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별동부대’ 문화재 특별조사팀이 뛴다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불교역사기념관 지하 2층. 어두운 조명에 의지해 복도를 따라 내려간 그곳에선 총무원 파견 직원과 민간 조사요원들이 분석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난 8월 31일 취재진이 찾은 이곳은 조계종 산하 문화재 특별조사팀(F&A팀)이 활동해온 일종의 ‘베이스캠프’다.
우리 사회가 ‘패배주의’에 빠져 고유 문화재 환수 및 복원운동에 미온적으로 일관해 왔지만, F&A팀은 ‘고정관념’의 벽을 헐어내면서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 반환 북한 불교계 협력
그동안 이들은 일본 등 외국을 상대로 약탈 문화재 환수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국내외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는 문화재를 본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이른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일환이다.
지난 7월 일본 도쿄대를 상대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반환받을 수 있었던 것도 ‘F&A팀’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F&A팀을 이끌고 있는 혜문 스님(봉선사)은 “우리 문화재를 되찾고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일은 성패가 불투명한 작업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그동안 무관심했던 우리 사회가 실록 반환을 계기로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F&A팀은 지난 2004년 12월 경기도 남양주 소재 봉선사에서 첫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조계종 교종 본찰인 봉선사(주지 철안)는 말사와 관련된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많았고, 혜문 스님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시작된 F&A팀의 활동은 2005년에 굵직한 사회 이슈를 만들어냈다.
F&A팀은 지난해 ▲회암사지 출토 매장 문화재 소유권 확인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청구 소송 ▲일본 도쿄대로부터 조산왕조실록 반환에 성공 ▲친일파 땅찾기 저지를 위한 내원암 사건 등을 전담하면서 국보급 불교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F&A팀이 현재 사용 중인 임시 거처는 활동영역이 전방위로 확대된 조사팀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총무원의 배려로 마련됐다. 또한, 총무원은 국가적 사안을 다루는 조사팀에 전문 인력을 지원했다.
현재 F&A팀 조사실에는 조사요원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상주해 있다. 조사팀장을 맡고 있는 안영삼씨를 비롯 박주현, 임지홍, 박송이, 정인혜(사진 앞줄 가운데)씨 등이 조사팀 총책임자인 혜문 스님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국가기록원 자료검색을 담당하고 있는 임지홍씨는 “조선왕조실록을 강탈했던 당시 일본 책임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면서 F&A팀 활동에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밖에도 사안별로 외곽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10여명 안팎의 ‘숨은 조력자’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사안에 따라 각각의 위원회를 발족하는 동시에 국회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총무원과 업무적 차원의 협의는 하지만 ‘독립적인’ 별도 기구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F&A팀의 향후 사업은 과거에 비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재벌과 외국을 상대로 벌였던 소송을 바탕으로 올해는 활동영역을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올해는 문화재 반환운동의 일환으로 북한 불교계와 공동사업도 추진한다. 특별조사팀은 일본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북한 화장사 문화재의 반환운동을 북한 조선불교도연맹과 공동으로 전개하기 위해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1일부터 3일까지 금강산 신계사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 불교도 합동 법회에 참석하는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관련 서류를 조선불교도연맹에 전달했다.
올해 중점 처리 사안으론 ▲일본 궁내청 서릉부 왕실도서관에 보관 중인 조선왕실 의궤 오대산 사고본 44종 86책 반환 ▲도쿄대 소장 낙랑군 출토 유물 현황 파악 및 반환운동 계획 ▲봉인사 사리탑, 안동 하회탈 반환 문제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국보인 안동 하회탈의 경우, 하회병산동민들이 소유자로 돼 있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혜문 스님은 “삼성이 국보의 16%를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이처럼 문화재가 일부 재력가와 권력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보다는 제자리로 돌려보내 현지에서 보존하면서 공개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조사팀이 활동하면서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 인력 등의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 1년 9개월 동안 국내외를 오가면서 느낀 사회의 ‘무관심’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토로했다.
혜문 스님은 “경제적 여건 등 제반사항에서 파생되는 어려움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도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성과주의와 패배주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할 당시 ‘불가능한 얘기’라며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이들이 많았다”며 “또 성과를 내는데 급급해 운동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에는 인색했던 게 우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실록 반환 과정에서 후발주자로 뛰어든 일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공적을 발표하기에 급급했다.


안성기씨 홍보대사 위촉 추진
특별조사팀은 앞으로 외국에 소장돼 있는 보다 많은 우리 문화재를 반환하기 위해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보태진다면 미국, 중국, 프랑스 등지에 흩어져 있는 더 많은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국내에 불법적으로 반입된 외국 문화재를 돌려주는 운동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계종 산하 문화재 특별조사팀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사회 일각에선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일환으로 시민단체 결성 움직임이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또, 조사팀은 조만간 영화배우 안성기씨를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 홍보대사로 위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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