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 맞추기’, ‘엉터리 수사’ 비난여론 가열, 野 “정치검찰과의 전쟁 선포”

▲ 검찰이 12일 BBK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의 기획입국설에 입증자료로 이용된 '가짜편지'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를 내고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하고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 발표와 달리 BBK 가짜편지의 배후인물로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에서 BBK대책팀장을 맡았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지목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사진자료=뉴시스>
[일요서울|고동석 기자] 검찰이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단초를 제공했던 이른바 ‘BBK 가짜편지사건에 대해 물증은 있으나 배후 실체가 없는 단독 사건으로 결론 냈다.

관련자 전원은 무혐의 처분됐고,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결과는 누가봐도 가짜편지가 대필로 작성되고 전달되는 경로를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졌음을 밝혀놓고도 눈앞에 있는 실체적 배후와 몸통에 대해선 눈을 감아버렸다. 

민주당은 “BBK 가짜편지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상호비방과 흑색선전 속으로 몰아넣은 초대형 정치공작 사건을 검찰이 스스로 기만하고 정의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민주당은 이대로 가짜편지 사건을 덮는 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에 맞서 국기문란조사특별위원회 BBK가짜편지 조사소위라는 별도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대응에 착수했다.

소위는 13일 성명을 통해 자료(가짜편지)의 조작은 목적이 있기 마련이며 그 목적에 부합하는 수혜자에 대한 조사는 수사의 원칙이라며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는 이런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엉터리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 차원에서 정치검찰공작수사대책특위를 구성 더 이상 소수 정치검찰들이 권력에 눈치보기식의 수사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했다.  

가짜편지에 드러난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내막

민주당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2007년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클린선거대책위원장에게 가짜편지를 건넨 은진수 이명박 대통령후보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이 한나라당 BBK대책팀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이 팀의 성격은 네거티브 방어에 주력했는데 은 전 감사위원이 총괄했다.  

신명 씨가 썼다는 '가짜 편지'2007년 대선운동이 무르익어가던 11BBK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김경준(46)이 입국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와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을 상대로 BBK 의혹과 무관한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몰아세운 증거 자료가 바로 조작된 가짜편지였다.

김경준의 미국 교도소 수감 동료였던 신명화 씨가 출발점이었던 이 가짜편지는 대필자 신명양승덕(경희대 교수)김병진(MB캠프. 두원공대 총장)은진수(MB 캠프 BBK대책팀장. 구속수감)홍준표로 전달됐다.
 
이런 경로로 한나라당에 넘어간 가짜편지는 BBK 의혹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과의 무관함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하지만 가짜편지의 본질은 내용이 거짓으로 꾸며졌다는 데 있다.

김경준이 미국 교도소에서 신경화 씨에게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자”, “내가 증거를 갖고 한국에 가면 MB는 끝난다”, “한국에 송환되면 정치권의 도움으로 석방될 것이라고 했던 말들은 모두 지어낸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관여한 사실을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이 밝힌 편지가 작성된 경위를 살펴보면, 신경화 씨의 진술을 동생인 신명 씨가 대필하기 전 양씨의 지시가 있었고, 이렇게 대필된 편지는 신경화씨가 김경준에게 발송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상 이마저도 의도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김경준에게 보내기 위한 편지가 아니었기에,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가짜편지는 양씨에게 건네져 김병진 총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한나라당 MB캠프로 흘러갔다.

신경화씨가 김경준에게 부쳤다는 가짜 편지에는 자네가 '큰 집'(청와대)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며 자네와 약속했던 것들도 이행하지 못했고 그 약속들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등 입국을 만류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를 근거로 MB 캠프와 홍 전 의원은 청와대와 민주당이 모종의 거래와 요청으로 김경준을 기획입국시켰다고 청와대와 민주당을 공격했다.

김경준 기획입국설BBK의혹으로 코너에 몰려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로 몰아가면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던 중대 분기점을 제공했다. 마치 이 대통령을 음해하는 것으로 여론의 분위기를 반전키시는 효과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편지 작성과 내용, 전달 경위에서 나타나듯 누가 봐도 김경준 기획입국설은 MB캠프에서 기획된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효과도 컸던 정치 공작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가짜 편지의 배후에 특정 세력이 없었고,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신기옥 씨 등은 연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BBK 기획입국설'의 단초가 된 '가짜편지'를 작성한 신명(51·치과의사)씨가 '배후가 없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하며 13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서울=뉴시스>

신명 가짜편지 배후 인물은 최시중-은진수

이에 대해 신명 씨는 13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를 자청해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08년 편지 대필을 지시했던 양씨가 자신의 눈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손윗동서 신기옥 씨와 통화하는 것을 수시로 목격했다고 했다.

당시 신기옥씨는 양씨와 통화하면서 조금만 참아라. 다음에 조사받을 때는 괜찮을 것이라고 다독였다고 게 신명 씨의 말이다. 신기옥 씨가 가짜편지 사건과 연루돼 있었고, MB캠프 사이에서 중간통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자리에서 신씨는 가짜편지의 직접 개입한 배후인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MB캠프 상임고문)과 은진수 전 감사위원을 지목했다. 단적인 예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이명박 정권 출범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081월호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김경준 기획입국 시도를 신명을 통해 알았다고 밝힌 대목을 들었다.

최 전 위원장이 알았다면 당연히 MB캠프 BBK대책팀장이었던 은 전 위원도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신씨는 당시 MB캠프 법률팀에서 편지를 8번 검토했다고 전해들었는데 은진수 팀장은 휘하에 정확히 8명을 두고 있었다며 개입 정황을 제기했다. 은 전 위원은 홍 전 의원이 서울중앙지검 재직시절 슬롯머신 수사팀의 막내 검사였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조작된 가짜편지가 버젓이 존재하고 MB대선 캠프로 전달된 뚜렷한 경위와 정황, 배후인물이 누구인지 이미 드러나 있는데도 검찰이 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는 것.

무혐의 처분 내린 배경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검찰은 은 전 위원이나 홍 전 의원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며 면박을 준 점 등에 비춰 한나라당이나 그 관계자가 편지 작성을 기획했거나 편지전달 경위에 개입할 여지가 없는 구조라는 게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된 전반의 흐름을 조목조목 파악하고도 무혐의 처분하는 이유치고는 터무니 없이 설득력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헛점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번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한 결정적인 단서가 홍 전 의원이 가짜편지의 진위를 놓고 면박을 준 것이 MB캠프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구조'라고 단정지은 것인데, 신명 씨의 말대로라면 홍 전 의원은 신경화씨를 직접 대면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짜맞추기’, ‘면죄부’ ‘봐주기 수사라는 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고, 결국 검찰 스스로 한나라당과 MB캠프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오히려 부풀려 놓은 셈이 됐다.

그럼에도 검찰 관계자는 지금 입장에서 뭘 감싸고 할 이유도 없고, 증거와 법리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굳이 이 상황에서 감추고 유·불리하게 해석할 수도 없다. 이번 BBK 수사 결과로는 이게 팩트(수사결과), 그 이상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치검찰과의 전쟁 선포"

역설적이게도 민주당 정봉주 의원은 팟캐스트 나는 꼼꼼수에서 이 대통령의 BBK 의혹을 폭로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현재 홍성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같은 사건을 대하는 이런 이중적 사법처리가 민주당이 정치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하도록 부추겨 불을 질렀고, 이유야 어찌됐든 검찰의 가짜편지 수사는 권력 눈치보기에 급급한 '정치검찰'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결과를 내놓고 스스로 기름통을 지고 불섶으로 뛰어든 격이 됐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권력지향적인 검찰의 행태를 바로잡겠다며 정치검찰공작수사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번째 회의를 열었다. 특위는 법제사법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을 포함해 이석현·민병두·송호창·이상직·박범계 등 당내 저격수들과 율사 출신 의원이 총동원됐다고 할만큼 그 면면들이 예사롭지 않다.  

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천정배 의원은 정치검찰은 소수이지만 정치권력과 깊이 관련돼 있어서 영향력도 크고 국민에 대한 파괴력도 크다검찰개혁은 1%의 정치 검찰이 나머지 99%를 좌지우지하는 구조와 문화를 바꿔서 검찰 구성원 모두가 자랑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야당 의원들에 대한 공작수사 저지는 물론이고, 제도 개혁에도 착수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선 경선 레이스를 목전에 두고 이해찬 당 대표를 비롯해 당내 대선주자들도 앞 다퉈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제도 정비 등 부르짖고 있어 벼랑 끝에 걸린 검찰개혁은 19대 국회 최대 핵심 이슈이자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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