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애정의 말로… ‘제2의 산낙지 살인사건’ 되나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친아들과 며느리까지 끌어들여 내연남을 살해한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사로 알려진 이 사건은 경찰 재수사를 통해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으로 밝혀졌다. 또 경찰 조사 과정에서 양자로 알려진 피해자가 이 60대 여성보다 스무 살 어린 내연남이라는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났다. 한때 양아들로 삼아 함께 살 정도로 열렬히 사랑했던 내연남을 살해하고 보험금까지 챙기려 한 얽히고 설킨 사건을 파헤쳐봤다.

윤모(64·여)씨는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모(당시 42)씨를 처음 만났다. 교도소 재소자를 교화하는 종교 활동을 해온 윤씨는 폭력배 출신으로 2002년 수감생활을 했던 채씨에게 연민을 느꼈다. 채씨 역시 공시지가로 40억대 상가건물을 보유하고 매달 900여만 원의 임대수익을 받을 정도로 재력가인 윤씨의 든든한 배경에 호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몰래한 사랑

당시 윤씨는 1995년 이혼해 친아들 박모(38)씨와 며느리 이모(35·여)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채씨는 출소 직후부터 용인에서 혼자 생활해오고 있었다.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하자 두 사람은 안양의 윤씨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고민 끝에 윤씨는 8년 전인 2004년 채씨를 아들로 입양했다. 친아들에게조차 “형으로 대하라”며 둘의 내연관계를 철저히 숨겼다. 매일 언제 어디서든 같이 다니는 두 사람에게 이웃들은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아들 나이대의 남성과 ‘연인처럼’ 다정한 모습에 이웃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에 윤씨는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와 산다는 이웃의 따가운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

그럴 때마다 윤씨가 평소 해오던 ‘종교활동’과 ‘양자입적’은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되어줬다. 윤씨는 두 사람의 관계를 물어보는 이웃에게 “봉사활동을 다니다가 채씨를 알게 됐는데 아들처럼 생각돼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 양자로 삼았다”고 둘러댔다.

나이차도 극복하고 연인관계로 발전했지만 두 사람의 핑크빛 애정전선의 시효는 단 2년 만에 불과했다. 2006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히 하강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채씨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면서 둘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채씨의 여자관계가 복잡해져 갈수록 윤씨의 속은 타들어갔다. 여자문제로 다투면서 채씨의 폭력성향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채씨는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일이 잦아졌고 급기야 폭행까지 일삼았다. 갈등은 날이 갈수록 극에 달했다.

완전 범죄 꿈꾸다

채씨의 바람과 폭력에 배신감이 밀려든 윤씨는 독한 마음을 품게 됐다.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윤씨는 채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친아들과 며느리까지 끌어들였다. 세 사람은 ‘완전범죄’를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윤씨는 아들 부부와 함께 채씨 사망 1~2일 전 서울, 안양, 강원 평창, 횡성 등지에서 항정신성의약품인 졸비템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 80여 알을 나눠 샀다. 또 사망 전 윤씨가 채씨 명의로 채씨가 사망 시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에 집중 가입했다. 윤씨는 사망보험금을 탈 수 있는 3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채씨 명의의 또 다른 보험 9개도 자신과 아들 박씨로 명의를 변경해뒀다. 채씨가 사망할 경우 수령 예상 금액은 6억7000만 원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살해와 함께 금전적 이득까지 취하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행당일인 2010년 2월 10일 새벽 윤씨는 자신의 집에서 채씨에게 수면제를 탄 홍삼즙을 마시게 한 뒤 거실에 있던 연탄난로 덮개를 열어놓고 외출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윤씨는 채씨가 평소 즐겨 마시던 홍삼즙을 담은 물통에 수면제를 희석시켜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부검결과 채씨 시신에서 성인 1회 복용량의 80배가 넘는 수면제 성분이 검출된 점, 채씨 사망 직전 윤씨가 보험에 집중 가입한 점, 윤씨가 119 신고시간보다 7시간여 일찍 집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신고기간이 늦은 점 등을 수상하게 여겼다. 경찰은 윤씨의 살해 혐의를 의심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직접적인 살해증거는 찾아내지 못해 수사는 답보상황에 빠졌다.

‘반전’ 맞이한 사건

미제로 끝날 뻔했던 이 사건은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 5월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반전’을 맞이했다. 윤씨와 아들부부가 사용한 컴퓨터에서 수면제 구입방법을 검색한 기록을 발견하면서 미궁에 빠졌던 수사는 활기를 띄었다.

경찰의 추궁에 아들 부부는 “어머니 지시로 수면제를 사왔다”며 “불면증은 없지만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여러 번에 걸쳐 수면제를 구매했다”고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이에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았고 보험 역시 재테크 목적으로 가입한 것으로 나와 친아들 부부명의로도 보험을 가입해 매달 500여만 원의 보험료를 내왔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던 윤씨는 “동반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샀는데 채씨가 먼저 먹었다”며 진술을 바꿨다.

경찰 관계자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윤씨가 진술을 바꾸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정황증거로 봤을 때 타살이 확실하다”며 “살인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확보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타살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윤씨 모자를 살인 등 혐의로 구속하고 며느리와 보험설계사를 불구속 입건했지만 윤씨가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법정다툼이 예상된다. 이에 ‘낙지살인사건’처럼 결정적 증거가 없어 정황증거로 살인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번 살해사건이 재판 도중 무혐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산낙지 살인사건’은 단순사고사로 처리됐고 시신을 화장해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유죄 판결 여부가 주목받은바 있다. 당시 법원은 확증없던 ‘낙지살인사건’ 피의자에 대해 “정확한 사인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유력한 쟁점의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주론과 관찰을 통해 판단한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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