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구상’이 나온 직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비공식적으로 내뱉은 발언이다.문 의장의 이 발언은 무슨 뜻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정국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연정-개헌’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이 카드는 한나라당 등 야권의 비협조로 사실상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져가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와중에 문 의장이 “17대 대선은 없다”고 한 대목은 지금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집권층 핵심세력들이 정국타개를 위한 ‘새로운 승부수’를 구상하고 있다는 의미다.정국대반전 카드로 내민 ‘연정’카드가 무력화해질 것에 대비한 뉴플랜의 구상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해석은 한달반 앞으로 다가온 9월 정기국회에 앞서 정국돌파 비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과 깊이 맞물려 있다. 정기국회가 시작될 경우 올 상반기 내내 청와대를 괴롭혀온 유전개발의혹, 행담도 개발의혹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정권 자체가 다시한번 벼랑에 설 수 있는 것이다.최근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노 대통령의 연정 구상 발언과 관련해 “지난 2002년 후보단일화 카드나 총선을 앞둔 지난 2003년 10월 내놓은 재신임 카드와 같은 초특급 승부수를 띄운 것 아니겠느냐”며 “연정을 공론화시켜 분권형 대통령제 내지는 내각제 개헌을 위한 정치적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이 중진은 또 “노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식으로 정치권을 움직일지 대충 예상이 된다”며 “집권이후 위기상황에 처할 때마다 승부수를 던졌던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연정 구상도 치밀한 정치적 계산하에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치권은 노 대통령 연정 발언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하한정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연정정국’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를 망라하고 연정카드 이면에 숨겨진 ‘제3의 노림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숨겨진 카드의 목적은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 군소정당을 끌어들이는 ‘소연정’ 플랜, 혹은 한나라당을 직접 겨냥한 ‘대연정’ 카드로 정국대반전을 도모하고 동시에 차기 대선구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복심이 숨어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소연정 플랜은 민주당과 민노당 등 군소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여대야소를 구축한 후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포석이다. 여권 주변에선 민주당에 부총리 등 내각 지분을 내주고, 민노당에도 노동부 장관 등 그에 버금가는 지분을 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등돌린 호남민심을 껴안고 우군인 개혁세력을 결집시킨다는 게 소연정의 골자다.하지만 소연정 대상인 군소정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소연정 플랜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한나라당을 겨냥한 대연정 카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무대응이 상책’이라며 아예 연정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2003년 재신임 카드를 덮석 물었다가 탄핵과 탄핵풍이라는 거대한 역풍에 휘말렸던 악몽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특히 한나라당은 여권의 연정론 이면에는 한나라당을 무력화시키는 ‘한나라당 포위론’이 자리잡고 있다.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내건 선거구제 개편론도 궁극적으로 한나라당을 흔들기 위한 전술의 하나. 이를 눈치 챈 한나라당은 여권의 중장기적인 전략 전술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민생챙기기와 경제회복으로 정국방향을 돌렸다.이처럼 한나라당과 군소정당이 연정론에 무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노 대통령과 여권은 한 번 꺼내든 승부수인 만큼 끝장을 보겠다는 분위기다.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비춰볼 때 야권의 무관심과 반발은 어느정도 예상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연정론은 신호탄에 불과할 뿐 제2, 제3의 카드가 준비돼 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여권의 주도권이 극도로 약화되고 민심이반현상 또한 심각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결국 큰 틀의 정계개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연정카드 폭발력이 과거 탄핵사태로 비화된 재신임 발언 때처럼 간단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이러한 가능성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와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내각제를 통해 지역구도를 허물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구상은 이미 당선 직후부터 치밀하게 진행돼 온 것으로 이제 그 실행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구상한 ‘집권 5년 로드맵’의 한 단계라는 얘기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연정사례 등에 대한 연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수위가 높아도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노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비춰볼 때 이러한 구상은 조만간 구체화되고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카드는 무엇일까. 정치분석가들은 올 하반기에 여야 정당에 각료추천권을 부여해 여론몰이를 한 후 거국 내각을 통한 연정을 한 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2006년 개헌 논의를 해 2007년 전에 끝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서서히 개헌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운 다음 2006년 본격적인 논의를 거쳐 임기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노 대통령과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내각제 개헌론은 차기 대권구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권 주변에서 “이대로 가다간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대선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고도의 전략이 내포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개헌 정족수를 확보한 후 각 계파별 지분 분배를 통한 내각제 개헌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내각제 개헌은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구도 타파 및 국민대화합이라는 명분이 있고, 권력분점을 통해 현행 대통령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담보돼 있다. 명분정치에 강하고 특유의 승부사 성향을 갖추고 있는 노 대통령의 연정카드는 궁극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통한 차기 대선 무력화라는 비수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내뱉은 “17대 대선은 치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2007년 대선 전에 내각제 개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현실적으로 한나라당 등 야권의 협조가 없다면 국민투표 외에 내각제개헌이 성사될 확률은 적다. 따라서 노 대통령과 문 의장의 발언 이면에 숨겨진 뜻은 앞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칠 뉴플랜이 제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국돌파 카드가 언제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또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린 정계개편 소용돌이 속에 여야 정치권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하한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위기의 노무현 우리가 보호한다”
- 노무현 사단 정치재개 내막


‘광복60주년 특별대사면’을 둘러싼 집권 여당의 엇박자가 정리됐다. 특별사면에 불법 대선자금 연루 정치인도 대상이라는 것. 오는 8월15일 정대철 이상수 이재정 최돈웅 서청원 전 의원을 비롯해 안희정 여택수 최도술씨 등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도 대장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주목되는 대상은 정대철 이상수 전 의원과 안희정씨다. 이들 대부분이 집행유예나 형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난 상태지만 사면·복권이 이뤄질 경우 본격적인 정치 재개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일 게이트와 행담도 개발 의혹 등으로 ‘레임덕’ 위기를 맞고 있는 주군을 위해 이들이 노무현 사단 재건에 전격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대철 전 의원은 차기 ‘국회의장’설이 무성하다. 물론 원내에 진입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난 16대 국회까지 5선 의원으로서 그가 당선된다면 선수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특히 국회의장을 지낸 부친(고 정일형 의원)의 대를 이어 ‘부자 국회의장’으로서 한국 정치사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측에선 사면 이후의 행보에 조심스런 눈치다. 한 측근은 “사면 이후 특별한 계획은 없다”면서 ‘출마설’을 부인했다. 그는 정 전 의원이 몇 개월째 준비 중인 사도바울 신학서적 번역에 매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상수 전 의원은 현재 10월 재·보궐 선거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의원의 한 측근은 “출마를 준비 중인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 정서를 이유로 열린우리당에서 엇박자가 빚어졌듯이 앞으로 이어질 여론의 뭇매 때문이다. 안희정 전 특보는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원장 임채정 의원) 부원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의원이 오일 게이트에 연루돼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때문에 안 전 특보의 조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게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안씨의 측근들은 안씨의 당 복귀설에 ‘사실 무근’이라는 반응이다. 안씨는 현재 고려대 아시아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