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의 굳히기냐”, “정동영 장관의 뒤집기냐” 고영구 원장의 사퇴이후 후임 국정원장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지난 2일 권진호 카드를 확정하려 했지만 여권의 반발이 거세자 일단 후보자 확정을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인 만큼 정밀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속사정은 따로 있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분위기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보 장악을 위한 차기 대권주자간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청와대는 당초 후임 국정원장 1순위에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카드를 올렸다. 권 보좌관은 육사(19기)를 나온 육군 중장 출신으로 국군 정보사령관,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안보·정보통으로 불린다.

권진호 카드는 약하다?

청와대가 권 보좌관을 내정한 것은 임기 중반 이후 국정원의 안정적 운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전임 고영구 원장이 정치 개입 차단, 탈권위, 과거사 진상규명 등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위해 개혁성향을 띠었다면 보수성향을 가진 ‘관리형’ 인물을 통해 정보수집 능력을 높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 여기에 이해찬 총리도 그동안 동향이자 동문인 권 보좌관을 물밑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권 보좌관 내정설을 접한 열린우리당이 권진호 카드에 급제동을 걸고 나온 배경에는 이 총리와 권 보좌관의 각별한 인연과 무관치 않다. 현재 이 총리는 실세 총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리와 가까운 권 보좌관이 정보기관 수장자리에 오를 경우 이 총리의 대권레이스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 수 있다는 당내 경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권 보좌관은 이해찬 국무총리의 서울 용산고 12년 선배이자 동향출신”이라며 “김우식 비서실장도 충청도 출신으로 이 총리가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되지 않겠느냐는 견제심리도 일부 작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분권형 시스템 도입이후 실세총리로 군림하며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이 총리가 지금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될 경우 대권레이스의 균형 추가 기울 수 있다는 게 정동영계 인사들의 주장이다.여당이 내세우고 있는 권진호 카드 반대 명분은 후임 국정원장은 관리형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기용돼야 한다는 논리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권진호 카드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북한 핵문제와 한미동맹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기 위해선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권 보좌관은 이같은 문제를 풀기엔 다소 약한 인물로 보며 당내 중진급 인사를 기용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내 반발기류가 확산되자 청와대는 일단 확정발표를 늦췄다. 정밀검증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여당의 반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국정원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차기 대권주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차기 국정원장은 시기상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까지 임기가 보장될 가능성이 높아 고영구 원장 때에 비해 그 임무와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다.이 때문에 여권내 차기 대권주자들은 후임 인선에 지대한 관심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정보를 장악하고 대북 정보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정원장 자리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정보를 장악해야 대권 승리를 점칠 수 있어 자기세력을 후임자로 앉히기 위해 보이지 않는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주자간 자기사람 심기 경쟁

여권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정치인 국정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은 이강래 의원과 김혁규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 정부시절 국정원 기조실장 출신으로 국정원과 당의 사정에 밝다는 점에서 적임자로 오르내린다. 여권내 영남권 대표주자인 김 의원도 관리능력과 정치력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 거론되고 있다. 관심은 두 사람 모두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가깝게 지낸다는 점이다. 이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이후 당권파를 형성하며 친정동영계로 알려진 바른정치연구회 회장이며, 김 의원도 정 장관과의 연대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정 장관이 후임 국정원장으로 당내 실세 정치인을 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내 일각에선 정 장관 진영은 권 보좌관이 국정원장에 오를 경우 자칫 북핵문제와 남북정상회담 등 대북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면서 “차기를 준비하는 정 장관 입장에선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물이 중용되는 것을 희망할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실세보다는 관리형 선호

그러나 청와대는 이같은 당내 기류와는 정반대로 가는 분위기다. 정치인 실세 국정원장보다 관리형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북핵문제 등 대북문제에도 깊이 관여를 해야하기 때문에 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인사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민의 정부시절 임동원 전국정원장이 맡았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청와대 입장에선 실무경험이 없는 정치인 원장보다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으며 대북문제를 다뤄온 권 보좌관을 더 적임자로 보는 셈이다. 게다가 이광재 의원의 러시아 유전의혹 개입여부, 문정인 전동북아시대위원장의 행담도개발사업 관련 월권논란 등 노 대통령의 측근과 참여정부 핵심들의 잡음 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기레임덕 현상이 올 수 있어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이자, 대권주자를 견제할 수 있는 관리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핵’과 ‘대권주자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인사를 후임 국정원장에 임명한다는 복안인 셈이다. 여기에 여당에서 주장하는 실세 정치인을 국정원장에 기용할 경우 그 실세 정치인과 뜻을 같이하는 차기주자에게 힘이 쏠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동영 장관과 이해찬 총리간의 파워게임 조짐이 일고 있는 후임 국정원장 선임을 놓고 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 6·3세대 정치인 명암 ‘대망론’ vs ‘영어의 몸’… 야속한 정치운명

6·3학생운동이 올해로 41주년을 맞이했다. 6·3학생운동은 지난 65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 박정희 정권에 항거했던 운동으로 흔히 ‘6·3사태’로 불리고 있다.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주도세력들을 6·3세대로 일컫는다. 민주화 세력의 맏형격인 이들 6·3세대들은 이후 대거 정치권에 진출, 한국정치사에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다. 6·3세대 정치인으로는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를 비롯해 김덕룡 의원, 6·3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의원, 안택수 의원, 서청원·홍사덕 전의원,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김덕규 국회부의장, 이부영·정대철 전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들은 16대 대선과 지난해 4·15총선을 거치면서 정치적 명암을 달리하고 있다. 65년 당시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으로 학생시위를 주도하다 반년간 옥살이 경험이 있는 이명박 시장은 6·3동지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표적인 6·3세대 정치인으로 한나라당내 유력한 대권주자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67년 ‘6·8 부정선거’ 시위를 주도한 김근태 복지부장관과 손학규 경기지사는 6·3세대와 70년대 민청학련 세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범 6·3세대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들 두 사람 역시 여야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거쳐 집권당 수장에 등극했고, 김덕규 의원은 국회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은 지난해 총선이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해 주류 세력으로 거듭났고, 6·3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의원은 차기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다.이처럼 잘 나가는 6·3세대 정치인이 있는 반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6·3세대 핵심인사로 여야 당 대표를 역임한 정대철·서청원 전 의원은 지난해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고, 6·3세대 대표주자였던 한나라당 홍사덕 전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원도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 정치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또 한나라당 하순봉 박명환 현승일 김원길, 민주당 이협 김경재 전의원 등 적지않은 정치인들이 지난해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총선에서 낙선, 정치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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