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와 담판사이 ‘제3의 방식’ 대두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좌)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우)가 지난 6일 단독 회동을 갖고 단일화 논의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위해 단독 회동을 가졌다. 지지부진하던 단일화 논의가 두 후보의 만남으로 물꼬가 트이면서 대선 40여일을 남겨두고 본격적인 단일화 정국을 맞게 됐다.

당초 원론적인 얘기를 주고받을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첫 만남부터 단일화 논의는 속도를 보였다. 특히 후보등록 마감일인 오는 26일까지 단일화 작업을 끝마치기로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전된 내용의 합의안이 도출됐다는 평가다. 그런 만큼 양측의 샅바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문 후보가 “악마는 ‘디테일(detail·세부)’에 있다”고 했을 정도로 향후 순탄치 않는 세부적 협상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진영의 ‘보름간의 단일화 전쟁’은 막이 올랐다.

문-안 단독 회동, “한 사람만 등록”

“이제는 룰의 전쟁이다”

문재인 캠프 측 한 인사의 말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첫 단독 회동을 갖고 단일화 시기를 포함해 모두 7개 항에 합의했다.

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과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직후 브리핑을 갖고 오는 26일까지 야권 단일후보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혁신에 대한 공동인식 △정당정치의 기득권 포기 △대선 승리를 위한 후보단일화 △유·불리가 아닌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얻는 단일화 △후보 등록일전 단일화 △새정치 공동선언문 발표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공동캠페인 등 7개 조항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본격적인 단일화 논의에 앞서 각 진영에선 팀장을 포함해 3명의 단일화 실무팀이 구성됐다. 또한 정당혁신과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 방향을 고민하고 조만간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분주해진’ 文, ‘조심스런’ 安

문-안 회동은 안철수 후보가 전날 단일화를 제의하고 문 후보가 이를 수락한 뒤 하루 만에 이뤄졌다. 당초 안 후보 측은 문 후보 측의 계속된 러브콜에도 “정책홍보가 우선”이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런 만큼 안 후보의 입장변화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지지율 정체까지 겹친 안 후보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파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간 단일화 논의를 계속해서 제안했던 문 후보는 회동이 끝난 뒤 거친 없는 모습을 보이며 단일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8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전국지역위원장 회의에서 ‘새 정치 공동선언 발표→양 캠프 각각의 정책 발표→양 캠프가 공유하는 가치·정책 제시→단일화 방식 제시’로 이어지는 4단계 로드맵을 제안했다.

그는 “공동선언이 빠른 시일 내에 잘 넘어가야 다음 단계인 단일화 논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공동선언이 잘 풀리면 빠른 시일 내에 두 후보가 함께 내놓고, 양쪽의 정책 발표가 끝나면 서로 공유하는 가치와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한 뒤 단일화 방식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을 하루빨리 발표한 뒤 곧바로 단일화 ‘룰 협상’에 착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 측은 ‘후보 간 조율을 통해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반응이다. 안 후보 선거 캠프 정연순 대변인은 지난 8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아직 아무것도 논의되지 않았다”며 “마음을 터놓고 양 캠프가 의견을 내놓으면 후보들이 조율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새정치 실무팀’ 가동... ‘기싸움’ 치열

문-안 단일화 회동 이틀만인 지난 8일 ‘새정치 공동선언’을 위한 양측의 실무팀이 첫 회의를 진행했다. 이어 9일에도 단일화를 위한 실무논의가 이어졌다.

이들은 실무회의에서 △새정치의 필요성과 방향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의 과제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 방향 △새정치 실천을 위한 약속 등을 의제로 설정했다. 하지만 회의 분위기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문 후보측 정해구 간사는 첫 회의에서 “가능한 한 빨리 급한 건 마무리 짓고, 시간이 별로 안 남았기 때문에 단일화 협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 협상을 서둘러 진행할 것을 재촉했다.

반면, 안 후보측 김성식 본부장은 “정치혁신을 제대로 할 때만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며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정치를 만들어 낼 때 국민들의 희망이 커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하는 새정치 국민선언은 통과의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무팀은 ‘새정치 공동선언문’의 핵심 쟁점인 정치·정당개혁과 국민연대 방향 등에 대해 집중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 후보 측은 새정치 공동선언문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단일화 방식에 대한 실질적 논의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안 후보 측은 국회의원 숫자 및 중앙당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쇄신의 깊이와 폭을 놓고 여전히 입장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문 캠프發 단일화론에 ‘뿔난’ 安

단일화 룰을 둘러싸고 문 후보 측 캠프에선 여러 ‘설’들이 다양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 후보를 가장 크게 자극하는 내용은 ‘신당 창당설’과 ‘담판을 통한 단일화론’으로 결국 ‘아우’인 안 후보가 ‘형님’인 문 후보를 위해 통 큰 양보를 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이다.

안 후보 측은 이와 같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언급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유민영 대변인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문-안 회동 당시와 다른 내용이 민주통합당 발(發)로 보도되고 있다”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의 마음이 ‘언론 플레이’로 얻어지겠느냐”고 따졌다.

안 후보의 조광희 비서실장도 문 후보 측 노영민 비서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그는 “왜 이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해 없길 바란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광온 캠프 대변인도 “서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우리도 조심하겠지만 언론에서도 표현과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결국 ‘룰의 싸움’... 방법은?

단일화를 위한 세부 논의나 협의는 결국 ‘룰의 싸움’으로 집약된다.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언제 선출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국민적 화두다. 여기에 단일화 이후 어떤 식의 국정 파트너십을 형성할 것인가도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사다.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와 담판을 통한 단일화 그리고 ‘제3의 룰’ 형식이 캠프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현재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만으로 단일후보를 선정하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를 합의하더니 어느 날 졌다고 한다면 양 지지층이 쉽게 납득하고 다음 단계로 정세가 이동하겠느냐”며 국민 참여방식을 제안했다.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를 기본으로 하되,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 때 사용된 배심원제나 국민경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배심원제는 미리 선정한 배심원이 후보 토론회(TV 등)를 지켜본 뒤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이고, 국민경선은 선거인단 등록 이후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민경선은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도입이 쉽지 않다. 문 후보 측은 배심원제나 국민경선이 어렵다면 제3의 방식을 여론조사에 추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 캠프 측 이목희 기획본부장은 지난 9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제3의 방식과 관련, “우리의 기본 입장은 여론조사와 함께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의 경선을 하자는 것”이라며 “안 후보 측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방식을 제안하든 검토 후 경선룰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은 조직력이 약한 만큼 국민참여경선보다 여론조사를 좀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국민경선이 자칫 조직 동원 및 부정선거 논란으로 번질 경우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명분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담판’이나 ‘배심원제’를 통한 단일화 방식 등도 캠프 내에서 거론되고 있다.

안 캠프 측 정연순 대변인은 지난 8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단일화 방식과 관련, 여론조사나 담판이 아닌 ‘제3의 룰’ 가능성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 대변인은 “새로운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며 “모든 것을 열어놓고 있다. 인터넷 채널이나 민원실을 통한 국민의 제안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즉, 여론조사, 국민참여경선, 여론조사와 국민경선을 합한 혼합식, 후보 간 담판 등의 단일화 방식 외에 새로운 방법론이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단일화 방식 등에 대해서는 양 후보 간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 것을 빼놓고는 전혀 논의된 적이 없다”며 “일단 새정치 공동선언이 우선적으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힌편,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지난 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이에 따른 논란도 있을 수 있다”며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하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식의 룰이 적용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