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도우미 시대다. ‘이색 직업’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신종 아르바이트인 ‘역할 대행 도우미’가 최근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믿기 힘든 현실이지만 요즘은 개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안성맞춤’ 도우미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하객, 문상객에 이어 애인, 남편, 아내, 심지어 부모까지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해 거래, 합의하에 만남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도우미를 단순 역할 대행자가 아닌 성매매 등 불법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적잖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단순의뢰자와 성매매업자가 얽히고설킨 ‘역할 대행 도우미’의 실태를 취재했다.




오전 6시에 하루를 시작한 모 광고회사 임원 A(34)씨. 맞벌이 부부인 A씨는 두살배기 아들에게 이번 달부터 ‘부모도우미’를 붙여 생활하게 하고 있다. 부모도우미는 아이들의 성격, 생활습관 등을 분석해 그에 맞는 체계적이고 올바른 자녀교육에 힘쓰는 역할을 한다. 오전에는 ‘다이어트도우미’와 상담이 예약돼 있다. 다이어트도우미가 짜주는 식단과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 행동수정요법을 따라 한 덕분에 한 달에 3kg 감량에 성공했다. 앞집에 사는 3년차 기러기아빠에게는 월드컵 내기에서 진 빚으로 ‘아내도우미’를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 아내도우미는 혼자 사는 남성에게 음식, 청소 등을 해주는가 하면 말동무도 돼주고 부부간의 고민상담 등을 해준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전히 솔로인 조카에게는 ‘애인도우미’를 소개시켜 줄 계획이다. 애인도우미는 본인의 이상형에 맞는 여성을 선택해 만남을 갖고 어떤 모임 등 남에게 보이려는 의도로 많이 찾지만, ‘숙맥’인 이들에게는 나름의 이성에 대한 조언 등을 아끼지 않아 이성에 대해 알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A씨는 보다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주고 상담해주는 ‘라이프도우미’도 받아볼까 고민 중이다. ‘인간개조’를 목표로 인생 전반에 대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일은 ‘하객도우미’, ‘문상객도우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정 상황 역할 대행

본지가 실제 여러 사이트를 통해 각 도우미들에게 의뢰해 정리, 가상으로 꾸며본 한 여성의 일상이다. 믿기 힘든 현실이지만 최근 ‘역할 대행 도우미’가 상상을 초월한 영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작은 일까지도 ‘도우미’에게 의뢰해 해결하는 경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역할 대행 도우미’란 특정상황에서 필요한 역할을 대행해주는 이들을 일컫는다.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 등을 통해 개인 신상 및 의뢰 요구 정보를 상세히 적어 게시글을 올리면 쌍방 합의하에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은 역할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시간당 2~4만원 정도의 금액을 받는다. 특정 상황에 직면할 경우, 어느 정도의 ‘연기력’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별도의 ‘덤’이 붙는다.

역할 대행 도우미의 특징은 개인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들에게는 그때 그때의 만남일 뿐이고, 의뢰인 모두가 동일하고 소중하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나 선배들이 주위에 있는데도 불구, 비용을 지불하며 고민을 상담하고 역할 대행을 해주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전문적인 누군가가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해 준다면 돈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10대들 ‘부모도우미’ 찾아

실제로 ‘부모도우미’는 ‘10대’와 맞벌이로 고민하는 ‘30대’들에게 최근 인기다. 10대들이 왜 부모도우미를 필요로 하는지 의아하겠지만, 실제로 30대보다 10대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것이 역할 대행 사이트들의 한결같은 통계이다. 학교에서 사고를 쳐 부모가 불려가야 한다거나 상담 등을 할 경우, 이들은 진짜 부모가 아닌 부모도우미에게 ‘SOS’를 친다는 것이다.

취업문제로 헤매고 있는 ‘20대’에겐 ‘이미지도우미’, ‘다이어트도우미’ 등의 컨설턴트 비슷한 성격의 도우미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성 앞에만 서면 숙맥이 되는 청춘남녀를 위해 이성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애인도우미’도 등장했다. 이는 현재 인기 방영중인 KBS 주말연속극 <소문난 칠공주>에서 ‘미칠’ 역할의 최정원씨가 그런 경우이다.

요즘 가장 많은 의뢰가 들어오는 것이 바로 애인도우미이기도 하다. ‘30대’와 ‘40대’를 위한 ‘남편·아내 도우미’도 요즘 인기상승세를 타고 있다. 내연의 관계를 떠나 가정,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부부간의 고민상담 등 편한 만남을 갖기 때문에 적지 않은 이들이 찾는다. ‘인생 2막’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앞이 캄캄한 ‘50대 이후’는 ‘창업도우미’를 통해 효율적인 창업전략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라이프도우미’는 어떻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것인지 조언해 주는 등 인생 전반을 관리해준다.

이밖에 연인에게 직접 전하기 어려운 내용을 대신 전해주는 ‘이별대행도우미’,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 모셔다(?)주는 ‘드라이브대행도우미’, 효율적인 소비방법을 알려주는 ‘소비생활도우미’, ‘하객도우미’, ‘문상객도우미’ 등이 있다. 이처럼 ‘역할 대행 도우미’가 다양해지고 있는 이유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역할 대행을 해주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국내 ‘역할 대행 사이트’ 역사는 2년 안팎 정도로 길지 않지만 TV, 인터넷,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게 요즘 세태다.

사이트 역사 벌써 2년째

그러나 “역할 대행 사이트 자체가 단순한 역할 대행을 넘어 은밀한 성매매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또 다른 상업주의의 일환”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또 “돈벌이에 급급한 이들이 막무가내로 게시글을 올려 단순 역할 대행 의뢰자들을 현혹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ㅇ 역할 대행 사이트 애인도우미 정보란에 자신의 상세정보뿐 아니라 사진까지 공개했다는 L씨는 “하루에 9~10건의 메일을 받는다”며 “이 중 5개 이상은 단순한 데이트 이상의 깊은 만남을 요구하는 메일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가사생활에 지쳐 호기심에 사이트에 가입, 아내도우미 정보란에 게시글을 올렸다는 30대 주부 K씨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남편과의 성관계에 권태기가 느껴지면 연락 달라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면서 “스와핑을 제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세 번의 만남에 10만원을 받는다는 역할 대행 도우미 H씨는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어도 눈 딱 감고 몇 번 만나주면 그만”이라며 “일반 아르바이트에 비해 수입이 짭짤해 손을 못 떼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ㅇ사이트 관계자는 “불순한 목적으로 도우미를 찾는 것과 특정 상황의 대처를 위해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도우미를 활용하는 것은 다르다”며 “우리 사이트 같은 경우 철저히 불법적인 만남을 방지하고 있어 성매매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역할 대행 도우미’는 내게 딱 맞는 ‘안성맞춤’ 삶에 대한 욕구 때문에 영역을 불문하고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도우미 열풍’은 ‘내가 필요로 서비스’를 갈망하는 고객들의 욕구에 따라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특정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해줄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성(性)과 돈에 눈먼’ 사람들이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금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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