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동양그룹(회장 현재현)이 수년간 지속됐던 유동성 위기라는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지만 패션사업이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독립사업부로 분리된 ㈜동양 패션부문(대표 이상철)은 실질적으로 현 회장의 둘째딸인 경담씨가 이끌고 있다. 현경담 동양 패션사업본부장은 패션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그룹의 재무구조 악화가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자를 이어나가고 있는 패션사업에 대해 내부 불만이 나오고 있다. 회장 딸이 진행하는 사업이 그룹에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 때문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딸바보’로 불리고 있다.
동양 패션부문 독립사업부로 분리…현 회장 둘째딸 경담씨가 이끌어
그룹에 재무구조 부담 주는 패션 사업 필요한가…내부 불만 높아져
㈜동양은 동양메이저와 동양매직이 합병한 회사로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관리하고 미래 수익을 창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양메이저가 2007년 한일합섬을 인수합병(M&A)한 이후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 시작된 동양그룹의 패션사업은 지난해 9월 독립사업부인 동양 패션부문을 출범시키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앞서 동양메이저를 통해 패션사업을 진행하던 동양그룹은 2009년 멀티 패션브랜드 ‘매그앤매그’를 선보인 후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사업을 벌여 오다가 지난해 2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이후 매그앤매그 매장은 명동·중동·김포·잠실·부산 등에 잇따라 들어섰다. 패션부문을 출범한 지난 9월에는 여성 잡화 브랜드 ‘미타’를 홈쇼핑과 매그앤매그 매장 등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난 5월에는 남성복 브랜드 ‘윈디클럽’을 전략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동양 패선부문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은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패션사업을 육성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보인다.
동양그룹이 신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은 시멘트·레미콘·건자재 등 그룹의 주력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다. 2008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동양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자금조달도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건설경기가 급격히 침체되면서 동양그룹의 주력인 시멘트·레미콘 등의 사업도 함께 휘청거렸다. 결국 동양그룹은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어야 했으며,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 및 자산처분에 들어가야 했다.
소비재 중심 사업구조 개편
이후 동양그룹은 계열사 간 합병·매각 등 대대적인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돌입했다. 특히 건설 중심의 사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소비재 중심 사업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동양그룹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양매직만 유일하게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양그룹 매출은 877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9%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이 170억 원으로 200%가 감소했다. 당기순이익도 64% 감소해 563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동양매직은 지난해 매출 3655억 원, 당기순이익은 80억 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19%·56% 성장했다.
동양이 올해 초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한 통합 포인트 카드 ‘T-ONE(티원)’을 선보인 것은 소비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소비재 중심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롯데·CJ·신세계 등의 그룹에서도 그룹 차원의 통합 포인트카드를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유통재벌인 롯데·CJ와 확연하게 다른 사업구조를 가진 동양그룹의 포인트카드 출시는 결국 이들과 비슷한 사업구조로 변신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동양그룹의 소비재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이 패션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지는 이유다.
패션사업 성공가능성 ↓
그러나 동양그룹의 패션사업에 대한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의류사업은 대표적인 레드오션 시장으로 꼽힌다. 또한 삼성·롯데·코오롱·신세계·이랜드·LG패션·현대백화점 등 쟁쟁한 대기업이 이미 막강한 유통라인을 갖추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SK·두산 등의 재계 상위권 그룹도 패션사업에서는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동양그룹의 패션사업 확대가 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사업이 오너가의 관심 분야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동양 패션부문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이 현 회장의 둘째딸인 경담씨이고, 경담씨의 어머니인 이혜경 동양레저 부회장도 패션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의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패션부문이 기록하고 있는 적자도 부담이 되고 있다. 동양 패션사업 부문은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45억여 원의 적자를 냈다. 출범 1년이 되기 전의 실적이지만 ㈜동양의 부채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투자라는 분석이다. ㈜동양은 올해 초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부채비율이 665%에 달해 경상이익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회장 딸이 패션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동양이 패션사업을 벌이는 것과 관련해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는 동양그룹의 패션사업과 관련해 더욱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런 고민 없이 수입브랜드를 들여와 판매하는 매장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재벌가의 딸들 가운데 취미생활처럼 패션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동양그룹도 비슷한 경우 아니냐”고 꼬집었다.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