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를 떠나는 여심(女心)

- 여성회원에 대한 비하 논란현대카드 해지 운동 촉발
- 혜택보다 이미지로 승부결국 오너 구설수에 흔들리나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현대카드(사장 정태영)가 사장이 직접 쓴 트위터 몇 줄로 인해 지금까지 힘겹게 쌓아왔던 이미지를 모두 무너뜨릴 위기에 처했다.

파워 트위터리안인 정태영 사장이 현대카드의 보도자료를 언급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 비하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을 올렸고, 이것이 인터넷 상에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급기야는 현대카드 해지 운동으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특히 정 사장을 향해 한 기업의 CEO로서 갖춰야 할 마케팅 소양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함께 정 사장의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현황을 들여다봤다.

 

   
   
 

현대카드는 자사 950만 회원들의 최근 1년여 간 카드사용실적을 집계해 소비 성향을 분석하는 현대카드 빅데이터프로젝트의 첫 번째 분야를 외식으로 선정하고 그 결과를 지난 4일 리포트로 발표했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여성의 매출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커피전문점의 경우 예상을 깨고 남성의 이용금액이 여성보다 평균 40% 이상 많았다. 다만 20대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보다 이용금액이 높게 나타났다.

정 사장의 경솔한 발언

문제는 같은 날 정태영 사장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카드사용통계를 보면 여성회원의 사용이 더 많은 장소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 여성취향의 장소도 마찬가지라며 이는 남성들의 지불이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 불쌍한 남자들. 언제까지 이러고 사실건가라는 멘션을 올린 것이다.

이에 인터넷 상에서는 정 사장의 글이 급속도로 캡처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각각의 성별로 나뉘어 남성과 여성의 고질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하면서 양성평등 논란으로 치달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 사장의 발언에 환호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네티즌들은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정 사장의 잘못된 논리를 지적하며 항의하기에 바빴다.

결국 정 사장은 다시 트위터를 통해 가벼운 농담했다가 OECD 통계까지 나오는 격론 속에 현카는 여성 민심 잃고 있습니다라며 남성분들 커피 정도는 그냥 사세요. 저도 그렇게 살았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세요. 데이트 신청은 여러분들이 하시잖아요. 난 여성편입니다라는 멘션을 올렸다.

현대카드 해지 운동으로 번져

하지만 정 사장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몇몇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현대카드 해지 운동이 벌어졌고 해지사유에는 “CEO의 마인드 때문이다라고 남기는 등 현대카드에 대한 반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결국 정 사장의 경솔함이 화를 부른 것이다.

정 사장의 트위터 캡처를 접한 네티즌들은 현카 마케팅에 돈 엄청 쏟아 붓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사장이 한순간에 무너뜨리냐”, “광고는 세상에서 제일 분석적인 척 하더니만 정작 CEO는 통계의 기본 개념도 없는 것 아니냐”, “혜택이고 나발이고 이미지 하나로 버티던 현카였는데 이제 큰일났다”, “제살 깎아먹기의 갑이다. 카드 마케팅계의 거성 현카 신화는 이렇게 사라지는가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부 현대카드 여성 이용자들의 분노는 심각했다. 심지어 사용 중인 현대카드를 자르거나 구겨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멀쩡히 혼자 벌어서 혼자 잘 먹고 사는 현카 여성회원을 한순간에 거지로 만들었다”, “여자가 돈 많이 쓰면 된장이라고 비난하고 안 쓰면 남자한테 얻어 먹는다고 비난하고”, “지금 이 순간 현대카드를 잘랐다. 고객센터에도 사장의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정식으로 해지 절차를 밟았다며 성토했다.

타사카드 여성 이용자들도 불쾌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타사카드 이용자는 애초부터 현대카드에는 여성을 위한 혜택이 별로 없어 그동안 타사카드를 이용해왔다면서 주변 여성들 역시 현대카드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타사카드 이용자 역시 여성들이 왜 현대카드를 많이 쓰지 않는지부터 분석하고 상품을 개발해야 할 회사가 얼토당토한 논리로 그나마 없는 여성회원들을 더욱 감소시키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대다수의 여성 네티즌들 역시 보통 현대차를 살 때 거의 무조건적으로 현대카드를 만들기 때문에 남성 가입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느냐”, “연말정산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남편 명의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고려한 것이냐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단순 가입자뿐 아니라 실사용자 성별 분석을 제대로 한 것이냐는 의문이다.

기업이미지 한순간에 추락

이번 논란으로 인해 현대카드는 사실상 잃은 것이 많은 상황이다.

본래 빅데이터는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값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카드 측은 자진해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분석 결과를 발표했음에도 CEO위험한 발언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원래의 의미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발한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인 마이메뉴까지 함께 구설수에 올라 반감을 산 사용자들의 휴대폰에서 삭제 대상으로 떠오른 상태다.

특히 최근 카드사들의 사용혜택 축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현대카드의 축소 방침도 정 사장의 발언과 연계돼 함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포인트 정책 역시 쌓이기는 잘 쌓이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사용처가 마땅치 않을 뿐더러 상품권으로 전환 시에는 1:1이 아닌 1.5:1이라는 점이 다시금 조명됐다. 이로 인해 현대카드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카드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아들인 정 사장은 현대와 인연을 맺으면서 현대종합상사·현대정공·현대모비스·현대기아차 등에서 처음부터 이사·부본부장 등으로 재직하다가 2003년 현대카드 사장으로 전격 취임했다. 이처럼 정 회장이 남성판 신데렐라인 탓에 자칫 여성에게 열등감을 가진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자 잘 만나서 사장까지 된 분이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냐면서 개인의 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정몽구 회장 사위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텐데라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의도 자체가 여성 비하는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면서 부담 없이 던진 한 마디가 확대해석된 듯하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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