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여야 대권 주자들이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사실상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박근혜 후보를 비롯해 김태호 김문수 임태희 후보가 경쟁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 정세균 김영환 박준영 조경태 후보가 캠프를 차리고 일합을 겨루고 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은 과거만큼 치열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당은 박근혜 후보에 대적할 적수가 없다는 점에서 야당은 장외에 ‘안철수’라는 카드 때문이다. 최근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안철수 생각’이라는 책을 출간, 사실상 대권 선언이라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대선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대선 기획특집으로 역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본 2012년 대선을 전망해 봤다.

‘정치 실어증에 빠졌다’

어느 야권 캠프 인사의 자조섞인 말이다. 국민들이 정치 냉소주의를 넘어 입에도 담기를 꺼려한다는 얘기다. 최근엔 여야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정두언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이를 바라 본 국민들의 시선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자아냈다.

대통령 선거는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일년 전부터 대한민국이 ‘들썩’거릴 정도로 국민적 관심은 높았다. 87년 대선은 최초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돼 치러진 선거였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노태우 후보가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무난하게 당선됐다.

당시 55세로 군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내세운 슬로건(이제는 안정입니다)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대권을 거머질 수 있었다. 게다가 야권 단일화(YS-DJ)가 무산되면서 진보 진영의 표마저 분산돼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이로 인해 YS-DJ는 ‘군부시대의 종식’을 열망하던 당시 시민들로부터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또한 영남과 호남간 지역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됐고 선거 때마다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됐다.

87년 YS-DJ 후보단일화 무산 노 완승
92년 대선은 정당인 출신 YS가 당내 주류의(집권여당 민정당) 비주류임에도 대선후보가 됐다. 특히 ‘3당 야합’이라는 국민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한국 건설’이라는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캐치프래이즈를 통해 정면 돌파해 당선됐다.

대통령에 오를 당시 65세로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이 ‘물태우’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의 나약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은 ‘강한 이미지’를 표방한 YS에게 표를 던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 68세였던 김대중 후보는 ‘이제는 바꿉시다’를 슬로건으로 잡았지만 190만표로 패배했다.

97년 대선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비주류(주류 신한국당)의 주류였던 정당인 출신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YS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선 국민들은 재차 안정 희구형 대통령을 원했다. 73세의 고령의 나이가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됐고 또한 부드러운 이미지와 경제를 앞세워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나아가 지역적으로 ‘영남포위론’(DJP연대) 전략과 ‘내각제 공약’을 통해 ‘이회창 대세론’을 잠재웠다. 당시 이 후보는 ‘준비된 경제 대통령’의 DJ 구호에 맞서 ‘깨끗한 정치’를 내세웠지만 97년 외환외기와 겹쳐 39만표라는 근소한 표 차로 패배의 쓴잔을 들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신한국당을 탈당해 대선에 나선 ‘이인제 경선불복 사태’는 이회창 후보의 패배에 결정타였다. 

2002년 대선을 한 마디로 드라마 그 자체였다. 비주류중(주류 한나라당) 비주류였던 노무현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당내 주류였던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이인제 대세론’은 국민참여경선을 거치면서 삽시간에 무너졌고 ‘노풍’은 2002년 월드컵 성공으로 인기가 높았던 정몽준 후보와 여론조사 대결에서도 승리했다.

이변은 계속돼 급기야 ‘이회창 대세론’마저 넘은 노풍은 57만 표 차이로 극적으로 당선됐다. 특히 후보 단일화에서 패한 정몽준 후보가 투표 하루전날에 ‘지지 철회 선언’을 했지만 이는 오히려 노무현 지지 세력의 결집을 가져와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이변 속출’ 2002년 노풍 인제·몽준·창 격파
당시 56세였던 법조인 출신 노무현 후보는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새로운 대한민국-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나라다운 나라’를 표방한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를 안겨다줬다. 또한 지역적으로 ‘신행정수도 충청권 건설’이라는 공약을 통해 과거 ‘DJP 연합’과 같은 효과를 봤고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문제 역시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조했다.

2007년 대선은 10년 진보 정권에 신물이 난 국민들로부터 야권 후보는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졌던 선거였다. 오히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 치열한 당내 경선이 더 관심을 모았다. 이명박 후보는 주류의 비주류로 안정을 내세웠고 경제인 출신이라는 점을 들면서 ‘경제 대통령’을 강조했다. ‘국민성공시대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실용정부’를 내세운 이 후보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내세운 정동영 후보를 530만표라는 커다란 격차로 승리할 수 있었다. 역대 대선 결과중 가장 큰 표차가 아닐 수 없다.

당시 66세였던 이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 모습’을 흉내 내는 등 강한 리더십을 내세웠고 경부 대운하라는 청사진을 통해 국민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었다.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87년이후부터 안정형 후보와 변화형 후보가 교대로 정권을 잡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권을 잡은 후보자들 이미지 역시 부드러움(노태우)->강함(김영삼)->부드러움(김대중)->강함(노무현)->강함(이명박)으로 승부를 갈랐다. 또한 출신을 보면 육사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법조인 출신(노무현)과 기업인 출신(이명박) 대통령이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몸담았던 인사들이 대통령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안정과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였지만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친인척 및 측근 비리가 연일 터지면서 임기말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경제를 강조했지만 서민 경제가 악화돼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청년 실업자가 늘고 ‘88만원 세대’라는 생계형 젊은 빈곤층이 속출하고 있다.그리고 2012년 대선이 임박했다.

대선 출마선언을 한 인사는 10여명이 넘지만 대결 구도는 양자 구도로 흐를 공산이 높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가 유력하고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가 당 후보로 근접해 있다. 하지만 장외에 ‘안철수’라는 상수가 존재해 민주당 경선을 김빠지게 만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후보는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슬로건 역시 박 후보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내세웠다. 올해 60세인 박 후보는 외유내강형으로 강한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에 여성이라는 점이 양날의 칼처럼 작용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여성'vs'민간인’ 대결 부상
법조인 출신으로 올해 59세인 문재인 후보는 변화를 내세우고 있다.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감성적으로 접근했지만 강한 캐릭터로 평가 받는다. 반면 53세인 정당인 출신인 김두관 후보는 개혁을 추구하는 부드러운 이미지다. 그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한 국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김두관 후보가 친노 인사라는 점이 양날의 칼이다. 올해 65세인 손학규 후보의 경우 안정형 후보지만 비노반박(非盧反朴) 노선을 견지하는 만큼 강성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장외의 안철수 원장의 경우 경제는 개혁을 안보는 안정 지향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무명’이다시피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승리에 일조해 그 파괴력을 보여준 바 있다. 또한 부드러운 이미지에 올해 나이가 50세로 역대 대선 주자중 가장 젊은 후보다. 나아가 정치 영역에 발을 담근적이 없다는 점이 강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는 “역대 대통령을 보면 군인 법조인 경제인 정당인 출신으로 다양했지만 임기말 말로는 참담했고 국정지지도는 바닥을 쳤다. 공통점은 정치에 몸을 담갔던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었다”며 “하지만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나타났듯 이제 국민들은 대선 실험을 다 해봤고 남은 것은 여성과 민간인 출신 대통령만 남았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결국 이번 2012년 대선 구도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인 출신 여성 후보와 비정치인간 대결 구도로 흐를 공산이 높다”며 “이 구도는 대선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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