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4·30재보선 이후 정계개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4·30 재보선 참패로 위기에 빠진 여권은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거론하는 등 돌파구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재보선 완승으로 정국주도권을 장악한 한나라당은 ‘호남 끌어안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호남 맹주자리를 사수한 민주당은 ‘홀로서기’를 재천명하며 재건의지를 불태우고 있고, 충청권에서 의석을 확보한 중부권 신당세력도 창당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 여소야대’로 재편된 정국지형과 맞물려 정치권이 이합집산을 물밑 시도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이러한 움직임은 가깝게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나아가 2007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어 향후 정계개편을 촉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盧-DJ연대론

열린우리당은 아직도 4·30 재보선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재보선에서 국회의원 6곳은 물론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등 23곳에서 단 한 곳도 건지지 못했다. 이는 문희상 의장 등 지도부가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거론하며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는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전통적으로 호남세가 강했던 경기 성남·중원에서 민주당 출신 후보와 열린우리당 후보가 난립하면서 한나라당에 어부지리로 1석을 안겨줬다는 현실은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부추기고 있다. 또 당 지도부를 비롯한 호남권 의원들이 총출동해 지원한 목포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에 패함으로써 호남 맹주는 여전히 민주당임을 실감해야 했다.문 의장이 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들고 나온 배경에는 열린우리당의 위기감과 향후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계개편 플랜이 자리잡고 있다.

또 양 당의 합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연대카드라는 점에서 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문 의장을 중심으로 한 합당추진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 ‘노무현-DJ 연대론’이 성사될 경우 침체된 당 분위기는 일거에 회복시킬 수 있고, 영호남 통합을 명분으로 전국정당화도 꾀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란 게 합당론자들의 논리다.하지만 합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 내부에도 합당 반대론자들이 적지 않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민주당이 합당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DJ 연대론’과 맞물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간의 합당론은 그 가능성만 열려 있을 뿐 실현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2의 DJP연대론

‘제2의 DJP연대론’은 민주당과 중부권 신당세력간의 지역연합이 골자. 97년 대선 당시 DJ와 JP(김종필 자민련 전총재)가 호남과 충청 연대를 통해 공동정권을 창출했던 사례가 기본모델이다.재보선 이후 민주당 한화갑 대표측과 신당 핵심인사인 심대평 충남지사측은 이러한 연대론에 교감하고 있다. 한 대표는 “국민을 위해 생각이 같으면 정책연합을 할 수 있다”며 연대론에 불을 지폈고, 심 지사 또한 “지역대표성을 갖는 정치세력과 힘을 모아 지역감정의 뿌리를 털고 간다면 더 바람직한 것은 없다”며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충남 연기·공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진석 의원도 “중부권 신당은 민주당 등 어떤 정파나 지역과도 연대가 가능하다”며 연대론을 지지하고 있다. 충청 민심을 확인한 자민련도 신당과의 연대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만큼 민주당과 신당이 연대할 경우 그 파괴력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 무소속 일부 의원들이 신당연대에 참여하면 원내 의석수만 14석~16석을 확보할 수 있다. 단번에 제3 정당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야를 넘나들며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나아가 차기 대권구도에서는 독자적인 후보를 낼 수도 있고 당선가능성이 높은 여야 대권주자와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DJ와 JP이후 쇄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민주당과 신당세력이 ‘제2의 DJP연대’를 암중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치적 계산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민 연대론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연대론은 올초부터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른바 ‘박근혜-한화갑 전략적 연대론’. 과거사 문제와 당내 대권경쟁자들로부터 집요한 압박을 받고 있던 박 대표와 당 재건을 위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한 대표가 전략적 연대를 통해 상호 정치적 지분을 챙긴다는 게 한·민 연대론의 골자다.정치권 일각에서는 4년중임제 및 정·부통령제로 개헌될 경우 ‘대통령-박근혜, 부통령-한화갑’ 카드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시에는 ‘대통령-한화갑, 총리-박근혜’ 카드로 두 사람이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섣부른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대표가 ‘호남 끌어안기’ 전략으로 서진정책을 본격화한 것이나 한 대표가 여권의 끊임없는 구애 손길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부추기고 있다.박 대표와 함께 당내 대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는 물론 소장파 의원들도 호남 끌어안기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이 시장은 이달 중순에서 다음달 초 사이에 전남대와 목포대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고 특강을 검토하고 있고, 지난 4일 광주와 전남 강진을 방문해 전남도와 문화교류협력합의서를 채택한 손 지사는 오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당내 개혁·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은 23일 전북 전주에서 지역 예산문제를 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당 지역화합특위 소속 의원들도 다음달 초 광주시청과 전남·북 도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처럼 박 대표를 비롯한 당내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서진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고는 차기 대권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했다. 한·민 연대론은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론과 민주당의 재건의지가 맞물린 전략적 선택인 셈. 하지만 혈액형이 전혀 다른 두 당이 결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민·신당 정책연대

한·민·신당 결합은 여권을 고립시키는 야권 연대전략이다. 정국주도권 회복을 위해 여권이 군소정당 고사 작전, 무소속 영입 등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야권이 연대를 통해 여권을 견제하면서 각자 실리를 챙기겠다는 계산이다.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열린우리당과 정국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나 신당세력과의 정책연대가 절실하다. 또 민주당과 신당세력도 확실한 지역맹주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야권의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한·민·신 정책연대론이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야권 연대는 말 그대로 사안별 정책연대에 그칠 뿐 정치지형을 변화시킬 정당연합 내지는 야권 통합론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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