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접속하는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갤러리가 등장,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1일 개설된 이 갤러리에는 현재까지 500여건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흠집내기’를 용인하고 있는 이 갤러리는 본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게시물들로 인해 ‘빨갱이’ 논란에 시달리며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태다. 북한의 수장인 김정일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국보법 위반 논쟁에 휩싸인 이 갤러리는 개설 한달도 되지 않아 휘청거리고 있다.

“김정일 대놓고 욕해도 돼요”

운영자는 김정일 갤러리의 ‘공지’란에 ‘지나친 비방이나 인신공격성 글도 최대한 눈감아 드립니다’라고 적어 놓고 있다. 갤러리 개설취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공산주의 노선을 고수함으로써 세계 평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김 위원장을 운영자의 관용(?)과 묵인하에 대놓고 ‘까대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쌍수를 들고 반기는 목소리도 들린다.

사진 합성 등 모습 희화화

위원장의 사진은 신체적 특징을 희화화한 것들이 대부분으로, 북한의 수장을 공개적으로 희화화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운영자는 한술 더 뜬다. 비방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눈감아 주겠지만, ‘뽀글이 라면’ 사진만큼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는 것. 네티즌들의 솜씨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은 키와 땅딸막한 체격, 불룩 튀어나온 배, 일명 ‘뽀글이’라 불리는 곱슬머리 등을 강조한 사진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참기 어렵게 만든다. 또 그가 즐겨쓰는 선글라스나 키높이 구두, 인민군 잠바 등도 단골 소재. 일부 네티즌들은 김 위원장을 겨냥, 직격탄을 날리기 일쑤다.

네티즌들의 ‘말빨’에 김 위원장은 천하의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김 위원장의 머릿속을 해부한 ‘김정일의 두뇌분석’이 좋은 예. 이 그림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머릿속은 공산독재 주체사상을 주축으로 북핵주장, 적화야욕, 반일·반미, 인권탄압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또 술 세포, 국제사회 눈치보는 시냅스, 여자를 좋아하는 신경세포, 패션감각 등이 어우러져 있다. 일부는 김 위원장의 재산목록 1호는 ‘키높이 구두’라고 비꼬는가 하면, 김정일의 불뚝 나온 배는 북한주민들의 부러움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빠지지 않는 것은 김 위원장의 여성 편력. “정일이형, 여자 좀 나눠주면 안되겠니?”, “정일이는 밤마다 좋겠다”라며 노골적으로 비꼬는 글도 상당수다. 그러나 갤러리의 특성상 인신공격성 욕설이 난무하고 있어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갤러리 하나로 인해 순항기류에 들어선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영웅? 찬양글 파문

그러나 갤러리는 김 위원장을 희화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이 갤러리는 ‘빨갱이’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글이 게시되고 있는 것. 김정일을 북한을 지켜내고 있는 수호자로 떠받드는 내용, 자주 통일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일부는 김정일의 리더십을 추켜세우거나 김일성의 독립운동 경력을 운운하며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동시에 칭송하는 글까지 올리고 있다. ‘아름다우신 수령님의 존안’, 김정일 원수 만세’, ‘김정일 장군은 위대하시다’ 등 위험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빨갱이’ vs ‘레드콤플렉스’ 논란 시끌

이에 네티즌간에는 갤러리 개설의도에 대한 실랑이가 일고 있는 동시에 갤러리 폐쇄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벌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국보법 논쟁같은 민감한 사안에까지 확산되며 이념다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는 운영자의 사상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한편, ‘빨갱이’라는 원색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네티즌은 “대한민국 빨갱이들은 여기 다 모여있는 느낌”이라며 “주적인 김정일 찬양물이 버젓이 올라오는게 이해가 안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 다른 네티즌 역시 “웃자고 만든 갤러리라고 하기에는 도를 넘었다”며 “김 위원장을 수식하는 ‘위대한’, ‘장군님’, ‘카리스마’, ‘존경’같은 단어들은 너무 리얼해서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청소년들에게 이념혼란을 줄 위험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게시물을 둘러싼 덧글 전쟁도 한창이다. 극과 극으로 갈린 색깔논쟁은 전쟁 수준이다.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글을 올린 사람은 ‘간첩’이나 ‘빨갱이’로 치부되기 일쑤. 일부는 ‘이미 국정원에 신고했다’, ‘80년대 같았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했거나 휠체어 신세일 것’이라는 등골 서늘한 협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반면 무조건적인 ‘레드 콤플렉스’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장난도 못치나?’, ‘재미로 웃자는건데 이념 운운하는게 더 수상하다’며 맞받아치는 이들도 있다. 일부 네티즌은 “김정일이 무슨 대단한 놈인양 국보법을 들먹이며 겁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친북좌파빨갱이들 아닌가. 자유자본주의자들은 김정일을 마음대로 비난하고 놀려먹을 자유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근 김 의원장은 비밀리에 7박 8일간의 중국방문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이 중국 개혁개방의 실험장이라 불리는 남부도시들을 방문했다는 것은 북측이 체제의 존립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만큼 사정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개혁·개방의 성공모델을 눈으로 확인한 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 갤러리가 과연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본래의 의도대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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