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의 승부… 대권주자들의 ‘슬로건 경쟁’

▲ 박근혜, 김문수,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대선이 5개월여 남았다. ‘시대의 책임’을 지겠다는 유력 대권주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을, 민주통합당은 ‘정권탈환’을 노리며 선거 전략에 여념이 없다.

특히 대선주자들의 출마선언과 함께 ‘시대정신’을 담은 각 후보들의 슬로건이 공개되면서 초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슬로건에는 ‘꿈’ ‘희망’ ‘사람’ ‘평등’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겨있지만 무엇보다 ‘경제’라는 가장 큰 이슈가 내포돼 있다. 지난 17대에 이어 18대 대선 역시 경제문제가 가장 큰 화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 ‘이명박 성공신화’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는 ‘개인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2012년은 ‘삶의 질’이 우선시되면서 복지, 교육, 행복 등이 강조되고 있다. 아울러 국민적 상실감에서 벗어나 희망찬 내일을 꿈꾸자는 내용도 함께 중시되고 있다.

이슈 선점을 위한 대선주자들의 ‘단 한 줄’

대선주자들의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한 줄의 메시지’를 선점하기 위한 후보 간 신경전이 날카롭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를 ‘한 줄’로 압축함과 동시에 유권자들의 공감을 사야한다는 점에서 ‘이슈 선점’을 위한 슬로건 경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꿈’을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웠으며, 우여곡절 끝에 경선에 합류한 김문수 경기지사는 ‘도전과 희망’을 제시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걱정 없는 나라’를, 김태호 의원은 ‘세대교체’를 각각 내세우며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을 제시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오고 있으며, 문재인 상임고문은 ‘보통사람’을 자임하며 대권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평등국가’를 강조하고 있으며, 정세균 상임고문은 ‘빚 없는 사회’를 전면에 내걸었다.

박근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여권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위원장은 대선 슬로건으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선택했다. 지난 8일 박근혜 캠프의 변추석 미디어홍보본부장은 대선 슬로건을 공개한 자리에서 “시대적 과제인 변화, 박 전 위원장의 정치철학을 상징하는 민생, 유권자가 원하는 개인화 등을 키워드로 슬로건을 만들었다”며 “기다려온 변화 박근혜, 국민의 삶과 함께 가는 박근혜, 내 삶을 위한 선택 박근혜 등이 더해져 슬로건이 나왔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박 전 위원장은 슬로건 공개 하루 전 자신의 트위터에 “누구든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잠재력과 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나는 꿈꾼다”며 ‘꿈이 이뤄지는 세상’을 거듭 강조했다. 대선출마 선언 후 첫 번째 일정 중 하나로 충북 청주 일신여고를 방문해 특강을 진행한 것도 자신의 슬로건과 궤를 같이 한다.

야권으로부터 ‘한 마디 정치’ ‘이미지 정치’를 한다고 비판받기도 한 박 전 위원장은 자신의 대선캠프에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을 영입했다. 조 본부장은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카피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또한 미디어홍보본부장으로는 변추석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장을 선임했다. 변 원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던 인물이다. 이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자신의 메시지’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의 슬로건은 표절시비가 붙으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대선 로고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로고와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임 전 실장은 이에 대해 “심각한 디자인 표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은 시민단체 ‘내가 꿈꾸는 나라’와 비슷해 표절의혹을 받고 있으며, 해당 시민단체는 박 전 위원장에게 사용 중지를 요구했다. 특히 단체 이름을 지었던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나에게 지적재산권을 행사하라는 분들도 있다”며 “복지, 경제민주화도 베끼더니 슬로건마저 베끼는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김문수, ‘마음껏 대한민국’

‘메지시 선점’을 위한 박 전 위원장의 화려한 캠프구성과 달리 자신이 직접 구상하고 발로 뛴 경험을 슬로건을 채택한 후보들도 눈에 띈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2일 경선룰에 대한 저항으로 불출마를 고려했던 김문수 경기지사가 ‘도전과 희망’을 제시하며 우여곡절 끝에 경선에 합류했다. 김 지사는 이날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대선 슬로건으로 ‘마음껏 대한민국’을 내걸었다.

그는 “나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가 되기를 꿈꾼다”며 “자유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돼야 한다. 모든 국민이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또 ‘함께 갑시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언급하며 새로운 도약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 지사의 슬로건은 평소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담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함께 갑시다, 위대한 대한민국’은 본인이 손수 짓기도 했다.

임태희 전 실장 역시 자신이 직접 만든 ‘임태희와 함께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듭시다’를 캐츠프레이즈로 내세웠다. 대통령실장 퇴임 후 4개월간 전국 민생탐방을 돌며 얻은 교훈을 본인이 직접 ‘한 줄’의 슬로건에 담아냈다.

김태호 의원은 ‘낡은 정치의 세대교체’를 대선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새누리당 경선후보 가운데 가장 젊은 그는 지난 2004년 최연소 경남도지사로 당선돼 두각을 나타낸 바 있으며, 2010년 8월 여권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거론되며 총리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젊은 정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그의 슬로건은 김 의원의 모습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간의 식상함을 버리고 ‘새로운 정치시대’를 제시한 그는 2040세대를 주 공략대상으로 하고 있다.

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

대선주자들의 메시지 경쟁은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 때문에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여타 후보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슬로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도록 했다.

손 고문의 슬로건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정치적 문구를 시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표현했으며, 특히 함축적인 메시지 안에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모든 것이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시대정신과도 잘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후보 진영에서 ‘단연 으뜸’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연간 근로시간을 2,000시간으로 줄이고 나머지 노동시간을 새로운 노동력으로 충원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자신의 정책공약이 그대로 반영된 문구다. 손 고문의 슬로건은 당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교섭단체 대표연설 토론회에서 자신의 영국유학 경험을 빌려 “유럽은 상대적으로 저녁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노동시간에 얽매여 있다”는 발언이 계기가 돼 탄생했다.

손 고문의 발언을 ‘저녁이 있는 삶’으로 구호화하자고 제안한 이는 손낙구 보좌관과 김계환 비서관으로 특히 손 보좌관은 민주노총 출신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향상이 유권자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슬로건 제작 배경과 관련해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향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젊은이들이 크게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내 유력주자로 분류되는 문재인 상임고문은 손 고문의 슬로건을 가장 크게 호평했다. 그는 특히 지난 10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대선주자 초청토론회에서 “손학규 상임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 슬로건은 정말 좋았다. 내가 나중에 민주통합당 최종 후보가 된다면 손 고문에게 그 슬로건 좀 빌려 쓰겠다고 요청 드리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보통사람’-김두관, ‘평등국가’

문 고문은 자신의 대선 슬로건을 ‘사람이 먼저다’로 정했다. 문재인 캠프 진선민 대변인은 지난 15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문 고문의 슬로건으로 ‘사람이 먼저다’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심볼은 담쟁이를, 메인 컬러는 담쟁이에서 따온 올리브 그린을 채택했다”고 덧붙였다. 캠프 측은 문 고문의 슬로건에는 홍익인간과 인내천 사상이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진 대변인은 슬로건과 관련 “이념·성공·권력·개발·성장·집안·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 고문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며 “슬로건 한 줄에 문재인의 인생, 철학, 비전, 가치, 정책 방향을 모두 담도록 했다”고 전했다.

문 고문의 슬로건을 만든 사람은 광고 마케팅업계에서 ‘히트브랜드 제조기’로 불리는 최창희 더일레븐스 대표가 맡았으며, 최 대표를 중심으로 카피라이터 정철씨가 함께했다. 정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아울러 현재 민주통합당 비례의원이 된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 등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유력주자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 국가를 향하여’를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이장 출신인 그가 행자부장관에 경남도지사 그리고 이제 대선을 꿈꾼다는 점에서 ‘평등과 기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인간 김두관’이 내세우는 주요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껏 걸어온 자신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인 경제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아울러 경제 전문가인 자신의 강점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고문의 슬로건은 참모들과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산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김영환 의원과 조경태 의원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대선 구호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의사 출신인 김 의원은 “국민의 화병을 고쳐드리겠다”고 선언했으며, ‘소상공인 화병치료 5대 공약’을 내거는 등 기존의 대선 공약과는 다른 재치 있는 문구를 선택했다.

또한 조경태 의원은 ‘민생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을 내세우며 ‘통합’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주의 극복과 부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국민적 통합을 전면에 내걸었다.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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