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협박범에 시달린 국정원 2차장 부인의 심경토로


올해 미스코리아 진(眞)에 선발된 이하늬(22)씨를 상대로 억대의 금품을 뜯어내려한 40대 남성이 최근 경찰에 검거됐다. 자신을 ‘형편이 어려운 일본 유학생’이라고 소개한 김모(40·무직)씨가 그 장본인. 그는 이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1억원을 주지 않으면 당신 딸의 얼굴 사진을 포르노배우의 나체 사진과 합성해 유포하겠다’는 등의 위협적인 협박을 하다 지난 9일 구속됐다.
이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올해 미스코리아 본대회 바로 직전이라 자칫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과 피의자가 사전에 이씨 가족의 구체적인 신상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취재진은 지난 10일 오후 3시, 이번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이씨의 어머니 문재숙씨를 만나 당시 심정을 들어봤다.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었어요. 딸 가진 부모로서 하루하루가 불안할 따름입니다.”
이번 사건을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문씨. 그는 인터뷰에 앞서 “해프닝으로 끝나서 천만다행이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무섭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 뒤, 당시 겪었던 일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돈 요구하진 않아
문씨에 따르면, 김씨에게 처음 전화가 온 것은 지난 7월 중순께. 휴대전화에 이상한 번호가 떠서 무심코 전화를 받게 됐다는 문씨는 “처음부터 김씨가 돈을 요구하고, 협박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저 푸념만 늘어놓더라고요. 일본 유학생인데 형편이 너무 어렵다고. 이후에도 전화가 몇 번 왔는데, 별로 나쁜 사람 같지 않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이후 날이 갈수록 김씨는 문씨에게 자주 연락을 했고, 급기야 돈을 구걸하기에 이르렀다. ‘타국생활에 지친 한 청년의 하소연이겠거니’ 생각했던 문씨에게 이 같은 요구는 ‘부담’과 ‘막연한 공포’로 다가왔다.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다가, 책잡힌 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고스란히 돈을 건넨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또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황했지만,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밀한 뒷조사로 신상 꿰고 있어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애초부터 돈을 목적으로 이씨에게 접근, 사전에 뒷조사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심지어 외삼촌까지 소위 ‘잘나가는’ 공인인 점을 악용,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의도였던 것. 게다가 얼마 후에 있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 이씨가 유력 후보인 것을 빌미로 그의 어머니를 위협하면 거액을 손 안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 하에 접근했던 것이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상업 국정원 2차장이고, 어머니인 문씨는 이화여대 음대(한국음악과) 교수이며, 외삼촌은 열린우리당 문희상 전 의장이다.
실제로 김씨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는 문씨에게 전화와 문자를 이용, ‘1억원을 주지 않으면 딸의 얼굴 사진을 포르노배우의 나체 사진과 합성해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또 이씨를 음해하는 내용의 샘플을 만든 뒤,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런 식의 내용을 인터넷에 수만장 뿌리겠다’는 등의 위협적인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딸의 나체 합성사진을 이메일 첨부파일로 보내기도 해 문씨를 아연실색케 했다.
“사진을 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게… 너무 놀랍고, 무섭고, 섬뜩하기까지 하더라고요. 게다가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합성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아 악영향을 끼칠까봐 걱정되기도 했고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알렸죠.”
문씨에 따르면, 이 사실을 안 남편은 이른바 원칙에 의한 ‘정공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자고 했다고 한다. 경찰에 알려 혹시 모를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달 만에 일본서 강제송환, 검거
결국 그들은 협박에 시달린 지 2주여 만에 김씨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8월 3일)가 있기 약 1주일 전이다. 경찰은 두 달여 후인 지난 6일 김씨를 일본에서 강제 송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체포했다.
경찰 수사결과 김씨는 무려 전과5범으로, 이미 사기혐의로 수배돼 해외도피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애초 문씨에게 소개했던 ‘일본 유학생’이라는 그럴듯한 신분은 모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가 소지한 USB에는 이씨의 사진 39장과 이 사진과 합성할 포르노배우 나체 사진 6장이 저장돼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현재 이씨는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서울대 국악과)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또 인터넷을 비롯, 세인들 사이에서 도는 풍문에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씩씩하고 담대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씨는 “하늬는 ‘실제로 사진이 유포되지도 않았는데 김씨가 쇠고랑을 차게 돼 불쌍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딸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밝은 모습이라 정말 다행이다. 해프닝으로 끝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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