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일간지 P 기자 검찰에서 CD굽다 ‘덜미’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대선이 임박하면서 취재 기자들이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특종과 단독이 어느 때보다 많은 시즌이기 때문이다. 가장 바쁜 기자들은 정치부다. 여야 유력한 대선 예비 후보자들이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캠프가 꾸려지면서 사람과 문건, 그리고 파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의도뿐만 아니라 바쁜 곳이 또 있다. 바로 서초동 검찰 청사를 출입하는 출입기자다. 임기말 대통령 측근 비리에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수사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터져나오는 각종 게이트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 문건이나 정보는 수많은 기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언 유착과 검언 유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 6월4일 한 일간지 신문에 눈에 띄지 않는 박스형 기사가 실렸다. 다른 언론사에선 볼수 없는 단신이었다. 내용인 즉 한 현직 기자가 검찰 청사에 침입해 컴퓨터를 보다가 검찰 직원에게 들통 난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를 면한 기자는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유력한 보수 언론사에 다니는 P 기자가 덜미를 잡힌 곳은 중앙지검 15층 건물안이었다. 15층 사무실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5시로 검찰 직원이 퇴근을 하기전인 시간대였다. 또한 15층 사무실은 번호키로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 시건 시스템이 있다. 그래서 P 기자의 발언에 신뢰가 가지 않는 배경이 되고 있다.

보수언론 기자 검찰 건물 침입 왜?
무엇보다 P 기자가 침입하다 들킨 장소가 ‘영상녹화실’로 검사나 수사관이 피의자나 참고인 조사가 없을 때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다. P 기자는 이런 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도적’이거나 ‘상습적’으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게 검찰 관계자의 시각이다. 또한 당초 ‘컴퓨터를 봤다’는 진술과는 달리 영상녹화물을 CD로 굽다가 들켰다는 소문마저 검찰로부터 나오고 있다.

또한 영상 녹화실 컴퓨터에는 저축은행 비리와 불법 민간인 사찰관련 동영상 자료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P 기자가 사전에 무엇을 노리고 침입을 했는 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검찰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6월27일 통화에서 “해당 기자가 검찰 출입을 오래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검사와 친분이 깊다는 점을 미뤄 비밀번호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특히 영상녹화실은 수사가 없을 때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본인이 작심하고 들어가 도둑질을 한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P 기자가 그동안 ‘검찰발’ 특종이나 단독 보도가 잦았고 이번 침입이 처음이 아니라는 의혹마저 일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유야무야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실제로 P 기자는 해당 언론사에서 특종상을 4회나 받았고 불법 민간인 사찰관련 단독보도까지 유명세를 탄 기자라는 점에서 ‘초범’이 아닐 경우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데 힘이 실리고 있다.

이 검찰 인사는 “주로 입신양명과 출세를 바라는 일부 검사들이 기자들과 정보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게 기자가 정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 이는 커다란 도덕성 상실로 공무원으로서 자질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인사는 “해당 기자가 그동안 단독이나 특종을 자주 했다면 쉽게 도움을 준 사람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오히려 언론사 데스크가 해당 기자에게 불법적인 일을 독려하거나 시킨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언론사를 겨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선을 앞두고 특종을 바라는 기자와 유력한 대권 주자에게 줄을 대려는 정치 검사의 경우 검언 유착은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특정 언론사에 흘려 고의적으로 상처내기를 하거나 도움을 준다는 것은 조직으로서나 국가적으로 좌시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권재진 법무부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범죄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문건을 훔친 것이 드러나거나 직간접적으로 내통한 내부자가 발견될 경우 엄하게 처벌을 할 것이라는 게 검찰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 일각에선 건물 침입죄를 적용 ‘불구속 기소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울러 P 기자가 몸담았던 언론사의 경우 편집국장이 돌연 교체돼 사실상 P 기자건물 침입 사건 때문에 좌천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 내통자는 없나 ‘촉각’
한편 P 기자 사건이후 ‘검찰발’ 단독 및 특종을 자주한 보수언론 B 신문사의 A 기자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이 기자 역시 P기자와 마찬가지로 ‘문건을 훔쳐 특종을 한 기자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A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로 연이은 민간인 불법 사찰관련 단독 보도로 인해 검찰내에서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발 특종내지 단독보도가 모두 유력한 보수언론사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검언 유착에 대한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에는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언론과 검찰의 유착-민주적 제역할을 찾는다’는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 개최 배경은 ‘노건평 비자금 사건 보도’때문이었다. 검찰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비리를 수사중 5월 18일 “노건평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계좌에서 수백억원대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건평 비리사건은 삽시간에 비자금 사건으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사흘뒤인 21일 창원지검은 “노건평씨와 뭉칫돈 계좌 사이에 직접적인 거래는 없었고 연관도 없다”고 밝히면서 검찰의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토론회에선 ‘검찰과 특정 언론’의 유착관계를 끊기 위한 방안으로 ▲ 언론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 및 검찰 시민감시위원회 설치 ▲ 검찰 권력 감독하는 별도 수사기관 설치 ▲ 언론 상업주의 감시 및 공기능 확대 방안 마련 등을 꼽았다.

끝으로 토론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특종 경쟁’에다 이를 이용할려는 검찰과 대선 후보 사이에 언론이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에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