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희 리스트’에 돈 받은 정치인 ‘벌벌’

새누리당 공천헌금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면서 사건의 당사자인 현영희 의원의 그간 정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 의원은 이번 총선 공천 과정만이 아니라 2010년 부산시교육감 선거 때도 돈을 살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의원은 지난 2002년과 2006년 부산시의원에 당선됐지만 17대(2004년)와 18대(2008년) 총선에서 공천을 신청하면서 배지의 꿈을 꿨던 것으로 알려졌다.

1000억대 부자로 알려진 현 의원이 이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인연과 친분으로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문과 함께 그의 후원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중진의원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현영희 리스트, 친박 당혹

현 의원이 부산 지역 의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후원금을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인 현 의원의 전 수행비서 정동근 씨가 중앙선관위에 넘긴 기록에 담긴 인물들을 대상으로 검찰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누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대부분이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인 것으로 전해져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박근혜 후보 대선가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및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씨는 선관위 제보를 통해 현 의원이 지난 4·11 총선 선거운동 기간 부산 지역 5~6명의 새누리당 출마자들에게 100만~500만 원의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대상은 재선의 A 의원과 B·C 의원, 부산 사상에서 출마한 손수조 전 후보 등 5~6명으로 알려졌다. 현 의원은 당시 기사 역할을 하던 정 씨와 함께 해당 지역구 출마자의 사무실을 직접 들러 격려금을 줬으며 12만 원 상당의 떡도 부산 지역 18명 출마자 캠프 모두에 전달했다는 것이 정 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B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현 의원을 만난 적이 없으며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이와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C 의원은 “사무실에 없을 때 현 의원이 한 번 찾아 온 적이 있다고 들었다”면서도 “현금으로 들어오는 어떠한 돈도 받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돈 봉투를 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또 총선을 전후해 친박계 총선 출마자 4명에게 차명으로 후원금을 보냈다고 제보했다. 이들 중에는 대구·경북(TK) 지역 친박 핵심인 D 의원과 새누리당 이정현(광주 서구 을) 최고위원, 현경대(제주 갑) 전 의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 공안부(이태승 부장검사)는 의혹이 제기된 출마자들 중 현 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당사자나 캠프 관계자를 불러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금품 관련 선거사범은 소액이라도 강도 높게 처벌하라는 대검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손 전 후보 측의 경우 정 씨의 제보내용을 선관위가 확인을 벌인 결과 135만여 원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일 “현 의원은 부산 지역 현역 의원들에게 ‘포럼 부산비전’ 회원이나 지인을 통해 차명으로 쪼개서 후원금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전·현직 중진 의원부터 19대 초선까지 이름이 나온다”고 전했다.

현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포럼 부산비전’은 4·11 공천 당시 ‘실세창구’로 통했다. 이 포럼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매년 창립행사 때마다 찾아온 거의 유일한 부산지역 모임이었다. ‘3억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도 포럼부산비전을 통해 활동했다.

특히 포럼 부산비전은 부산 지역 친박 의원들을 초청해 특강을 듣는 ‘명사특강’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최근까지도 새누리당 18~19대 현직 의원들이 강사로 나섰다.

여권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특강비 명목으로 후원금이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고 전했다.

현 의원은 또 총선 때 부산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자들 캠프를 돌며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에 출마한 의원 중 상당수가 포럼 부산비전 회원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선거 업무를 맡겼는데, 이를 현 의원이 소개해줬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부산 정가의 한 인사는 “부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들은 공천을 받은 후보들에 비해 정성(돈)이 부족해서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며 “현 의원이 현역 의원들과 워낙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현 의원도 자신이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다”고 말했다.

부산시교육감 선거 때도 ‘돈 선거’

이에 더해 현영희 의원이 지난 2010년 부산교육감 선거 당시에도 상당 금액의 돈을 살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 공안부는 지난 8일 이 같은 관련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의원에게 금품을 제공받은 이른바 ‘현영희 리스트’가 존재할 경우 부산 정가뿐 아니라 대선 판도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특히 현 의원이 부산교육감 후보 시절이었던 2010년 5월 선거사무소 개소식엔 현기환 전 의원을 비롯해 서병수·이진복·박대해·유재중·이종혁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 정계 관계자는 “지역의 마당발인 현 의원이 2010년 교육감 선거 때도 몇몇 중진 의원들과 지역 의원들에게 돈을 뿌린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차명으로 후원금을 주고 용돈 명목으로 현금을 건네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현 의원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후원금 배달”이라고 털어놨다. 현 의원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당시 선관위에 제출한 비용 이외에도 40억~50억 원의 선거비용을 더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이 중 상당금액이 지역 정치권과 친이·친박계 인사들에게 건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과정 의혹

이번 파문으로 현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 의원은 당초 정의화 전 국회부의장의 지역구인 부산 중·동구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정 전 부의장이 공천을 받으며 낙천했다.

정 전 부의장에 대해서는 공천 전부터 “지역 민심이 좋지 않다”,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서 하위 5명에 들었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한 부산지역 의원은 “당시 이 소문의 진원지가 현 의원이었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를 전해 들은 정 전 부의장이 직접 경고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여기다 공천헌금 파문이 터지자 당시 공천심사 과정에서 현기환 의원이 정 전 부의장을 비토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지역구 공천에서 떨어진 지역 정치인이 어떻게 당선권에 근접한 순위의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현 의원이 유치원연합회 부회장과 영유아교원교육학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꾸준히 유아교육 분야에서 활동을 한 점을 비례대표 공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현 의원은 이미 두 차례 시의원을 지내고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 등 유아교육 전문가라기보다는 지역 정치인에 더 가까운 인물로 전문직 비례대표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현 의원 외에 지난 비례대표 공천에서 유아교육 전문가로 류지영 의원이 비례대표 19번으로 공천을 받았다. 비례대표 공천에서 같은 직능에 2명이나 공천을 주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지적에 당 고위 관계자는 “이전에도 부산지역에서는 시의원 출신들에게 1~2명씩 공천을 줬다”며 “부산지역만 보면 새누리당쪽 여성 정치인 가운데 현 의원이 서열로 2~3위는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현 의원에 대한 지역 정가의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공천위가 이같은 면을 고려했는지 여부도 관심이다.

부산 출신의 한 의원은 “지역구 공천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여성 정치인이 별로 없는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비례대표를 줄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걸리는 게 현 의원이 워낙 돈이 많다 보니 돈을 많이 쓰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 의원 공천 과정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당시 비례대표 공천 심사가 과연 적절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현 의원의 남편인 임수복 강림CSP 회장 재산 외에도 친정이 상당한 재력을 갖췄다고 알고 있다”면서 “시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힘 좀 쓴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 의원이 부산 정가의 마당발로 자리 잡을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