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신변불안 때문에 한국행 접고 美 CIA 접촉 중”
국회정보위원회는 지난 12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을 출석시켜 김정남의 망명설의 사실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이 김정남을 대선 전 서울로 망명시켜 선거를 흔들려 한다는 시중의 설이 있다”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나 원 원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국정원이 망명에 관여하거나 공작해 대선에 개입할 일은 절대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김정남의 행적에 대해선 “마카오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만 현재 소재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해 국정원이 신변 동선을 파악하고 있음을 에둘러 내비쳤다.
그런데다 최근 북한 김정은 제1비서의 대모 격인 고모 김경희(장성택 부인)가 신병 치료 차 싱가포르를 방문해 김정남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김경희가 불편한 몸으로 직접 김정남을 찾아가야했던 이유를 두고 이런저런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요서울은 한 대북소식통으로부터 “김정남의 망명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이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김정남의 망명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부인에도 ‘김정남이 한국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설(設)의 실체는 시간이 갈수록 ‘사실(FACT)’일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정남 망명설 진위 여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자 국정원 측은 한 일본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루머가 확산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日SNS 김정남 망명 유포는 역정보?
김정남 한국 망명설은 지난 10월말에 흘러나온 얘기다. 한국 정보당국의 핵심 관계자가 비공개 석상에서 김정남이 망명을 요청해왔고, 관계 당국이 신병을 확보한 상태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국정감사가 막바지를 향하던 시점에 국회 정보위원들도 이러한 사실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국감 때 늦어도 11월 말까지는 (김정남 한국 망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들었다”며 “그런데 망명설이 언론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김정남은 황장엽처럼 권력 수뇌부에 있지는 않지만 김정일의 장남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것 자체로도 북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혈통 세습체제를 뿌리 채 흔들어놓을 충격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남의 한국행이 극비리에 진행되지 못한 것은 한국 정보당국 내부의 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대선과 남북관계를 고려해 김정남의 망명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상황이 연출됐거나 다른 방편으로 유도하기 위해 일본 SNS로 정보당국이 역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모 김경희를 싱가포르로 급파했다는 것은 북한 국보위 등 정보기관이 김정남의 행선지를 추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김정남이 싱가포르에 체류 중임을 시인한 것으로 볼 때 국정원도 김정남과 김경희의 만남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김정남이 망명 요청을 했다면 마카오에서 자신을 노리는 북한 정보당국의 감시와 추적이 긴박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의 관측이다.
“장성택 묵인 하에 김정남 제거 공작 중”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제1비서의 후견인이라는 신뢰 속에 김정남의 안전을 담보하는 조건으로 자진에서 싱가포르로 날아갔을 것이겠지만 수행인들 중에는 소재파악을 추적해온 국보위 공작조들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남 암살문제는 지난해 김정일 사망이전인 2010년말부터 김정은을 보좌하는 신군부 권력 엘리트 파워 내에서 거론됐던 문제이고 실질적으로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이 핵심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며 “김정일 장례식이 끝난 직후 김정은의 암묵적인 재가 속에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남이 지난 1월 베이징에 있는 첫째 부인을 만나러 갔을 때 납치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권력 수뇌부는 김정일 생전까지만 해도 김정남 처리 방법을 놓고 납치해서 북한 내에 감금할지, 아니면 거주지 주변에서 사고사로 위장하는 방식으로 살해할지를 둘러싸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으로든 김정남을 외부 세계에서 격리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2010년 9월 김정은 제1비서가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이후로 추정된다. 직접적으로는 그해 10월 김정남이 일본 아사히TV를 통해 3대 세습에 반대하는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복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남을 해치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장남인 김정남의 존재와 세습체제를 부정하는 언행 때문에 김정은 친위부대가 나섰고, 실세인 장성택의 묵인이 있었을것”이라며 “다만 김경희가 강력 반대해 김정남 살해를 가로막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일 사망으로 가려졌지만 김정남 처리 문제를 두고 부부간에 불화설이 있다는 말도 고위급 탈북자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
지난 1월 베이징에서 북한 보위부 공작조에게 납치될 뻔했던 김정남은 얼마 뒤 마카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4월께 싱가포르에서 목격됐다. 이 무렵 한국 정보채널과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남이 신변을 다시 노출한 것은 지난 10월초. 외신이 김경희가 김정남을 만났다고 보도하면서다.
비슷한 시기에 김정남의 아들인 한솔 군이 지난 10월15일 핀란드 TV YLE에 출연했다. 김한솔은 인터뷰에서 “남한에 갈 수 없고 그곳의 친구들을 만날 수 없는 게 너무나 슬프기 때문에 나는 통일을 꿈꾼다”며 “할아버지(김정일)가 독재자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김정남을 쏙 빼닮은 낙천적인 말투임에도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이 묻어나왔다.
김한솔의 발언은 김정은 독재체제를 반대했던 김정남의 입장과 영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당 비서직을 맡고 있는 김경희가 싱가포르로 갔다는 것은 김정남이 망명을 결심했다는 결정적인 단서”라며 “김경희 역시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는 지경에 놓인 김정남을 만나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탈북자는 “아마도 십중팔구는 납치가 불가능하다면 암살공작이 진행 중일 것”이라며 “김정은 제1비서의 후견인으로 실세인 장성택이 모를리 없고 묵인 아래 이뤄질 수밖에 없어 김경희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행 또는 서방 망명 가능성
고모 김경희와의 만남, 아들의 방송 인터뷰 이후 김정남은 다시 잠행 중이다. 정보당국 일각에 의하면 싱가포르에서 거처를 다시 옮겼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 망명설은 언론보도를 타면서 무산됐을 공산이 크다.
김정남이 한국행을 거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의 외삼촌인 성일기 씨는 한국에 살고 있다. 이모인 성혜랑 씨의 아들인 이한영(본명 이일남)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이름을 바꿔 15년을 살았지만 자신의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아파트 앞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1987년 KBS 국제국 방송PD로 입사해 활동하면서 김정일 위원장과 가족, 측근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대동강 로열패밀리’라는 책을 내놓았다.
1998년 그의 죽음에 대해 신변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국정원은 “대동강 패밀리를 저술해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며 이씨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도 북한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황 전 비서는 망명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국정원이 제공한 안가에서 불안에 떨며 갇혀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칩거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2009년 11월 인민군 정찰총국 소속 암살공작조 2명이 황 전 비서 살해 지령을 받고 남파됐다가 검거된 적이 있다. 당시 황 전 비서는 미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순회강연을 하면서 김정은 3대 세습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북한 권력 승계에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공작조를 남파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또 검찰은 지난달 9일 북한보위부에서 ‘중국에서 김정남에 테러를 가해 납치하라’라는 지령을 받은 탈북자 위장 간첩 김영수(50)를 구속기소했다. 이는 김정은이 김정남 제거 지시가 떠도는 말이 아닌 사실로 드러난 결정적인 단서로 해석된다.
이처럼 이들 사례에 비춰볼 때 김정남은 한국행을 선택할 경우 국정원이나 한국정부가 자신과 가족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그가 신변보호라는 명목으로 황 전 비서와 같은 제한된 생활을 거부해 한국행을 보류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래서 현재 신변은 한국 정보기관이 보호하고 있지만 미국 CIA가 개입해 공식적인 망명 사실을 숨기고 미국이나 유럽행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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