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정수장학회 퇴로 없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장물 정수장학회 불법매각음모 공직선거법 위반행위로 최필립·김재철·이진숙 고소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캠프가 위기에 빠졌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간의 비밀회동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인 박 캠프는 비상이 걸렸다. “좀 더 빨리 정리했어야 하는데…”라는 한숨소리만 들린다.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혼선만 빚고 있다. ‘정수장학회 덫’에 제대로 걸렸다. “퇴로가 없다”는 얘기다. 박 캠프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하루 빨리 털어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책과 묘안을 짜느라 분주하다. 비장의 카드가 있을까.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커졌다.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간의 비밀회동 내용의 후폭풍 파문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밀회동 내용이 한 언론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박근혜 캠프는 ‘쑥대밭’이 됐다.

최필립-이진숙 비밀회동 ‘후폭풍’

한 언론이 보도한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의 대화록을 보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다. 최 이사장이 “요란하게 할 필요 없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고, 이 본부장은 “이게 굉장히 정치적 임팩트(영향)가 크기 때문에, 그림은 좀 괜찮아 보일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또 최 이사장은 “이걸(기자회견) 하게 되면 비꼬는 말이 상당히 나올 거라고…”라고 하자 이 본부장은 “네, 맞습니다.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이라고 답했다. 최 이사장은 “대선 앞두고 잔꾀 부리는 거라고 이야기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은 겉으론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박 후보는 ‘최-이 비밀회동’이 언론에 알려진 후 “이런저런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입장을 다 말씀드렸다”고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도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부산일보 지분 매각은 노무현 정권이 잡아놓은 방향”이라며 “정수장학회를 장물이다, 강탈이다 얘기하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후보 측은 속으론 울상이다. ‘털고 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대권을 거머쥘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박 후보 측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일관되게 대응했다. 그런데 갑자기 터진 ‘최필립-이진숙 비밀회동’ 후폭풍이 심상치 않자 이를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박 후보가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박 후보의 ‘원칙’이 무너진 순간이다. 입장 번복 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정수장학회에 대한 여론몰이를 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

朴 캠프 “정수장학회 방치는 실책”

여론몰이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 선봉에는 새누리당 ‘쇄신파’가 섰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 조금이라도 부정적 측면이 있다면 여지없이 과감하게 끌어내야 한다”며 “최필립 이사장도 기존 정수장학회 운영 방식을 공적 시각에서 새로운 분에게 길을 터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수장학회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결론적으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다음 ‘수위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밝히거나 한 발 물러난 듯한 뉘앙스를 내비치는 것. 그러나 박 캠프 인사들은 어느 길을 선택하든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퇴로가 없다’는 뜻이다.

박 캠프 한 관계자는 지난 17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고 해도 여진은 계속될 것이다. 최필립-이진숙 비밀회동 내용을 봤을 때 박 후보가 개입됐다는 인식이 짙어졌다. 최 이사장 사퇴를 종용해도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야당에서는 집중추궁 할 수 있다. 때문에 박 후보가 어떠한 입장을 내놔도 장수장학회 문제는 대선 막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새누리당 당직자도 “박 후보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너무 방치해 둔 측면이 있다.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 캠프 내에선 ‘정수장학회 역풍은 피할 수 없다’는 우려와 맞물려 ‘NLL 문제’, ‘문재인·안철수 의혹’ 등을 폭로, 위기를 모면해야 된다는 얘기도 고개를 들고 있다. 네거티브 전략을 내세워 분위기 반전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문재인 후보의 경남 자택과 문 후보의 아들 문모씨의 부정취업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 19일에는 안 후보의 부동산 위장전입 의혹, 황제 군생활 의혹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네거티브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게 정치권의 속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네거티브가 아닌 다른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개헌론 군불떼기’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개헌 카드’를 만지막 거리고 있다는 게 박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수장학회 출구전략 개헌 카드 꺼내나?

이 관계자는 지난 16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NLL 포기 발언 의혹 등 네거티브 전략을 내세워 정수장학회 문제를 덮으려 하지만 현실적으론 힘들다. NLL 포기 발언 의혹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덮기엔 너무 작은 이슈다. 또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여부에 대한 존재도 이미 아리송할 뿐 아니라 이 문제를 더 끌고 갈 경우 민주통합당의 ‘꽃놀이패’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이슈는 이슈로 덮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수장학회 문제가 터진 이후 박 캠프 핵심인 A에게 개헌과 관련한 보고서가 올라갔고, 개헌 카드를 꺼내야 될 지 말 지에 대한 고민만 남은 상황”이라며 “개헌 카드를 꺼낸다면 이재오 의원의 영입이 쉬워질 뿐 아니라 모든 대형이슈를 한 번에 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여권에서는 마땅한 이벤트 없이 12월 대선을 치러야 되지만 야권에서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라는 대형 이벤트가 여전히 살아있다”며 “야권 단일화 이벤트 효과도 최소화 할 수 있고, 경제민주화 등도 개헌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개헌 카드’만큼 정수장학회 후폭풍을 막을 만한 것이 없다”고 귀띔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도 지난 17일 <일요서울>과의 만난 자리에서 “NLL 문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민주통합당에 유리하게 작용될 뿐 박 후보에게는 악재”라고 말할 정도다.

일단 박 캠프 ‘정수장학회 처방전’으로 개헌 카드를 꺼낼 지 여부는 미지수다. 개헌 카드를 통해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까지 영입, 통합행보를 취할 수 있다. 벌써부터 박 캠프 일각에서는 개헌만이 이 의원을 영입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97년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이인제 후보를 잡지 못해서 졌고, 2002년에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잡지 못해서 졌다. 박 후보로서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의원을 영입해야 된다”며 “개헌론을 통해 ‘통합’은 물론 경제민주화 등 대선의 대형 이슈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박 캠프 측은 정수장학회에 대한 출구 전략으로 개헌론을 부각시켜, 이 의원을 끌어안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야만 통합은 물론 경제민주화 등 대선 이슈를 선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후보도 개헌 필요성에는 이미 동의했다. 다만 전제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박 후보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후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 없이, 또 민생 현안이 실종될 정도로 정치쟁점화해서 추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국가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정치 구현, 부패 방지 등을 위해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고 개헌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또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당 대표 등을 역임한 여야의 원로 정치지도자 17명은 지난 17일 대선 후보들에게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1년가량 단축하면서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을 촉구했다. 이미 개헌론을 꺼낼 수 있는 밑그림은 그려졌다는 얘기다.

주판알 튕기는 朴 마땅한 해법 없다?

이와는 달리 박 캠프 내에서 개헌 카드는 섣부르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개헌 카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문 후보는 지방 분권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박 후보는 권력구조 분산을 얘기하고 있지만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계산이 깔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개헌론에 대한 무게중심축이 어느 쪽으로 갈 지 몰라 자칫 박 후보에게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게 주된 골자다.

특히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변수가 남아있어, 섣부르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단일화 성사 여부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단일화 성사가 된다면 개헌론으로 맞불을 놔 이벤트 효과를 줄일 수 있지만 ‘박근혜-안철수-문재인’ 3자구도로 대선이 치러진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헌 카드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박 후보가 ‘최필립-이진숙 비밀회동’으로 인해 대선 행보에 빨간불이 켜지자 출구전략을 찾기 위해 무척 예민해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정치권에선 원칙을 중시하는 박 후보가 그답지 않게 ‘입장 번복’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반응이다. 현 상황도 비슷하다. 박근혜 대세론은 쏙 들어갔다. 위기론만 있을 뿐이다. 갑자기 몰아닥친 ‘최필립-이진숙 비밀회동’, 이른바 정수장학회 문제가 터지면서 ‘위기론’은 더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입장발표를 해도 야당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박 후보. 그가 ‘정수장학회’로 인한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박 캠프가 은밀히 논의되고 있는 개헌론에 불을 지필 지, 아니면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박 후보의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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