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으로 지난해 10월 직위 해임된 김모(60) 전영동부군수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군청 산하 국악단원들을 성희롱해 물의를 빚었던 그가 해임되면서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렸으나 최근 다시 복직,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는 것.

지난달 19일 ‘충청북도지방소청심사위원회(이하 소청심사위)’에 따르면 “김 전부군수는 40여 년간 대과없이 공직생활을 한데다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뒤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 문제가 제기됐다”며 “징계 수위를 ‘해임’에서 ‘정직 2개월’로 낮췄다”고 밝혔다.

김 전부군수의 공직 복귀에 대해 ‘영동부군수성추행사건해결을위한충북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해임결정취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민간위원들이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며 소청심사위원들의 태도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김 전부군수의 복직을 코앞에 두고 공대위와 소청심사위 간의 갈등이 또 한번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이번 사건의 실제 피해자인 A(35)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겪었던 일은 제게 치명적 아픔입니다.” 사건 이후 수치심과 모멸감에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A씨. 그는 “정신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인터뷰 도중 A씨는 당시 김 전부군수와 있었던 일을 드러내는 것이 ‘여자로서’ 창피하고 힘든 일이었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공연 뒤풀이에서 ‘추태’

A씨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3년 11월 일본 야마나시현. 해외연주를 마친 20여명의 국악 단원들과 관계자들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일본 가라오케에서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초반이 지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김 전부군수는 A씨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며 마시게 했다고 한다. A씨는 “처음엔 억지로 마시는 척 하다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기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또 춤을 강제로 추게 하고 귀에 입을 맞추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그는 전했다. 김 전부군수의 이 같은 ‘파렴치한’ 행동은 단순히 우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라는 게 A씨의 말이기도 하다. A씨는 “실제로 그는 나뿐만이 아닌 다른 몇몇 여 단원들에게도 성추행을 했다”면서 “술을 같이 마시자며 어깨를 끌어당기는가 하면, 간접적으로 머리에 입을 맞추는 흉내를 내는 등 아주 가관이었다”고 비난했다. 김 전부군수의 전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4월에는 청남대 개관기념 난계국악단 초청연주회 후 회식자리에서 카메라폰 기념촬영 중 한 여 단원의 볼에 뽀뽀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영향력 커

사실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2005년) 전에는 영동에서 김 전부군수는 ‘행정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또 ‘충북 지사의 오른팔’로서 실질적인 행정을 감당하면서 공무원들과 지역사회에 군수 못지않은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A씨와 여성단체 등이 고위공직자인 김 전부군수를 상대로 성추행 혐의 진위를 밝히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을 터. 심지어 한 지역사회단체 대표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1년 후에야 문제를 제기한 이유에 대해 A씨는 “비정규직 여성의 처지에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며 “성추행을 당한 단원들끼리 술을 먹으며 푸념하고 위로하는 수준에 그쳐야했던 게 현실이었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이 사건을 두고 1년 넘게 투쟁, 얻어낸 결과가 김 전부군수의 직위해임이었으나 결국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결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굳건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A씨는 김 전부군수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공무원 관계자에게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등 반성의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피해자와 공대위 등 실제 사과를 받아야 할 장본인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었다는 것. 또 영동군청 여공무원들을 대하는 태도와 국악단 단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랐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에 따르면 김 전부군수는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공직생활을 하며 그 어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술 2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고. 그런 그가 국악공연 여 단원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부어라 마셔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통상 일하는 여 종업원도 함께 동석하기 때문에 여 단원들은 그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에 수치심과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A씨는 토로했다. 당시 김 전부군수와 근무했던 영동군청 한 여공무원과 전화통화를 시도한 결과 “그는 우리와 술자리를 거의 같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행도 조심스러웠다”고 밝혀, A씨의 증언에 힘을 싣기도 했다.

제 식구 감싸기 ‘눈살’

A씨는 김 전부군수를 상대로 지난해 3월 진정서를 제출했고, 9월 김 전부군수의 혐의는 성희롱으로 판정됐으며,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에 직위해제 됐다. 이에 김 전부군수는 결백을 주장하며 피해자들을 역고소, 그들의 월급 50%를 가압류시키는가 하면 소청제기를 통해 지난 3월 ‘해임’에서 ‘정직2개월’로 감경 조치됐다.

이에 따라 도 총무과 대기발령을 받은 김 전부군수는 보직이 없는 상태에서 조만간 서기관급 직무를 수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최초로 고위공직자가 성추행으로 중징계 의결을 받았던 이번 사건은 세간의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소청과정에서 결국 하향 조정됨으로써 역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소청심사위의 한 관계자는 발끈하면서 “소청심사위원 7명 중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루어진 정당한 결과에 토를 다는 것은 억측”이라며 “김 전부군수는 40여 년간 아무런 전과가 없고, 사건 발생 1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서 이제와 문제를 삼고 그를 파면시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여겨져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김 전부군수의 공직 복귀에 대해 공대위 문재오 국장은 “소청심사위원회의 위원구성과 태도에 문제가 많다”며 “여성의 참여가 배제됐을 뿐 아니라 민간위원들이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도를 상대로 소청심사위 재의를 요구했으나 그런 사례가 없다고 거부당했다”며 “감사원 감사를 통해 김 전부군수의 복직을 저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김 모 전영동부군수 인터뷰“그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겠다”

- 해임에서 정직 2개월로 감경 조치, 다시 복귀한 기분이 어떤가.
▲ 그저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데 죄송할 따름이다.

- 공직복귀를 규탄, 시위하는 단체들이 많다. 이에 대한 생각은.
▲ 소청심사위의 결정을 존중한다. 더 이상 그들의 시위 하나 하나에 신경 쓰지 않는다.

- 앞으로 어떻게 공직생활을 할 생각인가.
▲ ‘성희롱 판정’만으로 나는 어차피 공직자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바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공직생활 퇴임 때까지 조용히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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