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민주 비대위 전환... ‘새판짜기’ 돌입

▲ 민주통합당 의원총회가 열린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들이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히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정부 3기’를 염원하던 민주통합당의 꿈은 좌초됐다. 일대일 양강구도가 형성되고, 75%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좋은 조건 하에 대선이 치러졌지만 문재인 후보는 패했고, 야권의 ‘정권교체’는 5년 후로 미뤄졌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내홍이 불가피한 상태다. 지난 21일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비토가 터져 나왔고, 친노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장 내년 4월에 있을 재보궐 선거와 전당대회가 향후 5년 민주통합당의 운명을 결정지을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한 야권의 정계개편을 감안하면 당내 갈등과 분열은 더욱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패배한 민주당... ‘친노 책임론’ 제기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의 아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정계개편이라는 새로운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친노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부활을 꿈꾸던 친노진영이 또 다시 폐족신세에 몰리게 됐고, 대선후보 당내 경선 전부터 불거졌던 ‘친노 대 비노’의 대결구도가 다시 형성되면서 친노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친노 진영에서도 적잖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친노계 핵심인 이해찬 지도부가 이미 퇴진했고, 친노 핵심 참모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캠프 요직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또 다시 친노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21일 진행된 민주통합당 의원총회에 앞서 한 재선의원은 “친노 계파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 정권 심판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며 “당내에서조차 친노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이명박 대 노무현’이라는 프레임을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의총이 끝난 직후 비노계 한 중진의원은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친노가 책임져야 한다”고 성토한 뒤 “총선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참패했다.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아줄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불만을 토해냈다. 또 다른 의원도 “반성하자는 얘기들이 많다”며 “일단 당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라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2선 후퇴... 친노진영 위축

민주통합당은 당 수습에 앞서 당장 문 후보의 2선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단 국회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한 채 중앙보다는 지역구 활동에 매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20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다음에는 보다 더 좋은 후보와 함께 희망을 주고 만들어내는 일을 반드시 성취하시기를 바란다”고 애써 거리를 뒀다.

이어 “후보의 부족함 외에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친노의 한계일 수도 있고, 민주당의 한계일 수도 있다”고 진단한 뒤 “우리가 우리 진영의 논리에 갇혀서 중간층들의 지지를 더 받아내고 확장해 나가는데 부족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친노 대 비노 간 대결구도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벼랑 끝 위기에 몰려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타개책도 없다. 현 상황을 수습할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도, 참신한 혁신인물도 부재한 상황이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책임론과 쇄신론으로 당내 갈등만 표면화되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지난 21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민주통합당의 변화가 절실하다. 친노 책임론은 불가피한 상황”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계기로 당분간 친노 진영은 위축되고, 친노계 의원들도 약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대위 체제 전환... 전당대회 예고

민주통합당은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고 당 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 이해찬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대표 대행을 맡고 있는 문 후보는 2선 후퇴가 예고된 상태다. 결국 신임 지도부 구성 전까지 비대위 체제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벌써부터 당내에선 정세균 상임고문을 포함한 일부 중진의원들이 비대위원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의총에서도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 및 지도부 공백에 따른 대책 등이 논의됐다. 하지만 비대위 체제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이날 의총에 앞서 박용진 대변인은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선거 평가, 일정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 비대위 방식을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한 뒤 비대위 구성과 관련,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아주 짧은 관리형으로 갈 건지, 아니면 당 전체를 정비하기 위한 강력한 체제의 비대위로 갈 건지, 현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갈 건지 등에 대한 고민이 열려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자진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우리가 먼저 성찰하고, 혁신의 길로 나가기 위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며 “그 책임을 우리 127명 의원들 모두가 느껴야 하고 그걸 계기로 해서 혁신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 민주당의 존재가 참으로 위태로워 질 것”이라고 현 상황에 강한 우려감을 표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한 중진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1월 초 원내대표를 선출하고 새로운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구의 책임론을 거론하기 보다는 일단 현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초 전당대회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내년 초는 시기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4월 재보선을 치른 후에 신임 지도부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5월 쯤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의원도 기자와 통화에서 “2월에는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다. 그런 만큼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가 묻힐 수 있다”며 “비대위 체제로 재보선을 치르고 그 이후 전당대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현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는 신임 지도부 구성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내년 초 전당대회 가능성이 유력시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재보선 이후 치러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내년 초, 즉 1월에 신임 지도부가 꾸려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 진다”고 내다봤다.

중도 및 486정치인 ‘깃발’ 드나

민주통합당이 적잖은 내홍에 휩싸인 채 갈등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을 이끌 차기 지도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재 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유력 인사는 문 후보 선대위를 주도했던 김부겸·박영선·이인영 선대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비록 대선에서는 패했지만 이들은 친노-비노진영에 분류되지 않은 채 당내 화합형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부겸 선대본부장은 ‘용광로 선대위’의 중심인물로 안 전 후보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군포를 떠나 불모지인 대구에서 출마할 정도로 그 진정성도 높게 평가 받는다.

‘박근혜 저격수’의 별칭을 지닌 박영선 선대본부장도 차기로 주목된다. 그는 유력 여성 정치인으로써 당내 ‘또 다른 실세’로 꼽힌다. 이인영 선대본부장은 ‘486의 기수’로 불린다. 친노계를 제외한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며, 김근태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핵심 인물이다.

윤희웅 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민주통합당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친노에서 비노로 교체되거나 주류에서 비주류로 교체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친노-비노계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486정치인 세력 등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안철수의 구원등판... 달라지는 정계개편 진통

내년 초 전당대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각에선 4월 재보선 이후 신임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안철수 전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즉, 서둘러 전당대회를 치르기 보다는 안 전 후보와 함께 새로운 혁신정당을 구상하고 이후 민주통합당과 안 전 후보 측이 신임 지도부를 출범하는 방안이 거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당내 쇄신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철수 구원등판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한 중진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한 뒤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일정상 좀 더 늦추자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당 안팎에선 ‘빅 텐트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시민사회와 노동계 등이 결합한 국민연대와 안철수 지지 세력을 모아 신당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안 전 후보가 민주통합당과 함께 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대선 때도 품지 못한 안 전 후보 세력이 민주통합당과 손을 잡을 리 만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윤희웅 실장은 “안 전 후보의 선택에 따라 민주당의 분열이 조기에 수습될 수도, 장기화 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안 전 후보가 민주당의 개혁보다는 독자 정당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안 전 후보가 향후 신당창당 계획을 밝힐 경우 민주통합당 내 상당수 인사들이 안 전 후보 측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런 만큼 ‘안철수 신당’이 현실화될 경우 민주통합당은 제1야당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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