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은 항시 내부에서 자라기 마련이다. 이번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돈 공천 의혹의 첫 제보자는 다름 아닌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의 운전기사였다. 최근 대형 비리사건 때마다 운전기사들의 한마디가 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고위 공직자들 뿐 아니라 기업 오너들 사이에서까지 운전기사를 조심하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바쁜 스케줄로 움직이는 이런 사람들에겐 운전기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하는 일도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 현영희 의원이 자신과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운전기사이자 수행비서였던 정 모 씨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데나 그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을뿐더러 다른 누구를 믿을 방도가 없게 된다.

현 의원은 정씨가 4급보좌관 자리를 주지 않자 자신을 음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실 여부는 조만간 검찰이 밝혀낼 몫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건 역시 발등을 찍힐 때는 집에서 늘 쓰던 ‘믿는 도끼’에 의해서 라는 사실이다. 제보자 정씨가 3억 원 돈 보따리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은 것은 파이시티 사건 때 브로커 이동율 씨의 운전기사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돈을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한 학습효과인 것도 같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중국 밀항시도가 깨진 것도 운전기사의 사전 제보 때문이었다. 검찰이 운전기사 말에 크게 무게를 싣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모든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신빙성 있게 터진 이 돈 공천 의혹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 의원 음해에 혈안이 돼있던 네거티브 세력들에게 특급 호재를 안겼다.

(반박), (비박) 세력들이 총 출동해서 박근혜 공격에 앞장서고 야권 성향의 각종 매체·포털들이 벌집 쑤신듯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후보들 3인방까지 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을 보이콧 하겠다”며 예정된 방송토론회를 무산시키는 3일 반란을 일으켰다. 다행히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이 의혹사태가 쉽게 가라앉을 공산은 약하다.

당의 혁신과 개혁공천을 믿고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그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친박 핵심들이 국회의원직을 매매한 것으로 밝혀지면 분노가 하늘을 찌를 터다. 또한 제보자 정 모 씨가 이미 두달 훨씬 전에 선관위에 사건 내용을 제보해서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하기까지 이 사실을 당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실망스런 대목일 것이다.

공천헌금과 관련해 어느 옛 야권 지도자의 측근 부인이 한 말 중에“000 전 대통령의 공천헌금 사과상자를 베란다에 많이 보관해 돈은 냄새가 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중요한 과제는 지금 부터다. 새누리당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문제가 된 현영희 의원 공천헌금 의혹뿐 아니라 제2, 제3의 공천비리가 또 있지 않았는지 면밀히 따져 봐야한다.

또 어떤 내부 불만이 운전기사나 측근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형상이 될지 모를 일이다. 어떤 초선의원은 “보좌진의 불만이 없는지 최근 소원 수리를 받았다”고 하는 지경이다. 정치권에 초비상 ‘믿는 도끼’ 주의경보가 발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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