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 후보, 호남사람을 배알도 없는 정치 식민으로 알아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서원호 취재국장] “국민대통합은 시대정신으로서 동서갈등의 벽부터 깨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 2004년 당시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접견하고 아버지 문제를 사과했고, 김 전 대통령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동서갈등을 조화시킬 적임자는 바로 박 대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사후지만 두 분은 역사적 화해를 했습니다. 이젠 이걸 현실화해야 합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난 10월 5일 새누리당에 입당한 뒤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을 맡은 다음 [일요서울]과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대통합 위원회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 창공을 나는 법을 안다”면서“동서 지역감정을 허물어야 국민통합의 길도, 국력신장의 방법도, 통일시대의 새로운 문도 보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DJ의 유지 실천을 위해선‘용기 있는 결단’을 절감했고, 이 길이 분명 외롭고 힘든 것임을 알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DJ 유지를 말하기 쉽고, 하는 척하기도 쉽다지만 그는 이 시대의 나라와 민족의 요구인‘행동하는 양심’의 편에 선 것이다. 그는 “특히 대통령은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노무현의 시험기를 겪은 우리로선 더 이상 위태로운‘질주의 정치’를 방조할 수 없다”면서 “정도의 정치란 나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에 하늘과 땅이 도우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국가적 호기인 천재일우(千載一遇)를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광옥 수석부위원장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13·14·15대 의원을 지낸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그는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DJ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한 인연으로 동교동 캠프에 합류한 뒤 1985년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의 대변인을, 지난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 추진위원장으로‘DJP연합(김대중·김종필 후보단일화)’을 성공시켰다. 김 전 대통령 당선 후 그는 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었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대표상임의장으로 활동했으며, 1999년 11월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이후 2001년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2009년부터는 민주당 상임고문 역을 맡아왔다.


-지난 10월 5일 새누리당에 전격 입당한 후 한 달 보름가량이 지났습니다. 평생 진보 쪽에서 정치를 해오시다가 보수 진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 저는 항상 정도의 정치를 주장해왔습니다. 과거에 감옥도 불사하고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 정도였고, 또 김대중 대통령님을 모실 때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또 하나의 정도였으며, 이제는 나라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지역 갈등, 특히 동서 갈등, 계층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 경제발전, 특히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위기극복의 절호의 기회가 이번 대통령선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이라는 이런 것을 깨야합니다. 민주당은 호남사람들을 그들의 정치 식민으로 여기고 있어요. 현재 민주당은 옛날 민주당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하시고 제가 당 대표하던 당이 아닙니다. 상당히 편향되어 있고 정체성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배신의 정치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됩니다. 호남인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속에 대통령이 되었던 부산 출신 노무현이 호남에 해 준 일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의 아바타가 또 호남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제 갓 젖 뗀 구상유치(口尙乳臭)를 풍기는 또 한 명이 호남에서 젖동냥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호남 사람들은 배알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이제 호남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하느냐는 것에 저는 결심을 한 겁니다. 10월 31일에도 대통합위원회에 172명을 합류시켰지만,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한광옥이 국가를 위해 결단을 잘 내렸다는 평가를 해줍니다. 지난번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한광옥이 새누리당에 온 걸 잘했느냐, 못했느냐의 조사에서 57.4%가 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맡고 계신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국민대통합을 이끌어 내기 위한 역점 사업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계층, 세대, 이념도 중요하지만 작은 나라에서 동서가 갈라져서야 되겠습니까. 지역 균형 발전, 집권 후 인사 대 탕평책, 이런 점들을 박 후보께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종 시는 박 후보가 정치 생명을 걸고 한 겁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소신이었죠. 지켰잖아요. 국민대통합을 얘기하지만 과연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박근혜 후보만이 할 수 있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과연 해낼 수 있는 있느냐 그리고 진정성이 있느냐는 세종시 사례에서 보듯이 박 후보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박 후보가 ‘호남총리’ 등 인사 탕평책을 말씀하셨는데 호남에서 한 위원장께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동서화합 형 총리가 처음으로 출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 대환영입니다만 저를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국회의원 4번, 당 대표, 대통령 실장까지 한 사람이 뭘 바라겠습니까. 국민대통합을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통일의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박근혜 후보밖에 없다고 보는 겁니다. 저의 관심은 통일에 있습니다. 완전한 국민대통합 그러니까 민족대통합은 남북통일이 되겠죠.

-지난 10월 말경 중앙선대위에서 100% 대한민국 말씀을 하셨습니다. 100%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부의 양극화 문제 해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인데요.
▲ 1%의 잘사는 사람 때문에 99%가 어렵게 산다는 것이 계층 간의 갈등 아닙니까? 이런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죠. 세대 간의 문제 또한 20-40 세대와 50-60세대의 견해 차이가 많죠. 이것도 서로가 처한 상황을 이해시키며 조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념 갈등, 이런 문제도 언제까지 할 것입니까. 종북이다 뭐다 다 순화시켜서 안고가야지. 그럴 때 100% 대한민국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민족대통합까지 가야 완전한 국민대통합이 된다 이겁니다.

▲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지난 2005년 11월 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두 번째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루빨리 지역갈등이 없어지면 좋겠다. 선친께서 못하신 지역화합을 위해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대통합과 관련해 과거사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선 돌파구가 있나요?
▲ 과거를 현재에 대한 투쟁으로 보면 미래를 창조할 수 없죠. 과거의 일들에 대해선 박 후보가 이미 사과를 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동서갈등 문제에 있어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미 화해를 했습니다. 그 증거가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된 박정희 기념관입니다. 정수장학회, 부마항쟁 등 유신시대 일들도 여러 번 사과했습니다.
10월 26일 박 대통령 추도식에서 산업화 시대를 이룩하는 과정 속에서 피해와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했고,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딸로선 애절한 얘기죠. 산업화 시대의 성취는 국민에게 돌려드리고 그 과정 속에서 피해와 상처는 안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애절한 얘기입니까. 앞으로의 후속조치는 지켜봐 줘야합니다. 미흡한 부분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리라 믿고 있어요.

- 수석 부위원장께서는 DJ정부 때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강조해 오셨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런 점이 이번 대선에서는 박 후보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지요? 통일 관계에 대해 박 후보에게 도움이 될 남북관계 구상이라도 갖고 계신지요.
▲ 안보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안보가 있어야 저쪽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몸이 약하면 남에게 베풀어 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안보는 기본적인 문제지만 현재 경직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주고,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은 설득시켜야 합니다. 핵 문제도 설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은 100% 아니지만 서로 절충해서 설득해 나가는 물꼬를 터야 합니다. 지금 대화가 막혀 있잖아요. 동·서독 간에도 10년간의 대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먼저 인프라가 깔려야 한다는 것이죠. 중요한 점은 하는 척하지만 말고 그것을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은 앞으로 남한만으로 안 됩니다. 민족적 숙제입니다.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도 있어야죠.
이건 민족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10위권에 와 있지 않습니까. 통일의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국민대통합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이보다 어려운 과제인 남북 분단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런 점에서 DJ정부시절에 가장 중요했던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굉장히 좋은 사례인 대타협까지 이끌었습니다. 새누리당에 오셔서 노사문제 부분에서는 어떤 진전된 계획이나 입장이 있으신가요.
▲ IMF가 6·25 이후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최대의 수난기라고 했는데 노사정 대타협이 안됐으면 IMF 측에서 돈을 꿔주지도 않았고 상환 연기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담보가 노사 대타협이었습니다. 그 타협을 해내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때 금모으기 운동도 했지만 노사 대타협이 되었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도 다 해결을 했습니다.
나는 이 같은 어려운 문제의 타협에서 기본정신은 진솔한 대화라고 봅니다. 어떤 자리에서 사인해주면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그럼 국가가 부도나면 기업체가 없어지고 자동적으로 자리를 내 놓아야 하는데 마찬가지 아닌가. 나라만은 살려놓고 잘려도 잘 잘려야할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진정성입니다.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얘기해야 됩니다. 나보다도 당, 당보다 국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통로를 만드는 겁니다. 노사도 마찬가집니다. 회사가 잘 안 돼 봉급 좀 줄이자 하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회사는 돈을 버는 것 같은 데 봉급이 안 오를 때 분쟁이 생깁니다.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솔직히 있는 대로 얘기하면 되는데,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면 노사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노사가 진솔하게 대화하게 되면 문제는 풀어진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는 유독 호남이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캐스팅 보트를 쥔 곳으로 부각되고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인데 득표 전략 차원에서 호남인들에 대한 설득 논리는 어떤 것인지요.
▲ 호남인들이 이젠 신중한 투표를 하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걸 떠나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냐, 어느 후보가 준비된 후보냐, 이런 걸 많이 볼 겁니다. 이것을 우린 계속 주장하고 대화를 통해 충분히 이해시킬 겁니다.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는 일도 해야겠죠.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자는데 언제까지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이냐, 이래서 되겠느냐는 논리를 펴야죠. 처가 경남 진주 사람이라 우린 동서화합이 됐는데 이렇듯 양 지역 간 교류도 중요합니다. 호남인들은 현명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적극적인 설득과 이해를 구하려고 합니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조성되었다는 시각이지만 박 대통령은 64년 윤보선과의 대결에선 오히려 호남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71년 김대중 후보와의 대결 시에도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에서 보듯이 호남 농어촌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적지 않아 노년층 어르신들에겐 그 향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 박정희 후보가 1964년 윤보선 후보와의 일전에선 호남은 박정희 49.9%, 윤보선 33.8%였습니다. 당시 대도시와 중부지방은 윤 후보를 밀고 영호남은 박정희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박 후보가 10여만 표 차이로 어렵사리 이겼는데 영호남 지지 덕분이었죠. 71년 선거도 호남은 김대중 58.7%, 박정희 32.7%로 영남에서 김 후보가 득표한 23.3%보다 10% 가량이 많이 나왔습니다. 64년 선거에서 호남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준 지역이었고 71년에도 그런 대로의 지지를 보낸 지역이었죠. 두 번의 선거 결과는 농업지역인 호남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호남을 포기하고 영남 지지만을 자신의 정치적 토대로 삼아야 할 명분도 필요성도 없었던 것이죠. 박 대통령의 농업중시는 당시 농업인구가 대부분인 호남사람들한테 진심으로 전달된 때문 아닐까요.
그런데 71년 3선 개헌을 비판하는 민주세력 진영의 김대중 후보가 등장했습니다. 엄청난 지지와 돌풍을 일으키는 김 후보를 꺾을 방법으로 선거 3일 전 박 후보 측근들이 영남지방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삐라를 뿌려대며 영호남 대결구도로 몰아갔습니다. 그 이후는 이런 반발 심리를 양 지역 출신 정치인 모두가 역이용하여 오늘의 동서지역 갈등을 고착화시켰던 것이죠. 이젠 이를 풀어야 합니다. 물론 정치인들의 자성과 참회가 있어야겠지만 지역균형발전, 인사 대 탕평책 그 두 가지를 꼭 실현시키면 지역감정은 풀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대선 이후의 비전이랄지 국민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박 후보와 4·19기념탑에 그리고 김대중기념회의 토론회에도 갔었고, 호남에도 모시고 갔습니다. 당당하니까 하는 겁니다. 정치인들이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념을 가져야죠. 대선이 끝나더라도 국민대통합 그리고 더 나아가선 민족대통합을 위한 길에 매진할 겁니다.

<대담·정리=서원호 취재국장> 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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