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여권의 정계개편 플랜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들 차기주자들도 연대론 등 차기 대권구상에 몰입하고 있다. 바야흐로 차기 대선정국을 겨냥한 잠룡들의 ‘짝짓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 정치권 주변에선 ‘박근혜=손학규’ ‘이명박=김중권’ ‘정동영=천정배’ ‘고건=심대평’ 등 잠룡들간의 연대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권력 속성상 차기 대권과 관련한 잠룡들의 행보는 여권에 비해 야권이 보다 자유롭다.

여권은 차기 주자들이 조기에 부상할 경우 ‘레임덕(집권말기 권력누수 현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청와대와 잠룡 진영은 상호 견제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시점에서 한나라당 등 야권 후보들은 활발한 대권행보를 펼치고 있는 반면 여권내 잠룡들은 대권과 관련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권력 속성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여권내 잠룡들도 야권 주자 못지 않게 차기구도와 관련한 발빠른 물밑 행보를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야권, 잠룡간 연대론 가시화

잠룡간 연대론에 불씨를 지핀 장본인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손학규 경기지사.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내 유력한 차기주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연대론이 현실화될 경우 당내 차기 구도는 물론 향후 대권정국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총선때 거센 탄핵풍에도 텃밭인 영남지역을 완벽히 사수했고, 지난 4·30 재보선도 완승으로 이끌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뿐 아니라 지도력과 정치적 리더십도 검증받은 셈이다. 당권을 바탕으로 전국적 조직망도 구축하고 있고, 여성지도자라는 프리미엄도 등에 업고 있다.손 지사는 당내 대권경쟁에서 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에 다소 밀리고 있는게 현실이지만 여전히 무시못할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손 지사는 원외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를 중심으로 수도권에 열성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이처럼 당내 ‘대권 빅3’로 분류되면서 각자 대권행보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이 두 차례의 회동을 통해 친밀함을 과시하고 있어 그 배경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의 회동에 이 시장이 제외됐다는 점에서 정치권 관계자들은 ‘박-손 연대론’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정·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론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대권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또 ‘박-손 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여성과 남성, 수도권과 영남, 진보와 보수연합 등 그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명박 시장은 연대 카드 등 향후 대권구도와 관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이 시장측은 우선 당내 경선에 주력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민주당과 중부신당 등 군소정당과의 합종연횡도 불사한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이 시장은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또 얼마전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통합론에 적극 개입하려 한다는 소리가 나돌았던 것도 이 시장의 대권 플랜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경북 출신인 이 시장과 김 전대표가 지역구도 타파 및 동서화합이라는 명분에 의기투합, 차기 대선에서 서로 협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전대표는 ‘한-민통합 역할론’과 이 시장과의 연대론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두 사람의 연대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다. 고건 전총리와 심대평 충남지사의 연대론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대권인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고 전총리와 충청권 맹주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심 지사가 국민대표론을 명분으로 연대해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는 게 ‘고-심 연대론’의 골자다. 당사자인 두 사람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지만 측근들을 통해 향후 정치행보 및 대권연대 문제를 물밑 타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개헌 전제한 여권 잠룡 물밑 연대

여권 잠룡들의 연대 움직임은 아직 수면 아래서 진행되고 있다. 야권처럼 드러내 놓고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여권내에서는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천정배 법무장관의 연대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부터 이른바 ‘천(정배)·신(기남)·정(동영)그룹’을 이끌며 상호 협조·협력체제를 구축해 왔다. 천 장관이 법무장관 입각이후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경쟁관계로 변화할 것이란 일부 시각도 있지만 호남(정동영-전북, 천정배-전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연대는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중론이다.실제로 양측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된 호남민심을 결집시키는데 주력한 뒤 호남과 개혁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제 세력들을 규합한다는데 교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헌이 현실화될 경우 두 사람의 대권 연대는 호남이란 지역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따라서 정·천 두 잠룡은 당분간 호남세력 결집이라는 교감아래 협력체제를 구축한 후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강금실 전장관이나 추미애 전의원 등 인지도가 높은 여성 후보군과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재야파 출신인 이해찬 총리와 김근태 복지부 장관의 대권 연대론도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의 연대는 재야세력 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양한 정치세력의 참여를 차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여야 잠룡 노 대통령 ‘대연정’ 제안 분주한 셈법

노무현 대통령의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제안과 관련한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은 정치지형 및 현 권력구조를 바꾸자는 것으로 차기 대선정국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여야 차기 주자들이 노 대통령의 제안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 주자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채 일단 노 대통령의 결단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 등 야권 주자들은 ‘국정책임 전가’ 등 숨은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정동영(통일부)·김근태(복지부) 장관과 이해찬 총리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자제한 채 정치권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동영계로 분류되고 있는 전병헌 대변인은 29일 “대통령의 고뇌 어린 제안에 동감한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기득권을 흔쾌히 포기할 것”이라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재야파’인 김근태측도 일단 겉으로는 ‘대연정 제안’을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야파 리더격인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한나라당을 상대로 투쟁해온 만큼 그쪽에 권력을 넘기는 데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긴 어렵겠지만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대통령의 고민은 이해한다”면서 ‘비판적 수용’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초재선 등 소장파 의원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대연정론을 둘러싼 대권주자 진영 및 계파별 논쟁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대연정 대상으로 지목된 한나라당내 차기주자들은 한 목소리로 정략적 발언이라며 대응 자체를 삼가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측근인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면전환용’이라고 비꼬았고, 이명박계인 홍준표 의원은 ‘생뚱맞은 발상’으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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