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해체’ vs ‘당 사수’... 분당하기까지 양측 간 험로 예정

▲ 통합진보당 강기갑 대표가 지난 13일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이후 2주 만에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구당권파 측이 요구한 중앙위원회 소집을 연기해줄 것을 당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통합진보당이 결국 분당의 수순 밟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사태 이후 급속도로 와해된 통합진보당은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출범 8개월 만에 분당으로 가는 초입에 들어섰다.

당초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됐던 분당 가능성에 대해 신-당권파 모두 “분당만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李-金 부결사태 이후 상당수 당원이 탈당하는 등 국민적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이제는 이들 대부분이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 “분당하는 것이 맞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고 있다.

현재 구당권파 측은 분당 이후 군소정당으로 전략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신당권파를 향해 ‘나갈 테면 나가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신당권파는 비례의원 승계 등의 문제가 걸리면서 ‘당 해체’ 후 ‘새 진보정당 건설’을 주장하고 있어 분당까지의 과정에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8개월 만에 분당의 길로 접어든 통합진보당

“당을 해산하고 9월 중 새 진보정당을 건설할 계획이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대표의 말이다. 지난 6일 강 대표는 ‘새 진보정당 건설’을 천명한데 이어 7일에는 ‘당 해산’이라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유시민·심상성 전 공동대표와 노회찬 의원 등 혁신파 주요 인사들은 ‘혁신모임’을 발족하고 분당에 대한 입장과 향후 계획을 정리 중이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부결사태 이후 “이를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자”던 구당권파 측도 분당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인지하고 지도부(신당권파)의 ‘당 해체’에 맞서 당 사수작전에 돌입했다. 지난 8일 이들은 신당 창당 움직임을 ‘해당 행위’로 규정하고 ‘당 사수를 위한 당원비상회의(비상회의)’를 발족하는 등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강기갑 ‘새 진보정당 건설’ 천명

지난달 26일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이 김제남 의원의 사실상 반대표 행사(기권)로 결국 부결됐다. 이후 당은 급속도로 와해됐고 더 이상 대중적 진보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수천 명의 당원들은 탈당 및 당비 납부를 중단했고, 상당수 혁신파들도 분당을 선언했다.

구당권파와 결별의 뜻을 밝힌 강기갑 대표는 ‘새 진보정당 건설’을 천명했다. 강 대표는 지난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구당권파의 저항에 부딪혀 모두가 무산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판단해 신당 창당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앞서 7일에도 “9월 중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구체적 일정을 제시했다. 이어 “당원들이 떠나고 대중조직은 등을 돌리고 진보정당의 생명과 같은 농민들이 이미 이 당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며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혁신파 측 세 정파(국민참여당계, 진보신당 탈당파, 구민주노동당 인천연합)도 분당을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지난 7일 이들은 국회에서 ‘진보정치 혁신모임’(가칭) 첫 회의를 갖고 신당 창당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심상정·유시민 전 공동대표, 노회찬 강동원 박원석 서기호 정진후 의원, 이정미·천호선 최고위원,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 등은 이날 1차 모임에서 ‘현재의 통합진보당으로는 더 이상 대중적 진보정치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구당권파와 결별의 뜻을 거듭 확인했다.

여기에 권영길, 문성현, 천영세 등 민주노동당 전직 당대표 3인 역시 입장을 발표하고 “진보정치 재건의 길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당권파 모임인 ‘진보정치 혁신모임’은 국민참여계-진보신당 탈당파-민노당 전직 당대표(혁신세력) 등을 중심으로 이후 노동계와 농민 등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과 함께 세 규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구당권파 ‘당 수사 작전’ 돌입


혁신파가 이달 중 신당 창당을 위한 로드맵을 확정하고 9월까지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분당을 염두에 둔 구당권파도 전열을 정비, 당 사수 작전에 돌입했다.

당초 구당권파는 李-金 제명 부결사태 이후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고 화합하자”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왔지만 신당권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면서 입장을 선회, 자체 행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유선희·이혜선 최고위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이상규 의원을 대변인으로 하는 ‘당 사수를 위한 당원비상회의’를 발족했다. 이들은 9일 첫 회의를 갖고 강기갑 대표에게 10일 중앙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시 당규에 따라 15일 안에 단독으로 중앙위를 소집하기로 하는 등 당 사수를 위한 투쟁 방안 등을 논의했다.

특히 이날 오전 고(故) 박영재 씨의 49재에 구당권파 측 핵심인사들과 함께 이정희 전 대표가 참석하면서 지난 4.11총선 당시 부정경선 사태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전 대표가 구당권파의 당 사수 작전과 함께 정치적 복귀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간 구당권파 측은 이 전 대표를 대선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한때 진보정당의 차세대 유망주로 불렸던 여성 지도자였지만 부정경선 파문과 구당권파의 대표적 인물로 부각되면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분당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에서 향후 구당권파를 일으키고 세를 규합하기 위해 이 전 대표만한 대중적 인물도 없다는 것이 구당권파 공통된 인식이다. 또한 정치적 재기를 위해 스스로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신당권파 강동원 의원은 구당권파의 이 전 대표 추대 움직임에 대해 “이정희 전 대표는 자중하고 조용히 근신하라. 그의 대선출마는 야권연대에 장애만 될 뿐”이라고 힐난했다. 또한 “야권연대 자체를 망가뜨린 구당권파에서 대통령후보를 내세운다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이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구당권파와 별개로 신당권파 측에서도 대선후보로 몇몇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현재까지 당 수습이 먼저라는 점에서 아직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강기갑 대표는 9월 안에 창당이 이뤄지면 이후 본격적으로 신당의 대선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구당권파에서 이 전 대표를 추대할 경우 진보정당에 두 명의 대선후보가 출마하면서 진보진영을 아우르기 위한 양측의 기 싸움도 팽팽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례의원 3인방의 행보는?


신당권파 측에서는 현재 당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 내면에는 혁신파 비례의원인 박원석 정진후 서기호 의원의 의원직 승계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당 해산은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탈당할 수도 없다. 의원직 상실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당내 ‘분당’에 대한 요구가 높았음에도 신당권파 측에서 이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당권파 의원은 모두 6명. 이 가운데 비례의원 3명이 날아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파의 고심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혁신파의 심상정 의원은 지난 8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신당권파 비례대표 의원들의 거취와 관련해 “현재로선 당적은 그대로 두고 활동은 새 정당에서 해야 할 것 같다”고 묘안을 제시했다. 통합진보당에 잔류함으로써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되 신당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당권파 역시 구당권파와 다를 바 없이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에 구당권파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혁신파 비례의원인 서기호 의원은 지난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산이나 제명될 때만 신당에 참여할 수 있다”며 “여의치 않을 시 통합진보당에 잔류해서 신당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석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사퇴해야할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사퇴하지 않고, 비례의원이 사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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