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뉴설악호텔(현 켄싱턴호텔)은 한때 대우그룹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계열사들의 ‘화력 지원’에도 불구하고 경영은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우리 신체로 치면 일종의 곪은 손가락인 셈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손가락이 아무리 곪았다고 해서 그냥 잘라버리는 법이 없다. 해볼 때까지는 노력을 한 후에 조치를 취해도 취한다는 것이다. 지난 92년 뉴설악호텔을 논노그룹에 매각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같은 김 회장의 ‘뚝심’을 잘 알 수 있다. 사실 뉴설악호텔은 김 회장의 자의에 의해 만든 것이 아니다. 지난 77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당시 국제관광공사 사장이 설악산을 등반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아이디어다. 당시만 해도 설악산에는 입구에 위치한 호텔은 설악파크가 전부였다.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설악산 중턱에 위치한 공터에 호텔 공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국제관광공사 혼자 사업을 벌이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이 내용은 즉시 대통령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김우중이가 있잖아. 잘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 대우그룹의 ‘골칫거리’였던 뉴설악호텔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호텔 건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시 대우그룹과 국제관광공사가 출자한 자본금은 30억원. 두 회사가 50%씩 돈을 댔다. 외부에서 40억원의 차입금도 끌어다 썼다. 그러나 설계가 잘못되는 바람에 추가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갔다. 호텔 사장 내정자도 강릉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역곡절 끝에 8층짜리 호텔이 완공됐다. 호텔의 7층과 8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위트룸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79년 발생한 사고로 인해 한번도 이 방을 사용해보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79년 사고를 당했지만, 7층과 8층은 한번도 외부에 대여된 적이 없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약속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때문에 92년 논노그룹에 호텔이 매각될 때까지 7층과 8층은 항상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습니다.”더욱 어려웠던 것은 호텔 경영이었다. 호텔이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그다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고심 끝에 대우그룹 전 임직원의 결혼기념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도록 했다. 물론 비용은 해당 직원의 계열회사가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자본 잠식이 이어졌고, 불과 몇 년 사이에 25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김 회장은 어쩔 수 없이 자본금 감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김 회장은 우선 5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국제관광공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감자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감사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관광공사는 얼굴을 바꿔 감자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일진일퇴의 법정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나중에 뉴설악호텔이 정상화되면 감자된 부분만큼 돌려주기로 약속하고 타결을 보았다.김 회장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텔의 경영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 회장이 호텔 감사를 지시했고, 김 전 본부장이 호텔로 파견됐다. 현장을 방문한 김 전 본부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무제표는 엉망이었고, 공금유용과 같은 부조리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 “식당 원재료를 구입할 때 기준이 되는 양목표와 실제 주문한 음식을 비교해 보니 3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구매부서가 3배로 튀겨서 물품을 구입한 뒤, 뒤로 빼돌린 것이었습니다.”이 정도면 그나마 봐줄만 했다. 호텔 자체가 산골짜기에 있다보니 직원들의 근태도 엉망이었다.

다음은 김 전 본부장이 털어놓는 일화 한 토막. “한번은 신혼부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첫날밤을 치르던 신부의 눈에 깜빡이는 눈이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텔 천장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이 신부는 돌아가자마자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알고보니 신부의 아버지가 유력 일간지의 편집국장이었습니다. 나중에 회장에게로 항의가 들어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결국 김 회장은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뉴설악호텔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팔려고 하니 인수자가 나오지 않았다. 김 회장의 번뜩이는 기지는 여기서 빛을 발했다. 대우조선 합리화 조치에 대한 자구노력 목록에 호텔을 끼워넣는데 성공했다. 결국 김 회장은 부실 투성이인 뉴설악호텔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논노그룹에 고가에 팔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논노그룹은 잘나가는 회사였습니다. 때문에 자본금보다 많은 37억원을 받고 매각했습니다. 뉴설악호텔을 인수한 논노그룹은 리모델링 비용으로만 2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룹 전체가 부실에 빠지는 계기가 된 셈이죠.”물론 반대도 없지 않았다.

당시 유승렬 회장으로부터 호텔 인수를 지시받은 A기획실장은 다각도의 검토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유 회장은 “평생 꿈이 호텔 경영”이라면서 이같은 반발을 불식시켰다. 이에 반해 김 회장은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 그룹의 골칫덩이를 비싸게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뉴설악호텔의 경우 대우조선 합리화 조치의 일환으로 매각됐기 때문에 양도세 등 세금도 전혀 물지 않았다.이렇듯 김 회장은 하찮은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자르는 법이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같은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부실을 키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정부와 타협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아닌 김 회장이었기 때문에 이같은 위기관리가 가능했다는 게 김 전 본부장의 시각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