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검찰을 옥죄는가. 검찰권을 최소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법제도개혁위원회(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을 시발로 불거진 검찰과 집권세력의 충돌이 ‘검란’사태로 치달을 조짐이다. 청와대·사개추위·열린우리당·법원·경찰의 5대 세력과 검찰의 힘겨루기가 표면화되면서 검찰의 숨통을 죄는 핵심 인물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검찰권 축소화작업의 중심에는 노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검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불신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21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검찰의 환골탈태를 강도높게 주문했다. 노 대통령의 검찰공세 의지는 그동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돼 왔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사개추위가 검찰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형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공수처 신설 법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법원과 경찰도 자신들의 숙원과제와 맞물린 현안과 관련해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여권과 관계 기관이 검찰 권한이양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청와대에서는 김선수 사법개혁 비서관과 김진국 법무비서관이 노 대통령의 의지를 받들어 검찰개혁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사개추위 사무처에 해당하는 기획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김선수 비서관은 검찰개혁과 관련한 실무안 및 의제선정 등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로 꼽히고 있다. 27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하고도 노동전문 변호사 길을 선택한 김 비서관은 진보적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여민합동’에서 주로 노동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노 대통령, 문재인 민정수석 등과 친분을 쌓아왔다. 청와대와 함께 검찰권 축소화 작업을 이끌고 있는 곳은 사개추위다.

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소법 개정안의 골자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한 증거 능력 부인 △검사의 법정내 피고인 신문권 폐지 등이다. 이는 검사의 수사권을 부인하는 것으로 검찰권을 무력화시키는 법안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검찰이 ‘정치적 음모’라고 저항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개추위는 사법개혁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발족된 대통령직속 자문기구다. 이해찬 총리와 한승헌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이고,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이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는 실세 총리이고, 한 변호사는 개혁성향이 강한 원로법조인으로 지난 대통령탄핵심판사건 당시에는 노 대통령 변호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에 박재승 변호사, 송상현 한국법학교수회장, 김금수 노사정위원회위원장, 채이식 고려대 법대학장, 김효신 경북대 법대교수,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등 사회 각계각층의 개혁성향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사법개혁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위원회에도 개혁성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해찬 총리 측근인 조영택 국무조정실장이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고, 신동운 서울대 법대교수, 박상기 연세대 법대교수, 진봉헌 전주지방변호사회장, 정미화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등 오래전부터 사법개혁을 추진해 온 인사들이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노 대통령의 사법개혁 의지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인사들이 사개추위와 실무위원회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측이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개추위 구성원 면면과 무관치 않다.

열린우리당도 검찰 공격에 가세하고 있다. 우리당은 소장파 법사위원들을 중심으로 개혁법안 처리에 주력하고 있다. 법사위 간사인 최재천 의원을 비롯해 민변 창립멤버인 천정재 의원, 민변 부회장 출신인 이원영 의원, 대법원 사법개혁위원인 이은영 의원, 인천변협인권위원장을 역임한 최용규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소장파 법사위원들은 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심의에 본격 착수했다. 우리당은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법안 처리를 목표로 공수처의 소속과 규모, 명칭, 수사대상 등에 대해 유연성을 갖고 대야협상에 나서고 있다. 문희상 의장과 정세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도 법사위에서 공수처 법안이 처리될 경우 본회의 통과를 적극 지원한다는 전략이다.하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 직속인 부방위 산하에 수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정부조직 원리 및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다며 상설 특검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따라서 4월 임시국회 막판까지 공수처 설치 법안을 둘러싼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경찰청은 오랜 숙원과제인 ‘수사권 독립’에 올인하고 있다. 허준영 경찰청장을 필두로 2003년 4월 발족된 경찰혁신위원회(위원장 한완상 대한적십자사총재)와 경찰 혁신기획단(단장 송강호)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이 두 기구에서는 수사권 조정문제 등 검·경간에 마찰을 빚고 있는 민감한 사안과 관련한 이론과 명분, 대응논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경찰청은 경찰대 출신들이 고위간부로 진출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수사권 독립과 관련한 논리개발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법원도 그동안 검찰과 마찰을 빚어온 공판중심주의를 관철시키겠다는 각오다. 특히 법원은 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소법 개정안이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새로운 형사사법 시스템’ 방향과 그 맥을 같이한다며 사개추위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법원은 산하에 사법개혁위원회(이하 사개위)를 두고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개혁을 추진해 왔다.지난 2003년 10월 발족된 사개위는 민변 초대 대표간사를 역임한 조준희 변호사와 이공현 법원행정처 차장을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곽배희, 김갑배, 김선수, 문영호, 박동영, 박삼구, 박상기, 박상길, 박원순, 박주범, 박홍우, 서범석, 서상홍, 신동운, 유원규, 이은영, 이인재, 이혁주, 임종훈(가나다순) 등 사법제도에 관한 식견이 풍부하고 덕망이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 19명이 사개위 위원으로 활동했다.사개추위와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공판중심주의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법정에서 가려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의 재판은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바탕으로 한 ‘조서재판’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공판중심주의가 채택되면 검찰의 수사권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청와대, 사개추위, 우리당, 법원, 경찰 등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 있는 검찰은 이같은 상황들이 정치적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갖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장기집권 플랜 일환으로 ‘검찰 길들이기’를 본격 가동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이에 따라 조직의 특성상 단체행동을 극도로 삼가는 검찰이지만 평검사들의 반발 글들이 내부통신망에 잇따라 올라오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칫하면 ‘공판 변호사’로 전락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에따라 검찰 주변에서는 정치적 음모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될 개연성이 있는 ‘오일게이트’를 철저히 수사해 청와대와 여권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권이 ‘오일게이트’와 관련해 ‘특검’ 추진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검찰력을 집중해 이 사건과 관련한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높이는 동시에 권한 축소를 주장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각 기관들의 논리에 대응할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따라서 ‘오일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 추이 및 그 결과물은 향후 검찰권 축소 논란 방향을 좌우할 또다른 핵뇌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3차 검란(檢亂) 뇌관 터지나

참여정부 출범이후 노 대통령과 검찰은 이미 두 차례 마찰을 빚은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판사 출신인 강금실(사시 23회) 변호사를 초대 법무장관으로 발탁한 깜짝 인사. 노 대통령은 당시 강 장관을 앞세워 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인사관행을 파타하고 ‘개혁과 서열파괴’ 인사를 단행했다. 2003년 3월9일 실시된 ‘노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는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과 서열파괴 인사 의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는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졌고, 검찰 수뇌부를 비롯한 중간 간부, 평검사들이 각각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 검찰 파동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감지됐다. 하지만 검찰의 분위기를 감지한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이 사시 13회인 송광수 대구고검장을 후임 총장에 발탁, 물갈이 폭을 최소화하면서 우려했던 1차 검찰 파동은 봉합됐다.

두 번째 마찰은 지난해 6월 공수처 신설 및 대검 중수부 기능 축소 또는 폐지 문제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송 총장간의 갈등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공수처를 부패방지위원회에 설치하라고 지시했고, 부방위는 대통령 친인척, 전·현직 총리, 의원, 판·검사 등 주요 공직자 거의 대부분에 대해 수사권을 행사하고 국회에 특검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는 검찰의 핵심기관인 대검 중수부의 기능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도 중수부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검찰은 동요하기 시작했다.송 총장은 지난해 6월14일 “중수부 폐지 주장은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며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나의 목을 치겠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도 물러나지 않았다. 송 총장 발언 직후(6월15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은 없으나 할 일을 하는 대통령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송 총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질타는 당시 송 총장 사퇴 압박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청와대가 “대통령의 발언은 송 총장 발언의 부적절성을 지적한 것이지 사표를 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고 입장을 정리하면서 2차 검찰 파동으로 비화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번 검찰 동요는 심상치 않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어온 검찰압박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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