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행세한 30대 재소자 사망 미스터리

최근 한 30대 선원이 ‘타인 행세’를 하며 교도소에서 노역형을 치르다 지병으로 숨진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남 목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성모(38)씨가 그 장본인. 그는 당초 벌금을 물지 않아 지명수배를 받아오다 해경 불심검문에 걸려들자, 수배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선배인 이모(48)씨의 인적사항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성씨보다 더 많은 액수의 벌금형이 내려져 수배 중이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씨는 계속 이씨 행세를 하다 장기간의 고된 노역에 결국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신원을 속인 이유를 둘러싸고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또, 성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이씨 행세를 하는 동안 관련기관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지명수배 중 해경 불심검문에 걸리자 선배 신분으로 속여
주민번호·주소·본적 등 인적사항 훤히 꿰고 ‘완벽 위장’
경찰, 검찰, 교도소 신원확인 안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


성씨가 싸늘한 주검이 된 것은 지난 8일. 목포교도소에서 노역형을 받다 갑자기 쓰러져 급히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진 것. 교도소 관계자는 “노역 19일째인 지난 7일 2시께, 성씨의 지병인 간질환이 갑자기 발병해 급히 인근병원으로 옮겼으나 이튿날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성씨의 발병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성씨가 명의를 도용한 이씨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며 “현재 이씨는 멀쩡히 살아있으며, 성씨가 이제껏 ‘이씨’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렇다면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간단한 질문은 식은죽 먹기
지난 12일 검찰과 목포교도소 등에 따르면, 성씨는 당초 사기혐의로 법원에서 7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납부하지 않아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터였다. 그러던 성씨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달 18일, 선원으로 취업하러 가면서다.

전남 신안군 지도읍 송도선착장에서 해경의 불심검문에 ‘딱’ 걸려든 것. 성씨는 자신의 수배사실을 숨기기 위해 평소 외우고 있던 이씨의 주민번호 등을 대며 이씨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성씨는 이씨의 주민번호, 주소, 본적 등을 완벽히 꿰고 있던 터라 경찰의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성씨가 이씨의 인적사항을 꿰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이씨는 성씨가 전에 일했던 배의 소유주였다”고 전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믿거니’ 하고 둘러댔던 이씨의 전력은 그러나 ‘한수 위’였다. 성씨보다 더 많은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미납해 수배 중이었던 것. 해경은 “성씨는 70만원의 벌금을 내지 않아 수배 중이었지만, 이씨는 무려 3배나 되는 2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져 수배 중인 터였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성씨를 검거한 해경은 그를 목포지청에 인계했다. 벌금 200만원을 납부할 능력이 없던 성씨는 목포교도소에 수감돼 40일 간의 노역을 하기에 이른다. 현행 형법(제70조 등)은 ‘벌금 또는 과료를 선고할 때에는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유치기간을 정하여 동시에 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하루 노역할 때마다 5만원의 벌금을 공제한다. 만약 성씨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면 14일만 노역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부당한 추가 노역… 끝까지 함구
성씨의 신원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왜 나중에라도 자신의 ‘진짜’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까. 또, 성씨는 어떻게 목포해양경찰서에 검거된 뒤 광주지검 목포지청을 거쳐 목포교도소에 수감될 때까지 3번의 신원확인에서 통과할 수 있었을까. 성씨가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재 검찰은 세 가지로 추려 추정하고 있다.

먼저,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는 시각이다. 뒤늦게 성씨가 실제 신분을 밝힐 경우, 별도 처벌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씨가 이씨 신분으로 선원 취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씨는 배의 선주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원을 꿈꾸는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검찰은 성씨가 사전에 자신의 몸이 악화되고 있음을 인지,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넘어가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전남의 한 병원에서는 성씨에게 한 달여 전에 ‘3~6개월 정도 내다보라’며 간암선고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확인절차 허점 드러내
성씨가 타인행세를 하는 동안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데 대해 관련기관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경찰, 검찰, 교도소 측에 따르면, 성씨는 그가 일하던 J호에 애초부터 ‘이 아무개’란 이름으로 선원 등록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J호 선장 및 동료선원들은 모두 그를 이씨로 알고 있었다고.

해경관계자는 “검문에 걸려들었을 당시 성씨는 이씨의 주민번호, 주소 등 인적사항을 조금의 망설임 없이 술술 말했다”며 “뿐만 아니라 경찰이 유치 예상기간 등을 고지해도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그가 이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분증이 없으면 지문확인 작업을 하는 게 원칙임에도 불구, 이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은 “지문확인 절차를 거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이행 불가능하다”며 “휴대용 신원조회기로 확인하고, 그가 일한다는 J호 측에 연락해 선주에게 재차 확인까지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문확인 작업은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 대조, 통보하는 데 2~3주가 소요되며, 휴대용 신원조회기는 주민번호, 성명의 일치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

검찰관계자는 “경찰이 성씨를 인계할 때 ‘이씨’라고 했고, 성씨가 이씨의 본적까지 제대로 대는 바람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누명을 대신 써, 노역을 더 오래 치르는 이런 경우는 흔치않은 사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성씨가 입소 당시부터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고 있어 검찰의 노역집행지휘서에 적힌 인적사항에 따라 수감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성씨의 유족들과 이씨의 가족들은 관련기관의 엉성한 법집행과 허술한 신원확인에 대해 어이없고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성씨의 유족은 성씨가 지병으로 죽은 데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고된 노역을 하다 갑자기 사망한 데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 성씨는 왜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을까. 해답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