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응집, 중원제패 실패, 단일화 덫에 빠진 文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보수와 진보 간 일대일 대결구도 속에서 치러진 제18대 대선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간 와신상담하며 정권탈환을 염원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고배를 마셨고, 진보진영은 패배를 받아들였다.

민주통합당은 당초 목표치인 75%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한껏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문 후보의 패배로 이어졌다. 그의 석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단일화의 덫과 친노(친노무현)의 한계 그리고 보수층의 결집과 중원 제패의 실패 등이 지목된다.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다.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당신에게 남겨진 숙제’를 완결하지 못한 채 떨리는 음성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19일 늦은 밤 기자회견을 갖고 “많은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인사말을 건넨 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며 “박 당선인께서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주실 것을 기대한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75% 높은 투표율... 중장년층 ‘결집’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19일 진행된 18대 대선은 총 유권자 4050만 7842명 가운데 3072만 2912명이 투표에 참여, 75.8%의 잠정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7대 대선(63.0%)보다 무려 12.8%포인트 가량 높은 투표율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16대 대선(70.8%)과 비교해도 5%포인트 높은 수치이다.

총 투표율 75% 이상을 목표치로 정한 민주통합당은 중간 중간 발표되는 투표율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며 승리를 자신했다. 특히 일부 출구조사 및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앞선 것으로 전해지면서 캠프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15대(80.7%)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투표율은 문 후보의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다. 투표율을 높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2030세대들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번 대선은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2030세대의 투표율을 따라잡은 것으로 분석되면서 보수와 진보진영의 희비는 엇갈렸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세대별 투표율은 20대와 30대에서 각각 65.2%와 72.5%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50대와 60대 이상은 무려 89.9%와 78.8%로 조사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제18대 대선 선거인명부의 20대 유권자는 661만 6873명, 30대 유권자는 815만 405명인 반면, 50대 유권자는 777만 75명, 60대 이상은 841만 1942명으로 집계됐다. 17대 대선과 비교할 때 저출산 고령화의 결과로 50~60대 유권자 수는 늘었고, 20~30대의 유권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결국 높은 투표율을 보인 만큼 박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50~70대의 유권자 투표율 역시 높게 나타났고, 그 결과 문 후보는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지 못한 채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문재인, 중원 제패에 실패하다

“중원을 제패하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

선거철이 되면 한국 정치판에 늘 회자되는 말이다. 동서구도가 확실한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충청지역은 중원 중의 중원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충청 민심을 사로잡지 못하면 결코 대권을 잡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리고 이는 역대 선거 결과가 잘 말해주고 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겠다는 목표 하에 PK(부산·경남) 지역에 적잖은 공을 들였다. 또한 서울의 젊은 층을 적극 공략하며 2030세대들의 투표율 제고에 만전을 기했다.

문 후보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충청과 강원지역 공략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가 선진통일당과 합당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권에서 과반수 득표를 다짐했던 것과 비교하면 선거운동 역시 미비했다는 평가다.

개표결과에서 알 수 있듯 문 후보는 경기와 인천 그리고 충청과 강원지역에서 박 후보에 밀림으로써 중원제패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문 후보가 대선에서 패한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문 후보는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박 후보에게 밀렸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 가량이 몰려있는 최대 표밭 수도권에서 야권 후보의 선전이 기대됐지만 경기와 인천지역 모두 박 당선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가장 최근 선거인 4·11 총선에서 야권이 서울·경기에서 6대4, 인천에서 5대5의 성적표를 거뒀다는 점에서 수도권에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점은 문 후보로선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친노의 한계와 단일화 덫에 빠진 文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친노 대 비노’의 대결구도는 문 후보에게 적잖은 악재로 작용했다. 당내 갈등으로 상처를 입었고, 비노의 핵심인 손학규 상임고문은 공식선거운동 전까지 문 후보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애써 외면했다.

또한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계 좌장격인 이해찬 지도부가 퇴진했고, 친노 핵심 참모들이 문 후보 캠프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물러났다.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도 매끄럽지 못했다. 안 전 후보는 자진 사퇴했고, 이 과정에서 중도층의 이탈을 불러왔다. 아울러 선거 막판까지 단일화에 치중한 탓에 선거운동 기간은 짧았고, 안 전 후보에게 기대며 목메는 상황에 제1야당의 정치쇄신과 문 후보의 리더십은 의심받았다.

이와 관련,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초반 단일화 과정에서 시간을 지체해 문 후보 본인의 선거운동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며 “사흘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선거 프레임도 문 후보에게 불리했다. 문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날 박 당선자를 향해 “유신 독재세력의 잔재”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이내 현 정권 심판론으로 구도를 수정했다. 박 후보 측이 문 후보를 “실패한 참여정부 실세”라 지칭, ‘박정희-노무현’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을 의식하고 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책임론을 내세우며 프레임을 굳혀 나갔다.

선거막판에 터진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국정원 여직원 사건’ 역시 문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북풍(北風)으로 인해 보수층은 결집했고, 국정원 사건은 본질을 따지기도 전에 흑색선전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박 당선자의 지지층은 결집했고, 이는 결국 앞서 설명한 중장년층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다.

여기에 대선후보자 TV토론을 지켜본 보수층의 위기감 확산과 ‘박근혜 저격수’로 나선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에 대한 거부반응까지 더해지면서 응집력은 더욱 커졌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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