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혼인신고를 ‘기피’하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부터 해봐야 할 듯하다. 최근 혼인신고를 기피하는 일명 ‘혼인신고 기피족’이 등장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 ‘황당한’ 사연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19일 한 20대 남성이 이혼소장을 들고 전주지방법원 가사부를 찾아왔다. 2002년부터 3년여 동안 동거하며 두 딸을 두고 있는 아내가 알고 보니 쌍둥이 아이를 출산한 ‘유부녀’였다는 게 이혼소장 내용의 골자다. 아내의 ‘만류’로 번번이 혼인신고를 미뤄왔다는 이 남성은 “아내에게 감쪽같이 속았다”며 재판부에 눈물의 하소연을 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연의 장본인은 전북 전주시에 사는 A(26)씨. 그가 지금의 아내 B(24)씨와 동거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여 전인 200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의 소개로 아내 B씨를 만나게 된 A씨는 아내를 보자마자 참한 인상에 호감을 갖게 됐다. 짧은 기간의 연애 끝에 A씨는 B씨에게 청혼을 했고 이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하지만 이들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동거부터 시작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아내의 이런저런 핑계와 만류로 ‘대사’를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다. 이렇게 ‘사실혼’ 관계로 지낸 지 2년여 후인 2004년 1월. 그러나 A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 혼인신고와 아이 출생신고를 위해 구청을 찾았다가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의 주민등록등본을 떼본 결과, 2000년 12월 경 아내가 김모씨와의 사이에서 쌍둥이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기재돼 있었던 것. 아내는 당시 18세로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낳았던 터였다.

혼인신고하려다 ‘날벼락’

불행 중 다행인 걸까. 아내와 김씨 와의 관계 역시 ‘사실혼’으로 혼인신고는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 아내는 쌍둥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 놓은 것이었다. 충격을 가다듬은 A씨는 아내가 유부녀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혼인신고를 조용히 마쳤다. 하지만 그가 당시 받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A씨는 20살의 꽃다운 나이로 자신에게 시집왔다고 생각한 아내가 ‘처녀’가 아닌 ‘유부녀’라는 사실에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충격 받은 부분은 지금껏 아내가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심한 배신감을 느낀 A씨는 아내를 추궁하여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이렇게 A씨는 아내의 ‘거짓된 실체’를 모른 척하고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시 두 살 배기였던 딸을 위해 ‘참고 살겠다’는 취지였다. 아내는 그 후로 1년 2개월 뒤인 2005년 3월에 둘째 딸을 낳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애써 억누르고 있던 A씨의 ‘침묵’은 결국 ‘삐뚤어진 행동’으로 나타났다. 아내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일절 대화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귀가 시간도 늦어지기 일쑤였던 것. 이는 곧 잦은 말다툼으로 이어졌고 결국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됐다.

평소 전혀 낌새 못채

최근 부쩍 달라진 행동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아내는 두 달 뒤인 5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청에 혼인신고 여부를 확인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남편이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자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가출했다.원망보다는 애틋함이 더 컸던 탓일까. 처음에 A씨는 갑자기 집을 나간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해 봐도 끝내 찾지 못하자 현재는 포기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아내에 대한 애틋함은 극도의 원망과 증오로 바뀌게 됐다고. 자신은 그렇다 쳐도 그들 사이에서 낳은 두 딸에 대해 무배려, 무관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아내는 왜 이 같은 사기 결혼을 한 후 잠적한 것일까. A씨를 상대로 크게 한탕 노렸던 것은 아닐까. A씨는 처음엔 아내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신용카드 등을 만들어 ‘물 쓰듯’ 무분별하게 쓴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아내가 김씨와 이중살림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A씨가 확인한 서류로 보아 아내와 김씨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는 현재 6살이 돼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가출한 아내의 어떠한 얘기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이 같은 다양한 추측은 ‘억측’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애초 아내 B씨가 어떤 사기성 의도를 갖고 A씨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B씨는 두 딸을 애지중지 키웠고, 남편 A씨에게도 지극정성으로 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네 주민들 사이에선 그런 B씨를 두고 “젊은 여자가 살림도 잘하고 참 참하다”, “요즘 젊은 세대 같지 않다”, “A씨가 여자 하나 잘 골랐다”며 칭찬이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A씨는 “아내가 가족들에게 너무 잘 대해줘 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가에 대해 함구해 ‘의구심’

하지만 A씨에 따르면 결혼생활 중 아내에게는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먼저 A씨에게 단 한번도 처가 가족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 그 흔한 전화통화도 연결시켜 주지 않았다는 게 A씨의 말이다. 또 아내는 유난히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 없다고. 심지어 아이 돌잔치 때 찍은 사진도 없다고 한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처음엔 A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3년 간 동거를 하며 아이까지 낳고 살면서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처가 식구도 모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등록등본 등 A씨가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고, 앞뒤 정황을 따져본 후 그의 말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아 두 가정의 아이들을 놓고 고민하던 B씨가 형편이 더 어려운 쌍둥이 자녀를 돌보려고 가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 이상의 B씨 의도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재판부는 “지금 단계에서는 더 이상 밝혀진 내용이 없다”며 그 어떠한 추측조차 거부했다. 이어 재판부는 A씨가 청구한 이혼청구 소송에서 “B씨가 두 아이의 출산 사실을 숨긴 채 동거를 시작한 점이 인정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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