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일으켰던 제3후보, 안철수는 뛰어넘을까?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대선을 120여 일 앞두고 여야 대선후보들의 숨 가쁜 경선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원외의 제3후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제3후보들의 실패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안 원장이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여야 정치권에 속하지 않는 제3후보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등 대선판의 또 다른 ‘다크호스’로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본선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거나 출전을 하더라도 미미한 지지율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했다. 과거 제3후보는 누가 있었으며, 안 원장과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제3후보의 한계를 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안철수 지지율 급상승... 정치적 환멸감과 비례

대선출마를 저울질하던 안 원장이 최근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뒤 곧바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대선을 향한 그의 움직임이 본격화됨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그의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안 원장의 지지율도 동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부동의 1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앞서면서 여권의 가장 큰 견제 대상이 됐으며, 아울러 단일화에 대한 야권의 구애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 상승은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국민적 환멸감 역시 안 원장 지지율 상승에 한 몫하고 있다.

17대 대선, 깨끗한 기업인 문국현이 뜨다

과거에도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제1야당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가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곤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을 역임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깨끗하고 청렴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떠오른 문 후보는 범여권 단일화의 손길을 거부한 채 창조한국당을 창당,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택한 뒤 대선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에 비해 조직과 세에서 열세였던 문 후보는 결국 그해 대선에서 5.8%의 표를 얻는데 그쳤다.

고건 전 총리 역시 대선을 앞두고 대권후보로 급부상했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약점이었던 경륜과 조정능력이 높게 평가받으면서 유권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한때 3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강력한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범여권으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기도 했지만 북핵 문제 등 당시 현안과 이슈에 침묵하면서 소신과 과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본인 스스로 대권을 접어야만 했다.

16대 대선, 월드컵 열기로 정문준 지지율 상승

지난 2002년은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우리 정치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한해였다. 이른바 ‘노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당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무명에 가까운 노무현 후보가 집권여당 새천년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선경선이 끝난 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됐다. 당시 FIFA 부회장이자 2002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은 여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단숨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견줄만한 대권주자로 떠올랐고, 이후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 후보는 당시 국민통합21을 창당해 대선을 위한 조직과 세를 다졌지만 정당중심의 정치기반을 둔 집권여당의 노무현 후보가 결국 승리함으로써 정 후보는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가 진행되더라도 자당 후보가 결국 최종 후보가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15대 대선, 또 다른 대세론 이인제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박빙의 대선경선을 치렀고, 대중적 인지도에서 앞섰던 이회창 후보가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젊은 정치를 표방했던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이인제 후보는 경선에 불복, 탈당하고 새로운 독자세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그해 15대 대선을 치르게 된다. 대선에서 그의 득표율은 무려 18.9%를 차지했다.

이인제 후보는 당시 노동부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젊지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차기 유망주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개혁과 혁신을 주창했던 그는 젊은 층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으며, 제3의 후보로서 위협적인 지지율을 차지했다.

앞서 1992년에는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바람을 일으켰고, 대선까지 완주했지만 16%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또한 3당 합당(민자당)에 동참하지 않았던 박찬종 전 의원은 일명 ‘버버리 바람’을 일으키며 많은 여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1992년 신정당을 만들고 대선후보로 출마할 당시에는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6.4%의 득표율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안철수, 과거 제3후보와 다른 점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혐오감을 느낀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여야가 아닌 제3의 후보에게 눈길을 돌린다. ‘안철수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살펴봤듯 과거 제3의 후보들은 한때 위협적 지지율을 보이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본선에 들어서면 비교적 낮은 득표율을 보이며 고배를 마셔왔다. 이는 바로 제3후보에 대한 한계론이 존재하는 탓이다.

안 원장은 과거 제3후보의 ‘위협적 지지율’을 뛰어넘어 여야 유력 주자들의 지지율을 월등히 뛰어 넘는 ‘이기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대선승리의 핵심 키워드인 중도층과 2040세대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표 확장성 역시 뛰어나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안 원장이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특히 민간인 출신의 비정치인으로서 정파적 논리가 배제돼 무당파층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멘토로 알려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대선을 출마하더라도 결코 정당을 만들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무소속 후보로서 대선레이스를 완주하라는 것이다. 이는 당을 만듦으로써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안철수 열풍은 현재의 정치권이 과거 ‘3김 시대’와 같은 강한 고정표와 단결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가 추진되더라도 정당정치의 기반과 조직을 무너뜨리고 안 원장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는 곧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한 제1야당 초유의 사태가 대선에서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대중은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며, 대선은 더욱 그렇다는 점에서 안 원장은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더욱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높은 지지율이 대선 당일 투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한때 대세론을 형성했던 많은 제3의 후보들은 대선레이스를 완주하기도 전에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안 원장 역시 언제라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과거 군소정당 일부 후보에 대한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추구한 유권자들은 문국현이나 정몽준이 아닌 여당이나 제1야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지난해 10.26재보선 이후 ‘안풍’을 몰고 온 그가 과거 제3의 후보와 마찬가지로 그저 바람에 그칠지 아니면 정치지형을 바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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