰을 비난했다.

일부 당원들은 “만약 우리가 집권여당 아니 제1야당이었어도 이렇게까지 했겠느냐”며 “통합진보당 모든 당원을 종북으로 몰더니 당원명부마저도 빼앗아 간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검찰 수사에 반발했다.

특히 통합진보당 내 민주노동당 계열 당원들의 분노는 더욱 컸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두 ‘종북주의자’인 것 마냥 국민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한 ‘진보’라는 말을 꺼내면 곧바로 ‘종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계열의 통합진보당 당원은 “일부 보수언론에서 계속해서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무조건 ‘종북’을 강조하다보니 많은 주변인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며 “여당과 야당에도 과거에 진보운동을 했던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종북주의자인가. 우리 당이 예상을 뒤엎고 13석의 의원을 배출하니 보수 세력들이 이에 충격을 받고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사실을 부풀리고 있다. 이에 검찰도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불편한 심기를 밝혔다.

이 당원은 “검찰이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과 관련해 서버를 압수한 후 일반 당원들은 안심하라고 했지만 언제 당원명부가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 개별 당원들에게 칼날이 들어올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여당 당원명부 유출, 주변부만 건드려

통합진보당의 당내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 파문이 지속되던 가운데 발생한 새누리당 당원명부 유출 사건은 다시 한번 국민들을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 이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220만 명이나 되는 당원명부를 단돈 400만 원을 받고 문자발송업체 대표 이씨에게 넘겼다.

당원명부 유출을 놓고 검찰은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해 수석전문위원 이씨를 먼저 구속하고 당원명부를 넘겨받은 문자발송업체 대표 이씨도 구속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내에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특히 비박 3인방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비판은 거셌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총선 당시 지도부에 책임이 있다”며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에둘러 지목했다.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당은 명부유출에 의한 부정선거를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야 한다. 은폐·축소할수록 당은 망가지고 대선은 어려워진다”며 “당사자들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남의 당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당시 지도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몽준 의원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역구 공천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해야 하는데 비상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안 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 일(당원명부 유출)이 일어난 것 같다”며 앞선 비박 2인에 힘을 실었다.

이런 당내 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지난 28일 이씨가 2009년 수석전문위원이던 시절 강원방송 인수와 관련 2000여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포착했다고 밝히며 개인비리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당원명부가 어떤 방법으로 유출되었는지, 또한 당원명부 유출이 이번에만 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핵심을 비켜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검찰은 ‘자신도 모르게 새누리당 당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보수층이 통합진보당을 압박하는 수단인 교사·공무원의 가입은 없었느냐’는 등의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 관계자는 “검찰이 또다시 수사의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정치검찰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권력에 눈치만 보는 검찰이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방증이다. 대상이 야당이었다면 검찰은 이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을 것”이라며 검찰을 꼬집었다.

검찰, 현 정부 들어 야당 압박 일변도

야권과 시민사회는 검찰이 ‘법치’를 유독 야당만을 공격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지난 1월 김경협 민주당 부천 원미갑 예비후보가 돈봉투를 돌렸다는 혐의를 포착했다며 수사에 착수했으나 돈봉투가 아닌 초대장으로 밝혀져 체면을 구긴 바 있다.

게다가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는 검찰과 이미 세 번째나 맞닥뜨렸다. 한 전 대표는 2006년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건설업자 한모씨로부터 9억여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끝으로 한 전 총리 본인이 아닌 측근의 뇌물수수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만나 한 전 총리와 검찰은 불편한 관계 속에 있다.

특히 야당은 그동안 검찰이 모든 정권 말기에는 각종 의혹을 해소하며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검찰은 미리부터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권력에 이미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라며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야권은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 검찰도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대선 정국에서 야권 후보가 여권의 강력한 후보인 박 전 위원장과 접전을 벌이게 될 경우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도 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권력 눈치 보는 검찰...대선 승리해서 개혁해야”

검찰이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의혹을 강하게 수사하는 이면에는 검찰 내 진보진영의 저력을 두려워하는 보수세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당장 진보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내고 대통령을 당선시키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진보진영이 규합되고 이를 통해 민주당과 연합전선을 펼치며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만약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검찰 개혁은 곧바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를 두려워하는 검찰 내 보수세력이 통합진보당의 아킬레스건을 계속해서 끄집어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균열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정가에서 돌고 있다.

진보정당에 정통한 소식통은 “통합진보당 내 경기동부의 존재는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알려졌으며, 진보신당이 분당할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민주노동당이 겨우 다섯 석에 불과한 미니정당이라 여론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제3당이 될 정도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부정 경선 의혹을 빌미로 검찰이 ‘사상 초유의 헌정파괴’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강제수사를 강행한 것이고 이와 함께 보수언론에서 진보진영을 종북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검찰은 어차피 권력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검찰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결국 올해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지속돼 온 야당 탄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간다. 국민들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27일 통합진보당의 3번 서버에서 그동안 당 관계자가 빼돌린 것으로 여겼던 ‘선거인 명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향후 검찰이 그동안 서버 분석 작업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검찰이 공언한 바와 같이 평당원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일부라도 유출돼 당우로 가입된 교사·공무원들의 신분이 밝혀질 경우 검찰은 야권 탄압에 앞장섰다는 야권의 엄청난 비난을 살 것으로 예상된다.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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