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있었다. 청와대측이 ‘오일 게이트’(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업체 인수계획 무산 사건)와 관련한 국정상황실의 ‘보고누락 및 은폐’ 의혹을 풀기 위해 국정원을 끌어들인 데서 비롯된 갈등이다.지난 4월24일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과 박남춘 전 국정상황실장(현 인사제도비서관)은 기자실에 들러 은폐 의혹을 해명하는 가운데 국정원으로부터 지난 11월9일 접수받은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업체 인수계획 무산 위기’라는 제목의 정보보고서 원본을 공개했다.여기에는 국정원이 파악한 사건의 개요와 함께 정보보고서의 주요 배포처(정부부처 장관 등)까지 명기돼 있었다.

청와대는 당시 기자들에게 국정원 정보보고서의 사진촬영이나 복사를 못하게 했을 뿐 문건 공개에 따른 어떠한 보도협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이 소식을 전해들은 국정원 관계자들은 “지난해 11월에 보낸 정보보고서를 파기하지 않고 보관한 데다, 언론에까지 공개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청와대가 자기들의 의혹을 해명하려고 중요한 정보문건을 함부로 다룬 것”이라고 발끈했다고 한다.이는 정보기관 격언 가운데 ‘설명도 변명도 홍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지만, 요즘들어선 국정원도 적극적인 자기방어에 나서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이번 일뿐만 아니라 최근들어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중앙정보부)이 부쩍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스토리가 방송을 타면서 국정원이 ‘특수사업’이란 이름으로 대통령 사생활을 은폐하는데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또 이를 계기로 해묵은 화제거리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 가오리씨’도 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는데, 여기서도 국정원(당시 안기부)이 등장한다. YS가 가오리씨의 생모에게 모두 10차례에 걸쳐 23억원(임기 중 13억원, 퇴임 후 10억원)을 건넸을 때 그 돈의 전달자가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 등이었다는 것이다.여기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도 다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는 등 권력의 중심부로서의 정보부처에 대한 관심이 높다.

40년간 이어져온 정보보고채널

대통령과 국가 정보기관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보기관, 특히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하의 국정원은 정권의 감각기관이다.국내 정치권 동향 등에 관한 보고를 최소화한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특히 과거정권에선 대통령이 깊숙한 청와대 안에서도 민심을 파악하고 고급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국정원 덕분이었다.전국 각계 각층에 퍼져 있는 수천명의 국정원 ‘정보활동요원’(I·O. Intelligence Officer)들이 수집한 고급정보들은 매일 아침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여졌다.문서로 작성되는 이같은 ‘일일동향보고’와 ‘정책보고’는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40여년 동안 이어진 일상사다.

문민정부때까지 매주 독대해

역대 대통령들이 매일처럼 접한 정보는 국정원 정보보고 외에도 경찰 정보보고, 군 첩보부대의 정보보고 민정수석실의 자체 보고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정원 것이 양과 질에서 모두 최고였다고 한다.문민정부 때까지는 국정원장(이하 안기부장 혹은 중정부장까지 포함)이 매주 한 번 정도씩 직접 정보파일을 싸들고 청와대로 찾아가 대통령에게 고급정보를 직보하고 활동 방향에 대한 ‘지침’을 시달받아 돌아가곤 했다.그러다보니 국정원장의 권한은 막강했다. 경우에 따라선 국무총리급 이상의 정권 2인자였다. 또 역대 대통령 역시 언제나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앉혀 정권을 지키는 막후 수단으로 활용했다.역대 국정원장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특히 국정원장 뿐 아니라 기조실장도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발탁되곤 했는데, 그 이유는 국정원 기조실장이 주로 ‘통치자금’ 관리를 맡아왔기 때문이라 한다. YS 시절의 김기섭 기조실장이 대표적이다.따라서 과거에는 국정원의 활동이 국민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개별 야당 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정치공작’은 기본이었고, 갖가지 인권유린과 정권 유지를 위한 초법적 행위들이 버젓이 자행됐다.국민의정부 시절부터 그런 부조리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서는 국정원장의 정례 보고는 완전히 없어졌고,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안기부 기조실장에 진보적 학자 출신인 서동만 상지대 교수를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청와대에는 지금도 국정원 소속 ‘정보맨’이 파견돼 민정수석실 등과 긴밀한 업무협조 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국정원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챙겼다. 주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국정원을 커버한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청와대와 국정원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웠다. 국정원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청사로 초청해 식사대접과 함께 ‘견학’을 시켜주거나, 명절 때 인사를 하는 장면도 드물지 않았다.

JP의 ‘충정’은 무소불위 권력집단

우리나라에서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것은 5·16 직후인 1961년 6월이었다.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김종필씨를 앞세워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본떠 만들었다.초기 ‘JP의 중정’은 10건이 넘는 반혁명 사건 적발 뿐 아니라 부정축재자 처리, 통화개혁, 농어촌 고리채 정리까지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한다. 심지어 일본과의 수교 같은 주요 외교정책도 중정의 몫이었다. 이후 중정의 기능은 크게 두갈래였다. 즉, 국내정치공작과 대북첩보활동이었는데 이 둘은 항상 밀접하게 연결돼 정권유지에 활용되곤 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나중에 자신이 창설한 중정의 책임자(김재규)에 의해 목숨을 잃고 정권도 몰락했다. 72년 5월에는 이후락 중정부장이 평양으로 잠행, 7·4 남북공동성명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중정은 ‘구라파 거점 간첩단 17명 검거’(73년 9월), ‘울릉도 거점 간첩단 22명 검거’(74년 2월) 등 간첩잡기를 멈추지 않았다.전두환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중앙정보부의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꿨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가 중정부장이었기 때문에 정보부처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였다.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있는 ‘북풍 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8년 4월에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DJ는 국정원의 원훈을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기도 했다.노무현 대통령 들어선 국정원이 스스로 과거사 조사에 나서는 등 내부 개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정치 사찰은 사실상 사라지고, 대신 해외정보를 수집·분석하는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국정원의 ‘해외정보처’ 전환은 아직 시기상조인 듯 하다.

국민의 정부에선 활발한 개혁중

지난 2004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지 테닛 국장이 사임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정보 정확성이 문제가 돼 사임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997년 1월부터 무려 7년6개월 동안 CIA를 이끌었다. 특히 민주당 정권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지만 2001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유임되는 기록을 남겼다.조지 테닛보다 더 오랫동안 CIA 국장으로 재임한 인물도 있다. 앨런 덜레스는 1953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 의해 임명돼 8년6개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오랫동안 국가 정보책임자로 일한 사람은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다.

그는 3공 때 6년3개월간 재임하는 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를 제외하곤 21대 권영해 안기부장(3년2개월) 외에 3년을 넘긴 경우가 없다. 2대 김용순, 9대 이희성 중정부장은 2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현 고영구 국정원장 앞까지 25명의 정보책임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20개월이 안된다.특히 우리의 경우 정권이 바뀌면 예외없이 집권자와 ‘정치적 코드’가 맞는 인물이 정보부를 장악했다. 반면, CIA의 조지 테닛이 민주당과 공화당 정권을 이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정보기관이 취합한 정보가 정권에 상관없이 전체 국익에 부합되도록 관리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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