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임종 직전에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온 유언장이 자신과의 내밀한 약속 및 제2의 삶에 대한 다짐의 의미로 변하고 있다. 세계최초로 인터넷 유언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아메릭스 코리아의 마이윌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직접 작성한 유언장이 공개되고 있어 화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진솔하고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이들의 유언장은 그간 형식적이고 표면적으로 비춰졌던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단상들을 담아내 주목을 받고 있다.

정치인 유언장 화제

민노당 권영길 의원의 유언장은 “막상 유언장을 쓰려고 하니 생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하게 치밀어올라 죽음준비가 참으로 쉽지 않다”는 인간적인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목타는 갈등을 억누르며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사막의 낙타꾼’에 비유하며 ‘인간의 오아시스를 그리며 달려온 삶’으로 표현했다. 감사와 희망의 인사를 남기며, 미움과 아쉬움도 떨쳐버리고 떠난다는 권의원은 행여 “분단상황에서 죽더라도 통일을 안고간다”며 통일에 대한 열망을 나타냈다. 절망과 희망, 분노와 환희, 좌절과 도전이 시계바늘 돌 듯 이어진 인생을 살았다는 권의원은 “고뇌와 번민으로 점철된 생이었지만 나는 정말 복많은 삶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있다.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자신의 묘비명에 “여기 이 세상을 후회없이 사랑하다 간 이의 흔적이 있다”는 글귀가 적혔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썩어 없어질 몸에 미련두고 싶지 않다”며 화장을 부탁한 김의원은 안구와 장기기증의 뜻을 밝혔다. 특히 아내에게 정치인의 아내로 마음고생을 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또 결혼 10년만에 얻은 아들에게는 인생여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응시하고 가슴으로 끌어안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당부하고 있다.파워포인트 국감질의로 화제를 모은 시각장애인 정화원 의원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제목의 유언장을 남겼다. 청소년기 시력을 잃은 후 죽고 싶을만큼 좌절했던 적도 있었다는 정의원은 점자를 손끝으로 더듬어 읽은 헬렌켈러를 통해 ‘희망’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정의원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참 축복받은 사람이었다”며 장애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인간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전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각계 인사 애뜻한 사연

‘배짱으로 삽시다’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는 자신의 죽음을 애도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나게, 열심히, 후회없이 잘 살다간다”는 말로 유언을 시작했다. 이 박사는 “화가나면 욕지거리도 할 수 있고 적당한 거짓말도 할 수 있을테니 내게는 저승이 어울릴 것 같다”, “천당에서는 천사들과 노래를 해야할텐데 난 음치라 안될 것 같다”며 죽음에 대해 여유있고 유머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박사는 장기기증은 물론 자신의 몸을 해부실습용으로 아낌없이 내놓겠다고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실습 후 지내주는 ‘해부제’가 자신의 장례식이 될 거라는 이박사의 담담한 어조는 읽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는 또 남은 재산을 자연의학연구원 기금으로 전달해 불우한 환자 진료비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을 남겨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신바람 박사’ 황수관 박사도 유언장 앞에서는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나의 장기는 소외되고 어려운 환우를 위해 기증한다.

또 내 시신은 의과대학 후학들의 연구에 보탬이 되기 위해 기증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에 무려 11년전부터 메모지에 이 내용을 적어 지갑속에 넣고 다녔다는 황박사는 장기기증으로 꺼져가는 생명을 돕고 시신으로 연구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또 청소년들에게 ‘건강하라, 큰꿈을 가져라, 책을 많이 읽어라, 꿈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4가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김동길 교수는 “나는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남길 말이 없다, 한평생 정직하게 살고 싶었지만 정직하게 살지 못했다”는 고해성사식 유언을 남겼다. 그는 “용감하게, 고상하게 살고 싶었지만 비겁하고 지저분하게 살았다”며 자신을 ‘한심한 인간’이라 표현하고 있다. 한편 그는 “민주화 투사라면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 자들을 볼 때 분개한다”며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이 있었다면 그 희생 자체가 명예롭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라 필화사건으로 고통받았던 마광수 교수는 “나는 처세에 둔감하였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고난의 끝은 ‘나’의 승리였다”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평가했다.

마교수는 “언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날의 고통을 염두에 둔 듯 “처세술과 대인관계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키는 ‘마음의 힘’”이라며 “홀로 있는 연습을 통해 자아의지를 굳게 다지라”고 당부했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평론가인 홍세화씨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차가운 땅 속에 자리잡고 싶지 않다”면서 시신을 화장한 후 한반도 땅위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 “나의 주검은 반드시 화장할 것이며 타고 남은 재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위해 한반도 땅에 뿌려주길 바란다.

나는 너희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스한 모습으로 오롯이 자리잡고 싶지, 차가운 땅 속에 자리잡고 싶지 않은 것이란다.” ‘타타타’의 가수 김국환씨는 20년 동안 무명가수로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가족과 지인, 팬들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 잘나가던 개그맨에서 6년 전 사업실패와 해외원정도박 등으로 밑바닥으로 전락한 황기순은 ‘두번 사는 황기순’이라는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과오를 ‘평생 가지고 가야할 허물’로 표현한 그는 가족과 선후배,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앞으로 낮은 자세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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