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지배자’ 그늘 속 부당거래 정황


- 윤경은 사장, ‘지배자’ 입장 대변인으로 전락
- 계열사 노사관계 아닌 그룹 차원의 일로 확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그룹(회장 현정은) 계열사인 현대증권(사장 윤경은) 노동조합이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지목하며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현대증권의 부실 저축은행 인수 등 기업의 인수합병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도 모두 이 지배자의 손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 그룹과의 마찰도 예상된다. 문제의 지배자는 황두연 ISMG 대표로 현대증권 등 현대그룹의 주요 광고와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민경윤 현대증권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현대그룹 계열사 간의 경영비리에 관한 2차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현대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자, 누구

해당 녹취자료에 따르면 이 지배자는 현대상선이 선박펀드 참여 사업자를 선정할 때 과거 개인적 감정을 이유로 유력 사업자를 최종단계에서 배제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기서 사인을 안 하면 나가지를 않는데”라며 “서류를 찢어버렸다”는 육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민 위원장은 “해당 녹취는 현대그룹 경영의 최종 결재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현대그룹에 지분이나 어떠한 공식적인 직책이 없는 자의 이러한 행위는 현대상선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녹취자료에 따르면 이 지배자는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당시 부사장)과 공모해 현대증권 싱가포르ㆍ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해외 기업을 인수한 후 자문 성격의 부당 수수료 수십억 원 가량을 취득하려고 했다.

게다가 이 지배자는 현대증권이 현대저축은행(당시 대영저축은행) 인수 과정에서 숨겨진 부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스스로 시인했으며, 저축은행을 통해 한국종합캐피탈을 인수한 후 그 자산인 70억 원대 골프장을 헐값에 매입하려고 했다.

해당 녹취자료에는 “딜(deal)이 커야지 무슨 피(fee)가 제대로 크지”, “윤 부사장보고 내가 한 30조, 40조, 50조 하는 거 잡아오라고 했는데”, “막말로 돈 2~3억, 5억, 7억 이딴 거 가지고 뭐해”, “대영 거 더 뒤졌어야 되는데 그냥 덮고 인수해 가지고”, “증권이 착수(initiate)하는 걸로 해. 우리는 거기서 빼먹는 거, 뽑아오는 거야. 골프장하고 일본 거” 등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조가 감시하자 와해시키려 논의도

앞서도 현대증권 노조는 지난 7일 국회에서 1차 기자회견을 열어 이 지배자가 현대증권 노조를 와해시키는 방안을 논의한 녹취자료를 공개하고, 같은 날 현정은 회장 등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바 있다.

이 녹취자료에는 윤 사장 등이 참여한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현대증권 매각설, 노조붕괴 논의, 저축은행 유상증자 등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에 관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현대증권 매각설과 관련해 당시 현 회장이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현대증권 매각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해명한 것이 회의 결과 이뤄진 것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노조 측은 “표면적으로는 회사의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 사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사의 비리와 부실 및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노조가 나서서 현대증권과 현대그룹에 대한 감시 및 문제제기를 한 것이 부당노동행위를 유발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측은 “현대증권이 노동조합을 탄압하거나 와해시키려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노조를 회사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의문의 지배자, 현 회장과 친분?

한편 민 위원장은 기자회견 과정에서 문제의 지배자가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이사라는 것을 언급해 파문이 예상된다.

황 대표는 윤세영 SBS 회장의 사위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황 대표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ISMG는 현대증권 등 현대그룹의 주요 광고와 자문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대유엔아이가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유엔아이는 현정은 회장의 장녀 정지이 전무가 맡은 계열사로 현 회장과 정 전무가 각각 59.21%, 7.8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또한 민 위원장은 “현 회장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현 회장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현대그룹은 실망스러운 작금의 상황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현대증권 노사관계의 한정된 테마가 아니라 그룹 차원의 자성이 필요한 일”이라며 “향후에도 계속해서 경영비리를 공개하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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