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또 12월 대선 관련해서 글을 쓰기가 좀 뭣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야 후보들의 대선 출정식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라 다른 화두를 잡기가 힘든 시기일듯하다. 대선이 이제 다섯 달 남짓 남은 시점이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이 워낙 강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로선 박근혜 후보가 강하게 앞서 나가고 있는 판세다.
여러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가장 지근거리로 박후보 지지율에 접근하고 있다. 현실 지지도 면에서는 분명 그렇게 나타나지만 안 교수는 결국 필적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안 교수가 정치·행정 경험이 전무 하다는 약점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대세론’이 더욱 힘을 받는다.
4·11 총선은 ‘박근혜의 위력’을 확인케 한 선거였다. 서울시장 보선 패배로 깨졌던 ‘선거의 여왕’ 신화가 활짝 되살아났다. 안철수 바람에 잠시 흔들렸던 박근혜 대세론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로 민주통합당이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였던 총선판이 ‘MB 심판론’을 비켜갔다.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세력의 탄압을 받았다는 피해자 이미지가 있었다.
‘무능한 MB'의 대안으로 박근혜가 비쳐지며 ‘미래 권력’으로 자리 잡은 효과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자는 여러 후보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박근혜의 생각과 발언이 곧 당론이 됐다. 충성도 높은 확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고, 2004년 차떼기정당 오명과 탄핵역풍을 뚫고 당시 한나라당을 살려내서 위기관리 능력도 인정받았다. 야권 연대의 위기감이 보수네트워크도 이루게 했다.
이정도면 지만(持滿)일 것이다. 가득 찼다는 뜻이다. 차면 넘친다고 했는데 벌써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보수의 결집이 확장성을 막는 암벽일 수 있다. 반보수와의 첨예한 대립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또한 보수결집에는 큰 성과가 있었지만 유권자들이 바라는 변화와 쇄신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보수진영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야당이 MB 심판론에 매달리지 않고 경제민주화와 민생개혁으로 비교 가치를 넓혀서 서민 대중을 설득하면 박근혜 대세론은 빛이 바래질 수 있다. 지난호에서 말했다시피 우리 현대 정치사는 군사 강압통치의 암흑기를 빼놓고는 희한하게 통치권력이 의회권력까지 갖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특별한 비등점이 없는 한 그랬다.
지금 소통문제가 시대적 아젠다(agenda)로 떠올라 있고 박근혜 캠프가 소통을 강조하지만 불통이미지를 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대선후보가 포용력을 넓히고 새누리당이 절박한 투지를 보여야만 표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국민과의 소통에 역점을 두는 열린 모습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박근혜의 강점이 약점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으로서의 박근혜 문제는 박정희 리더십과 겹쳐져서 큰 후광을 입어왔으나 시대착오적 측면에 대한 비판을 떼놓지 못했다. 역대 대통령 선거는 시대정신을 선점한 쪽이 늘 승리자가 됐다. ‘신보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이명박 정권이 초토화된 지점에서 박근혜 캠프가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