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뇌물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양윤재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전격 구속한 검찰은 청계천 일대에서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던 업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화하는 등 청계천 사업 전반으로 사건을 확대시키고 있다. 검찰은 또 이들 업체가 서울시 공무원 등에게 부당한 청탁과 함께 돈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자들을 출국금지하는 등 본격적인 계좌추적에 들어갔다. 검찰의 사정 칼날이 서울시 공무원을 비롯한 청계천 사업 관계자들에게 향하면서 서울시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최종 타깃은 이명박 서울시장에 맞춰져 있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시장이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점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여야 차기 대권구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청계천 비리 사건이 터진 이후 여야 대권주자들은 나름의 손익계산을 따지며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청계천 사업 뇌물사건으로 직격탄을 맞은 대권주자는 다름아닌 이명박 시장. 청계천 재개발 사업은 이 시장의 공약 사항이자 임기중 최대 치적으로 꼽고 있는 프로젝트다. 이 시장은 오는 10월까지 청계천 사업을 마무리 짓고 그 여세를 몰아 본격적인 대권레이스에 뛰어들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사업 종반에 터진 뇌물사건으로 이 시장의 대권 플랜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 시장의 연루 여부는 검찰 수사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양 부시장 등 서울시 공무원들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거나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시장은 이미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여기에 부동산 개발업자인 길모씨로부터 14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성남 중원 지구당위원장 출신인 김일주씨를 이 시장이 몇 차례 만났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시장 역시 이 사건에 자유롭지 못한 입장으로 몰리고 있다.이 시장측은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의 수사 확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이 시장이 ‘올인’ 했던 청계천사업이 평가절하되고 궁극적으로 대권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정치권 관계자들도 이번 사건으로 이 시장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정치적 위기상황에 내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시장과 함께 한나라당 ‘대권 빅3’로 분류되고 있는 박근혜 대표와 손학규 경기지사는 청계천 사건 후폭풍을 경계하며 대권 손익계산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시장이 대권 경쟁자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코너에 몰린 이 시장의 처지를 외면할 수도 있지만 속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무엇보다 이 시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청계천 사건이 확대될 경우 한나라당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위기감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김일주(구속)씨가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최근 “야당 대권 주자 거세 작전”이라며 이 시장 측면 지원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소나기는 일단 피하자”며 검찰의 칼날을 차단하는데 공동 대응하자는 분위기다. 이는 ‘차떼기 정당’이란 불명예를 채 씻지 못한 상황에서 청계천 사건이 대형게이트로 비화될 경우 국민들로부터 비리정당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청계천 사건이 불거진 이후 당 일각에서는 대권구도와 관련한 미묘한 변화 조짐도 일고 있다. ‘이회창 전총재 역할론’이 공식 제기되는가 하면 박근혜 대표의 ‘킹 메이커론’, ‘고건 전총리 영입론’ 등도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아직 공론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언제든 당내 대권구도가 변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청계천 사건이후 이러한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는 사실에서 당내 대권구도 및 역학구도에 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엿 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향후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한나라당 대권구도는 ‘이회창 역할론’ ‘고건 영입론’ 등과 맞물려 일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여권 차기주자들도 청계천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시장의 정치적 명운은 비단 야권뿐 아니라 여권 대권구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권은 박 대표와 이 시장, 손 지사를 ‘대권 빅3’로 분류하고 이들의 대권 경쟁력, 대중적 지지도 등을 체크하며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시장이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경우 야권은 대권구도를 재점검하는 등 본선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여권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유력한 대권주자 한 사람을 코너에 몰아 넣을 수 있다는 눈 앞의 실리는 잠시 야권 대권주자들의 면역력을 키워주고 본선 경쟁 체제로 돌입하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동영(통일부)·김근태(보건복지부) 장관의 당 조기 복귀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물론 이 두 사람에 대한 복귀론은 4·30 재보선 전패 이후 불거졌지만 청계천 사건이후 그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재보선 참패로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위기상황에 몰리면서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당내 결속과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당 일각에서는 제3의 인물론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계천 사건이후 한나라당은 박 대표가 고건 영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정권장악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만큼 여권도 정권 수성을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관련 열린우리당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장 의원은 11일 평화방송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제3의 인물이 차기 대권주자로 출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기존 지도자들이 오랜 훈련을 겪어왔기 때문에 먼저 가는 측면이 있지만 얼마든지 타 주자들의 도전이 있을 수 있다”며 제3의 인물론을 거론했다.재보선 완패와 여권내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인지도가 야권 대권주자들 보다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실제로 여권 주변에서는 ‘제3의 인물론’ 후보군으로 천정배 전 원내대표, 유시민 상임중앙위원, 김두관 전행자부장관 등의 이름이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다.이처럼 청계천 사건은 야권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이 시장의 정치적 명운과 맞물려 여야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차기 대권구도를 다시 그리게 하는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과 국민적 시선이 청계천 사건에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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