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유임 지시... 朴 캠프, ‘대선이 코앞인데, 또?’

▲ 좌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 문화방송 김재철 사장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정치권과 언론계를 중심으로 그간 MBC(문화방송)에 대한 보도형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공정성을 잃은 채 특정 대선후보에게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 배후에 김재철 MBC 사장이 있다는 비판과 함께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무성 전 의원과 청와대 핵심 인사인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김재철 사장 유임을 위해 방송문화진흥원(이하 방문진) 이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야권은 일제히 ‘언론장악을 위한 김재철 사수작전’이라며 공세를 폈고, 박 캠프 측에선 ‘대선이 코앞인데, 또…’라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김무성-하금열, ‘김재철 사수하라’ 압박”

김재철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부결됐다.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김 사장 해임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반대 5, 찬성 3, 기권 1로 결국 부결됐다. 여당 측 이사 6명 중 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야당 측 이사들은 즉각 반발했고, 김 사장 해임 부결을 위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방문진 이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달 23일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의 ‘김재철 사장을 스테이(유임) 시키라’는 전화를 받고 입장을 바꿨다”며 김 사장 유임에 청와대와 박근혜 캠프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양 위원은 김 사장의 해임안이 부결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하금열 실장과 김무성 본부장이 방문진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양 위원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방문진 이사회는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키기로 사실상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 여권 추천으로 새롭게 방문진 이사로 임명된 김충일 박천일 김용철 이사와 야권 추천의 선동규 최강욱 권미혁 이사 모두 김 사장 해임의 불가피성을 공유하고 그를 해임키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틀 전인 23일 박근혜 캠프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하금열 대통령실장의 개입으로 김 사장의 해임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MBC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하금열 실장과 김무성 본부장이 (여권인사) 김충일 이사에게 전화해 김 사장을 유임시키도록 했다”며 “‘김재철 체제’가 박근혜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무리하게 ‘김재철 지키기’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MBC 노조의 ‘선(先) 업무복귀, 후(後) 김재철 처리’를 약속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약속을 파기했다”며 “MBC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상임위원장 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권미혁 이사도 “지난달 25일 해임 결의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24일 갑자기 여당 이사로부터 더 이상 추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선동규 이사 역시 “결의문에는 김재철 사장과 현 노조 집행부의 동반 퇴진은 물론 쌍방이 그간 제기한 고소·고발을 취하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으나 추진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며 “청와대와 여당의 압력에 (김재철 사장 해임이) 저지됐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김무성 “그런 일 없다” 반박

김무성 본부장은 자신이 김충일 이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일부 이사진들의 주장에 대해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8일 해명자료를 통해 “김 이사와는 평소 잘 알던 사이로, 얼마 전 길에서 한번 만난 적은 있으나 MBC와 관련된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도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하금열 실장과 김충일 이사는 수십 년간 아는 지인 사이로 평소에 전화를 많이 주고받지만 그런 내용의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양문석 위원이 하금열 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한 김충일 이사가 직접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며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진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양 위원은 이에 대해 “김충일 이사가 새누리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조율한 전화 통화내용을 파악했다”며 “증인은 언제든 등장시킬 수 있다”고 거듭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양 위원은 “새누리당은 당초 MBC노조가 업무복귀를 하면 김 사장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해임안 처리 과정에 개입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게 철저히 속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재철 의혹 정치쟁점화

박근혜 캠프와 청와대가 그간 ‘정권의 나팔수’란 지적을 받아온 김재철 사장의 유임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문제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야권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며 박 캠프 측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국회 문방위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이명박·박근혜의 정권 연장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라며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박근혜 후보가 겉으로는 방송의 공공성 강화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내심 편파 불공정 방송에 기대어 정권연장을 꾀하려 한다면 50년 전 군부가 방송을 장악해 독재정권을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질타했다.

문재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국민의 여망을 짓밟고 여야 합의를 깨고 국민의 비판이 있든 없든 대선 때까지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박 후보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며 “박 후보가 이런 언론관을 갖고 대통령이 된다면 이명박 정권 시절 후퇴한 언론의 자유는 계속 말살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이 아는 모든 상식이 공영방송 MBC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김 사장의 부적절한 언행과 행동을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야권후보의 정치 공학적 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물타기 하려는 신종 수법”이라고 일갈했다. 최수영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김무성 본부장이 ‘MBC와 관련한 어떤 얘기도 방문진 이사와 얘기한 적이 없다’고 밝히지 않았느냐”며 “양문석 위원이 억지주장을 하자 민주통합당이 그걸 갖고 정치공세를 펴며 덮어씌우기를 한다”고 역공을 가했다. 그러나 박 캠프 내에선 정수장학회의 MBC 주식매각 시도 논란 이후 또 다시 김재철 사장 유임에 캠프가 관여됐다는 의혹이 일면서 ‘대선이 코앞인데…’라며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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