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으로 여권 내부가 벌집 쑤신 듯하다. 재계와 언론계는 물론 정치권을 강타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X파일’ 파문의 여진까지 겹친 형국이라 대연정 진의에 대한 정파간 해석도 다양하다. 노 대통령의 ‘물타기’라는 설에서부터 ‘레임덕 조기진압’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억측에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훈수를 두는 막후 실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선 전 정계개편 암시?

“당과 상의를 했어야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할 말이 있는 게 아닌가?”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직후 열린우리당 한 초선의원의 말이다. 뜬금없는 ‘서신 정치’에 대한 당황과 ‘당정분리’를 고수해온 노 대통령의 독자노선에 대한 우회적인 반응이다. 덧붙여 애써 수용하려는 당 지도부의 노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읽혀진다. 일부 초선 의원들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인 불만도 이어진다. 안기부 X파일 파문에 이어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의 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다. 1차적으로 ‘당정분리의 붕괴’이며 더 나아가 열린우리당을 향한 ‘경고 메시지’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당 한 중진의원은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향후 권력 역학구도 및 차기 대권주자 경쟁과 맞물려 있다”면서 “지금의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과 재집권을 위한 또 한 번의 정계개편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의 우리당의 상황이란 4·30 재보선 참패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에서도 참패의 수모를 당한다면 2007 대선으로 가는 길목인 내년 지방선거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계개편과 맞물린 분당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10월 재보선을 전후로 해 입각한 차기 주자들이 당에 복귀할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게 대세다. 원내 몇몇 인사들을 중심으로 ‘라인’이 형성되고 있으나 차기 주자들의 당적 복귀와 맞물려 여권 인사들의 ‘줄타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막후 실세의 총 동원령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 대연정 프로젝트를 주문한 막후 인사들 역시 당내 역학구도와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해석은 참여정부 설계의 진원지가 어디인가에서 시작, 참여정부 후반기 그 종착지 역시 그곳이어야 한다는 재집권 시나리오로 연결된다. 참여정부의 시작은 부산·경남(PK) 사단이다. 국민의 정부와의 차별화 및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PK 사단이 청와대 인사 진용에서부터 주요 기관 인사에까지 관여해 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인사와 관련 “호남 출신이냐, 영남 출신이냐”에 대한 해석이 이어지는 이유다. 국가 주요 기관의 인사가 진행될 때마나 영·호남의 전략적 인사 등용은 국면 전환의 카드로 던져지기도 했으며, 국정 난맥이 지속될 경우 이들 PK 사단을 중심으로 한 막후 실세들의 전략은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상당 부분을 차지해 왔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참여정부 전반기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재신임-탄핵-총선 승리’로 이어지는 절묘한 과정은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다.

호남에 뿌리를 둔 국민의 정부에 이어 2002년 대선을 전후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 지역 인사들이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참여정부는 ‘호남-영남’에 기반을 두게 됐다. 이는 태생적 한계인 동시에 지역주의 정치 및 지역 정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권의 강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 PK 사단이 청와대와 행정부에서만 권력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으며, 신당 창당 이후 지금까지 당내에선 권력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는 데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문희상 당의장을 정점으로 한 실용파와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을 중심으로 한 재야파,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 등의 3각 체제다. 차기 대권 주자군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실용파, 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재야파와 가깝다. 청와대가 폐지했던 정무수석직을 부활시키고자 한 것 역시 PK 사단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정설이다. 결국 당내 견제에 밀려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대통령 정무특보라는 옷을 입게 됐다.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정치 일선에 복귀한 그는 일찌감치 17대 총선을 방불케 하듯 청와대 비서관들을 향해 2006 지방선거 총동원령을 내린 바 있다.

명분 따로, 목적 따로

PK 사단의 당권 접수와 함께 차기 대선 주자들과 부딪치는 접전에서의 ‘대연정 노림수’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당권 복귀가 빠르면 오는 10월 재보선을 전후로 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PK 사단에는 대권 주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을 아우르고 여타의 제세력을 견제할 인물이 없다. PK 세력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논의되고 있는 잠룡 ‘김두관 카드’도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지역주의’ 한계에 있어 여권의 한계는 단연 대구·경북(TK)과 PK 지역이다. ‘가능성 제로’라는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전면에 내건 노 대통령의 발언도 한나라당의 텃밭, TK와 PK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청와대와 행정부를 장악한 이들의 후속 단계는 당에 복귀할 차기 주자들을 견제하는 동시에 2006 지방선거 이후 PK를 대표할 대권 주자를 내세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친노직계를 앞세워 레임덕 조기 가시화를 막는다는 명분도 주어질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정부 후반기를 이끌 PK 인사 진용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문재인 비서실장-김혁규 국무총리’설이 그 것. 2007 대선과 맞물려 정계개편이 가시화될 경우 그 핵심부에는 PK 사단이 자리하게 될 것이란 정치권의 전망은 이러한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대연정 주문 이후 친노직계 인사들이 작성했다는 문건이 공개돼 PK 사단을 정점으로 한 정치권의 해석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이 문건의 핵심은 ‘대통령 정치’의 강화다.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 제하의 문건은 ▲여소야대의 재등장 ▲지지기반의 위기 ▲정치의 실종과 개혁 헤게모니의 약화 ▲권력부재로 인한 정치위기 등을 지적하고 있다. ‘당정분리’ 원칙을 고수, ‘평당원’이라고 자처하는 노 대통령이 편지 등을 통해 대연정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 역시 이 문건의 주문과 무관치 않다는 정치권의 해석이다.

# 여당에선 권력 주변부만 맴돌아 - 청와대·행정부 장악한 PK 사단

참여정부 중반을 넘어선 현재, 청와대와 행정부의 핵심 포스트는 부산·경남(PK) 사단이 장악하고 있다. 문재인 민정수석(부산)을 정점으로 386세대 맏형격인 이호철 제도개선비서관(부산), 정상문 총무비서관(경남 김해), 권찬호 의전비서관(경남 산청), 차의환 혁신관리비서관(부산), 노혜경 국정홍보비서관(부산), 정영애 균형인사비서관(경남 양산) 등이 대표적인 PK 출신이다. 행정부에도 윤광웅 국방부 장관(부산), 진대제 정통부 장관(경남 의령),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부산), 박홍수 농림부장관(경남 남해),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경남 통영) 등이 포진해 있다.하지만 당내에서는 PK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PK 세력을 이끌고 있는 김혁규 상임중앙위원만이 지도부에 포진해 있다. 행자부 장관 낙마 후 총선 출마 등 당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성과를 올리지 못한 김두관 정무특보만이 ‘배려’ 차원에서 대통령 특보직을 얻어냈을 뿐이다. 여기에는 지난 17대 총선때 PK 지역 출신들이 총동원령에 의해 출신지역을 찾아 출마를 선언했음에도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권은 청와대 및 행정부 고위급 인사들외 각 당 지자체장들을 영입, PK를 공략했으나 부산 한 곳과 노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두 곳에서만 승리했다, 그나마 지난 4월 재보선에서 김해갑을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총선에 동원된 인사들에 대한 청와대 복귀 및 ‘낙선 배려’에도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와 이들의 중앙 진출이 늦춰졌다. PK 사단에 대한 여권 내부의 견제가 심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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